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그저 먼 미래의 약속

every moment of life

by 흐를일별진



초등학교 6학년. 졸업을 앞둔 우리는 학교 문집에 실을 롤링 페이퍼 작성에 열을 올렸다. 친구들과의 첫 번째 이별이자 졸업이었기에 모두 하고 싶은 말들을 빼곡하게 써넣기 시작했다.


‘우리 우정 forever’라며 이별의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고 자신의 꿈을 증거 삼아 써 놓은 친구도 있었고, 몇몇 남자애들은 맥락 없는 우스꽝스러운 농담을 쓰기도 했다. 그리고 그 모든 말의 중앙에는, 당시의 우리에게 가장 중요했던 '10년 뒤의 약속'을 적어놓았다.


2009년 X월 X일 (10년 뒤)

양학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모이자





졸업식 날, 우리는 서로를 부둥켜안고 울면서 10년 뒤의 약속을 꼭 지키자고 말했다. 그 시절에는 약속이 무조건 지켜질 거라 믿었었고, 친구들과 헤어지면 매 순간 그들이 궁금해서 애가 탈 줄만 알았다.



그러나 막상 하루하루를 살다 보니, 어린 시절의 약속이라는 건 철없었던 기억의 잔상으로 흩어지게 되더라. 쭉 유지될 것만 같던 우정이 새로운 우정에 밀려나기도 하듯, 그 시절의 친구들 또한 조금씩 내 기억에서 흐려져 갔다.


내가 타지로 대학을 가면서 포항 옛 친구들과 자연스럽게 연락이 끊긴 것도 있지만, 솔직히 당시에는 미니홈피만 슬쩍 봐도 친구들의 공개된 근황을 알 수 있었기 때문에, 관계에 대한 호기심이 전혀 없었다. 그러니 나는 내 눈앞에 있는 이들에게 집중하느라 10년 전의 약속 같은 건 새까맣게 잊고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대학 방학 기간을 맞아 포항 본가로 내려온 나는, 보관해둔 물건을 정리하라는 엄마의 성화에 버릴 것을 골라내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초등학생 시절, 친구들과 주고받았던 편지 묶음과 1999년 졸업 문집이었다. 그때는 뭐가 그리도 할 말이 많았을까 생각하며 편지를 한 장씩 꺼내 읽었다. 웃음이 나왔다. 사소한 일로 싸우고 서로를 욕하는 편지도 있었고 금세 화해를 하고는 하트를 남발하는 편지도 있었다.


나는 추억과 함께 조금씩 예전으로 돌아가기 시작했고 문득 옛 친구들이 궁금해질 즈음, 졸업 문집의 롤링페이퍼를 발견했다.


신기하게도 그 당시 약속했던 10년 뒤의 날짜가 바로 코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가려고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는 날짜였다.


그러나 나는 마음이 복잡했다. 약속 장소에 나가볼까 하는 설레는 마음과, 아무도 약속을 기억하지 못할 거라는 회의적인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친구들의 SNS를 뒤적거리며 약속에 대해 언급한 친구가 있는지 찾아봤다. 하지만 최소한 내가 본 이들에 한해서는 약속을 기억하는 이들이 없는 것 같았다.


결국 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새삼 10년의 세월이 참 길다는 생각을 하면서, 우리가 어른이 됐다는 실감이 들었다. 약속을 기억하기도 힘들지만 그 약속을 떠올린다 한들, 행동으로 옮길 동심이라는 게 어른에겐 거의 남아 있지 않았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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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나는, 연인과 함께 ‘서른 살의 약속’을 한 적이 있었다. 우리가 서른이 되면 이탈리아 피렌체의 두오모 성당에서 만나자는 약속이었다. 우리가 그 무렵에 만나고 있든 헤어진 사이이든,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의 한 장면처럼, 그렇게 우연을 가장해서 다시 만나보자는 약속이었다.


사실 연인과의 약속이라는 것은, 관계가 끊어지면 그만이기에 지속성의 의미가 없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무렵 우리가 했던 약속의 진짜 의미는당시 서로에 대한 마음의 증거이자 행복한 순간을 위한 수단이었다. 지켜지든 지켜지지 않든, 우리가 그 약속을 기억하는 한 우리의 관계는 아름답게 포장될 게 분명했다. 그러니 그와 나는 그 순간의 감정에 충실했던 것뿐이다.


어쩌면 어린 시절의 약속도 같은 맥락일지 모른다. 그 무렵의 감정은 진심이었고, 약속의 결과는 당시의 진심을 왜곡시키지는 못했다. 결과가 어찌 됐든 그 시절의 풋풋함과 순수함은 ‘10년 뒤의 약속’ 안에 그대로 남아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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