내가 원해서 우울한 게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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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를일별진



누울 자리를 보고 발을 뻗는다는 듯 우울도 그런 게 아닐까. 우울을 불러오는 것도 그 어둠을 즐기는 것도 모두 자의적인 게 아닐까. 누구도 늪에 빠지라 말한 적은 없는데. 늪인 줄 알면서 그곳에 들어가기로 한 건 자신이 아닐까. 이 감정을 어떻게든 해소하려는 자신에 취해 더 깊이 빠져들고자 한 건 아닐까. 그렇다면 이 늪에서 나오는 방법도 이미 알고 있는 건 아닐까. 알고 있으면서 고착 상태를 유지하는 건 그대로 늪에 잠기고자 결정했기 때문은 아닐까.


많은 이들이 말한다. 극복의 키는 자신에게 있다고. 알고 있다. 타인이 위로된다 해도 돌아서면 원상복구 되어버리니, 누군가로 인한 기쁨은 찰나라는 걸 알고 있다. 끝없는 반복. 빛과 어둠, 희극과 비극을 반복하는 생이다. 자신이 흔들리면 결국에는 흔들린다. 타인은 타인일 뿐이다. 그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무엇을 위해 극복하고자 하는가. 아니, 애초에 무엇과 싸우고 있었던 건가. 목적지가 있었다. 예상할 수 있는 위치에 결승선이 존재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결승선이 사라졌다.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길을 잃었는데 길을 잃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정신을 차렸을 땐 너무 늦어버렸다. 극복의 키를 쥐고 있었지만 그 키를 어디에 꽂아야 하는 지 알 수 없었다. 전부 무용지물이 된 것 같았다. 답을 아는 것과 그 답을 체크하고 행하는 건 다른 문제였다. 내가 원한 건 이런 게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