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very moment of life
내 나이 열여덟 살. 동아리 모꼬지 때문에 경주를 찾은 어느 가을날이었다. 당시 숙소였던 장소는 대로변에서 벗어난 곳에 있었는데, 안으로 조금만 걸어 들어가도 작은 나무숲과 함께 논밭이 펼쳐지는 곳에 붙어 있었다.
나는 시골이 좋았고, 그 무렵에는 사람도 좋았다. 한적한 시골 마을의 한옥 숙소 덕분에 나는 그날 보고 듣는 모든 걸 낭만적이라 생각했었다. 함께 있는 사람들도 모두 내가 아끼는 사람들뿐이었으니까.
신나게 놀고 떠들고 저녁을 먹고, 모두가 조금씩 지쳐갈 무렵. 나는 유독 좋아했던 한 친구와 밤마실을 나섰다.
띄엄띄엄 켜져 있는 가로등 불빛 사이로 정돈되지 않은 흙길이 보이고, 우리가 걸을 때마다 작은 돌이 발에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대화를 나누는 우리의 귓가에는 가을 곤충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고, 친구와 나는 선선한 바람을 맞아가며 한참을 걸었다.
그러다 유난히 달빛이 밝게 머무는 곳을 찾은 우리는, 주저 없이 그곳 바닥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마침 MP3를 들고 있던 나는, 우리의 완벽한 순간을 위해 장나라의 <별이 빛나는 밤에>라는 노래를 찾았다. 총 두 가지 버전이 있었는데 그중 내가 좋아하던 곡은 곤충 소리가 들려오는 두 번째 버전의 곡이었다.
노래를 틀고 이어폰을 나눠 끼고, 우리는 말없이 주변 풍경을 응시했다. 한쪽 귀로는 노래가 들리고 다른 한쪽 귀로는 가을 소리가 들리는, 지극히 감성이 넘치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우습게도, 우리는 얼마 뒤 서로를 부둥켜안고 눈물을 쏟아냈다. 어렴풋이 기억나는 감정은 그 무렵에 같이 좋아했던 오빠가 원인이었던 것 같은데... (지금 생각하면 웃음만 나오지만) 그때는 왜 그렇게 감정이 요동쳤는지 모르겠다. 한참을 울고 퉁퉁 부은 눈으로, 그 와중에 두 손을 꼭 잡고 숙소로 돌아갔으니까.
15년이 지나 서른셋이 된 지금도, 그날이 그리울 때면 <별이 빛나는 밤에>를 찾아 듣는다. 신기하게 그 노래만 들으면 당시로 돌아간 것처럼 생생하게 기억이 떠오른다. 우리 두 사람의 모습뿐 아니라 그 무렵 느꼈던 모든 감각까지 되살아나는 거다.
어쩌면 이 모든 건 당시 들었던 장나라 노래의 효과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눈으로만 담은 기억은 언젠가 흐려지게 된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자꾸만 쌓이게 되는 새로운 기억이 과거의 일들을 조금씩 밀어내는 거다. 하지만 단순한 기억에 향기와 분위기, 그날의 소리, 음악과 같은 감각이 더해지면, 몸에 각인을 새기듯 순간이 마음속에 영원으로 남게 되는 것 같다.
다행히 그 가을의 기억은 모든 게 완벽했다. 마침 계절이 바뀌던 순간이어서 공기까지도 나름의 향을 뿜어내고 있었고, 모든 것들이 우리를 위해 존재하는 것 같았다. 나에게는 한 편의 뮤직비디오로 남아있는 열여덟의 가을 추억은, 아마도 죽을 때까지 사라지지 않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