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사랑은 신중히
외롭다는 감정을 딱히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외로움’이라는 단어가 주는 부정적 측면(약해 보인다는 것)이 견딜 수 없어서, 나는 그 말을 입에 올리지도 인정하지도 않으려 했다.
몇 달 전. 가해자도 피해자도 없는 지독한 돈 문제가 모두에게 닥쳤다. 현재 진행형인 문제이기에 한 달 두 달 잘 버티던 사람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궁지에 몰렸다. 그들 나름대로 온갖 이유를 들어 돈의 키를 쥐고 있는 이들에게 입금 독촉을 했다.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고선 마음을 안정시킬 방법이 없었을 테니까. 나는 독촉을 받는 입장이었다. 사실 나 또한 누군가에게 독촉해야 하는 입장이기도 했지만, 사람들의 원성을 들어야 하는 위치이기도 했다. 한동안 잘 버티긴 했으나, 죄책감과 자괴감이 베이스가 된 고착 상태가 지속되다 보니 결국 정신 줄을 놓아버렸다. 부정이 부정을 불러오고 늪이 더 깊은 늪을 만들었다.
회사에 있기가 너무 힘들어 일찍 집으로 향하는 길, 이런 생각이 들었다. 벌어지는 상황을 극복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가족이 가까이 있는 이들은 힘듦을 나누어 가며 함께 이겨내지 않을까. 사랑하는 사람이 있거나 지켜야 하는 자식이 있거나. 힘든 와중에도 사랑이 있고 신뢰가 있으며 (내 편이라는) 버틸 힘이 있을 테니까.
꼬리에 꼬리를 물고 퍼져 나가던 생각은 지독할 만큼 부끄러운 감정으로 이어졌다. 그러다 문장에 마침표를 찍듯 생각이 뚝 하고 멈추자 회의감이 몰려왔다. 나는, 내가 하는 생각이 어떤 생각인지 잘 알았다. 힘듦의 경중을 따지는 것만큼 비겁한 일은 없고 나의 경우 힘듦을 나누기 싫어서 힘들다는 말도 잘 안 했는데, 내가 자초한 상황은 기억도 못 하고 이토록 찌질한 생각이나 하고 있다니. 혼자 센 척은 그렇게 해놓고 상황이 악화되니 본 모습을 숨기지도 못했다.
어쩌면 나는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외로운 걸지도 모른다. 긴 시간 쌓아온 허세라는 벽이 무너지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혼자가 괜찮을 리 없잖아. 사랑 없는 삶이 괜찮을 리 없잖아. 나는 늘 사랑이 주는 안정감이 필요했는데.
언젠가 드라마 대본을 분석하면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외로움을 숨긴 상태로 자신만의 선을 긋는 사람의 이중성에 대하여. 그러한 이들의 기저에 깔린 감정은 두려움이다. 온전한 나를 내 보이는 것에 대한 두려움. 상처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 두려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원하지 않는 게 아니라서, 누군가가 그 선을 넘어준다면 기꺼이 (못 이기는 척) 받아들이고 싶은 이중적인 마음. 생각해 보면 난 드라마를 분석한 게 아니라 내 이야기를 했던 거였다.
긴 시간 동안 어떤 결혼 장려 영상을 봐도 딱히 감정적 동요가 없었는데, 상황이 사람을 극한으로 몰아가니 이제야 주변이 보이기 시작했다. 엄마가 말하던 안정적인 마음과 든든한 내 편의 중요성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우리 딸이 좋은 사람을 만나 울타리가 생겼으면 좋겠다던 말의 의미를 알 것 같다. 그렇다. 진짜 결혼 장려 영상은 나를 둘러싼 사건 그 자체에 있었다. 역시, 사람은 뭐든 겪어봐야 하나보다. 어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