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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서른일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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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를일별진 Jan 23. 2024

잘 하려는 마음의 부작용






내가 즐길 수 있는 건 ‘잘 하지 않아도 되는 것’에 한정돼 있다. 승부욕이 상당한 편이라 뭐든 한 번 배운다 치면 온 종일 그 배움에 매몰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니까.


최근 좋아하는 친구들과 스키장에 갔다. 내게 보드를 알려주고 싶어하는 친구가 있었고, 나 또한 보드를 배워보고 싶었기에 1박 2일의 일정 중 첫 날은 보드를 배웠다. 그런데 웬걸 일어나지도 못했다. 한 번 일어나는 데 온 몸의 힘을 써야했고 친구는 장난 반 진담 반 “이렇게 못 타는 사람은 처음”이라 말했다. 느리긴 해도 천천히 진도를 따라잡고 있다 생각했는데, 알려주는 친구가 받아들이기엔 난 아무것도 못하고 있었다. 그놈의 낙엽... (나쁜 말) 슬슬 화가 났다. 배우고 싶었으나 배우는 게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면엔 미안함도 컸고. 민폐끼치는 게 가장 싫은데 난 이도저도 못하고 민폐만 끼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둘째 날은 같이 간 친구의 권유로 스키를 배웠다. 좋은 의도로 온 스키장에 나쁜 기억만 남길 순 없다는 게 친구의 말이었다. 물론 스키도 쉽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름’ 타기는 했다. 다만 마냥 즐길 순 없었다. 이미 내 감정은 만신창이였으니까. 아무렇지 않은 척 하는 것만으로도 힘에 겨웠다. 조급해졌다. 내가 탈 줄 알아야 모두가 즐거울텐데... 나는 제 자리를 걷고 있는 것 같았다. 그냥 모든 상황이 너무 힘들었다. 이러려고 여행을 온 게 아니었다.


우습게도 나는, 가르쳐 주는 친구들이 없을 때가 더 재밌었다. 내가 원한 건 진도를 빼는 게 아니라 하나씩 배워가며 재미를 붙이는 건데. 속도를 내며 시원하게 내려오지 않아도 소소한 성취감을 기반으로 하는 재미를 느껴보고 싶었던 건데. 내가 나름대로 하는 건 ‘제대로 타는 축에 속하지도 않는 일’이니, 열심히 한 것 자체가 부정당하는 기분도 들었다. 물론 미안한 마음이 사람을 더 작아지게 만들었고.


생각해보면 나는 느린 사람이었다. 하나 하나 순차적으로 배우는 걸 좋아하고, 한 번 배운 건 수십 수백번 연습하며 몸에 익혀야만 하는 사람이었다. 진도를 빼는 것보다 배운 걸 완벽하게 소화하는 게 중요하다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1박 2일 만에 일정 진도를 빼는 것에 목표를 두고 배웠으니, 내가 튕겨 나가는 건 당연지사였다. 저마다 다른 실력임에 불구하고 배워서 한 번에 탈 수 있을 거라 생각한 내 탓이었다. 이런 나를 제대로 설명하지 않은 것도 내 탓, 친구에겐 아무런 잘못이 없다. 그냥 내가 지랄 맞은 것 뿐. 어쩌면 당분간 스키장 쪽은 쳐다도 보기 싫다는 게 잘 하려는 마음의 가장 큰 부작용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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