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로 잠겼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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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를일별진



몸에 줄이 묶여 있다. 고무줄이다. 어린 시절 고무줄놀이를 할 때 쓰던 그 줄이다. 가위를 쓰지 않는 한, 잘 끊어지지 않는 줄이다. 나이를 먹었다. 올라가는 숫자만큼 마음의 돌덩이도 높게 쌓였다. 무너질 듯 말 듯 쌓이던 돌은 어느새 내 키를 넘었다.


나는 감정에 깊게 매몰되는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방 빠져나올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믿었다. 모든 일엔 이유가 있고 모든 것엔 배울 점이 있다고 생각했었으니까. 그러나 점점 빈도가 잦아지면서, 나는 매몰 이후에도 완전히 빠져나올 수 없었다. 자기 세뇌로도 해결되지 않았다.

땅을 파고들 듯 무거워진 돌탑이 나를 끌어내리는 건지 몸에 묶여있는 팽팽한 고무줄이 나를 잡아당기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모든 일의 이유는 끝나지 않으면 모르고 모든 것의 배울 점은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만 보였다. 의미를 잃어버린 상태에선 어떤 것도 와 닿지 않았다. 고무줄과 돌탑으로 비유되는 나의 우울은 늘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고, 나는 매번 물에 잠겼다. 처음엔 뭐라도 해보려 버둥거렸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마저도 포기해 버렸다. 그 상태 그대로 잠겨 죽어도 괜찮겠다고 생각하면서. 얕아지는 숨 그대로 쓰러지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알고 있다. 포기해야 물에 뜬다. 아이러니하게도 살고자 하지 않아야 뜬다. 온몸에 힘을 빼야만 떠오를 수 있다는 걸 안다. 천천히 숨을 쉬고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면서 오늘이 내일이 되는 걸 기다려야 한다는 걸 안다. 나를 묶은 고무줄이 때론 돌아갈 곳이 되기도 하고 내가 쌓은 돌덩이가 내면의 힘이 될 수도 있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마음처럼 되진 않는다. 애써 정신을 차려도 다시 끌려 들어가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