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나를 힘들게 했던 것들에 대하여
한때 내가 정말 힘들어했던 작가 언니가 있었다. 기억나는 감정은 기획안 하나를 몇 주에 걸쳐 만들면서 언니에게 정말 많이 혼났다는 것. 그 혼남이 마땅히 혼나야 하는 일이라기보다는 괴롭힘의 범주에 속해 있었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언니는 나를 좋아했지만, 나는 기획 작업이 끝나자마자 언니의 번호를 지워버렸다는 것.
그때가 몇 년 전인지도 기억이 안 나는, 까마득한 옛날.
그런데, 그만큼 시간이 흐른 지금. 언니에게서 연락이 왔다. 동네의 카페에서 나를 우연히 봤다며, 어젠 지인과 있어 아는 척을 못 했지만, 하루가 지난 오늘 내가 생각이 났단다. 상상도 못 했던 연락. 나는 언니가 반가웠나, 반가웠을까. 아니, 썩 유쾌하진 않았다. 지워버린 기억이 다시 떠올랐으니까. 그러나 번호가 없다고 고백하고, 언니의 번호를 받아 통화를 하는 동안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안해졌다.
한때 내가 정말 힘들어했던, 내겐 너무 무서웠던 언니가 나와 함께 나이 들어간다. 그땐 내가 언니의 도움이 필요했다면 이젠 내가 언니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 정신을 차려보니, 그런 위치가 되어 있다. 언니가 알고 있던 그 시절의 나는, 어디에도 없다.
언젠가 그런 생각을 한 적 있다.
나는 늘 무언가로부터 도망을 치거나 나를 증명하기 위해 살았던 것 같다고. 나를 힘들게 한 것들로부터 도망을 치려 주저 없이 모든 관계를 끊어냈고, 나를 무시하는 사람들을 짓눌러버리기 위해 악착같이 앞으로 달렸다. 겉보기엔 그럴싸해도 결국엔 모든 원동력이 부정적인 것들에게서 시작됐다는 걸 부정할 수 없다.
그런 맥락에서 요즘 깨닫는, 내 삶의 가장 중요한 테마는 치유다. 내가 도망쳐온 것들, 내 안의 자격지심과 미련한 면들, 타인으로부터 시작돼 스스로 욱여넣은 부정적인 마음들. 그 모든 것에서 자유로워지는 일. 숨기고 지우는 건 능사가 아니었다. 과거의 내가 더 이상 없다는 걸 확인하려면, 그 과거의 존재와 마주해야만 하는 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