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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를일별진 Sep 25. 2019

#애드 아스트라 (2019,SF,미국)

로이 맥브라이드(브래드 피트)의 감정선을 따라서



※ 주인공의 감정선을 따라

    수필 형식으로 이어지는 리뷰(후기)입니다.

※ 지극히 개인적인 해석의 감정선이며

    내용에 따라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음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 영화 속 실제 대사와 암시에 근거를 두고

    추측, 분석한 감정선임을 명시합니다.






★★★★★






내 어린 시절의 기억에는 아버지가 거의 없다. 어렴풋이 떠오르는 기억은 있지만, 그마저도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사라졌다.

아버지는 우주 비행사였다. 지구 밖 미지의 세계에 대한 탐구 의식으로 가득한 사람. 그 때문에 많은 시간 집을 비웠고, 어느 순간부터는 아예 돌아오지 않았다.

힘든 건 엄마였다. 남편의 부재에 엄마는 긴 시간을 힘들어했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나도 조금씩 지쳐갔다. 하지만 아버지는 나라의 영웅이었고, 우리는 힘든 마음을 쉬이 드러내지 못했다. 온 나라의 많은 이들이 아버지를 우주 개척의 선구자로 대했다. 덕분에 나는 아버지의 부재에도, 늘 그의 그늘 속에서 살았다.


어느 순간, 아버지를 태운 우주선이 어둠 속으로 사라져버렸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남아있는 아버지의 마지막 교신은 미지의 세계에서 생명체를 찾을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었다. 나는 아버지를 원망함과 동시에 이해했다. 도대체 아버지는 우주의 어떤 것을 본 걸까. 그의 행동에는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최소한 그렇게 믿고 자랐다. 어쩌면 믿어야 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지나고, 나 또한 우주 비행사가 됐다. 우주에 대한 호기심보다는, 그저 아버지를 이해하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우주 비행사라는 건 위험이 따르는 일이었다. 나는 아버지의 선례를 이을 수 없었다. 그래서 마음을 닫았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누군가를 사랑했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늘 아버지의 그늘에 있었다. 아버지가 그랬듯, 나 또한 결국 누군가를 상처 줄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휩싸였다. 그래서 많은 걸 놓쳤다.

속을 모르는 사람들이야 영웅의 아들, 영웅의 가족이라며 우리를 추켜세우지만, 그들은 우리의 내면에는 관심이 없었다. 허울에만 집중할 뿐. 어느 순간부터는 타인의 호의가 더 이상 호의로 느껴지지 않았다. 어차피 겉만 보고 말을 거는 사람들이다. 어떠한 관계든 그냥 마음을 닫고 지내는 편이 나았다.

어차피 사람은 언젠가 죽고, 이 직업 또한 죽음과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다. 감정을 닫고 나를 제어하는 편이 사는 데는 더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애초에 나는, 제대로 감정을 표현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살아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온 지구를 위협하는 전류 급증 현상 ‘써지’의 근원지가 ‘리마 프로젝트’에서 시작됐다는 사실과 함께. 어차피 나에겐 선택권이 없었다. 상관이 요구하는 대로 아버지를 찾고, 그를 설득하기 위해 지구를 떠나게 될 게 분명했다. 한때는 그토록 아버지를 만나고 싶었는데, 막상 아버지가 살아있을 수도 있다고 하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지구를 떠나고 화성의 지하 기지까지 가는 길. 몇 번의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나를 가장 당황하게 한 건, 구조 신호를 받고 들어간 한 우주선에서의 일이었다.

그곳은 실험 중이던 유인원의 폭주로 모든 것이 무너져 있었다. 사람은 죽었고, 나와 동행했던 이도 죽음을 피하지 못했다. 그러나 내 눈길을 사로잡은 건 죽음이 아니었다. 유인원의 분노였다. 마음이 일렁였다. 분노. 그 유인원은 왜 그렇게 분노했을까. 그리고 나는 왜, 그 분노에 감응하는 걸까.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처음으로 분노라는 감정을 제대로 마주한 기분이었다. 나는 단 한 번도 분노를 터뜨린 적이 없었다. 내 심박 수는 늘 일정 선을 유지했었으니까. 그래서 분노를 터뜨리며 살육을 일삼는 유인원의 모습에서 묘한 동질감을 느끼기도 했다.






화성에서의 나는 근간을 뒤흔드는 사실과 마주했다. 아버지는 영웅이 아니었다. 한평생 영웅이라 믿어왔던 사람은, 자신의 목적 때문에 인간성을 잃은 괴물이 되어 있었다.

아. 비로소 알 수 있었다. 유인원을 보고 느꼈던 분노라는 감정에 대한 감응. 그리고 내 삶에 대한 깊은 회의감의 정체를. 가족을 버렸으면 최소한 끝까지 영웅으로 남았어야지. 내가 영웅이라 믿었던 사람은 누군가에겐 부모를 죽인 살인자였다. 나를 그늘 속에서 살게 한 사람이 살인자에 불과했던 거다.

처음엔 그 사실을 인정하기가 힘들었다. 내 모든 삶이 거짓말 같았다. 고작 이런 인간 때문에 내 인생이 그렇게나 암울했나. 그랬다. 내 분노는 나 자신을 향한 분노이자, 아버지를 향한 분노였다. 그동안 모른척 하려고 애썼던 것뿐 늘 소리치고 싶었던 거다. 당신같은 아버지 때문에 우리가 너무 힘들었다고.

 

나는 아버지를 만나야만 했다. 만나서 물어야 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 긴 시간 동안 가족을 떠나야 했는지. 정말 지구로부터 모든 것을 놓고 도망을 친 건지. 당신이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이었는지. 우리를 버리고 진짜 원하는 것을 찾아냈는지. 내 눈으로 보고, 직접 답을 듣기 전에는 이 감정적 동요를 멈출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무리하게 ‘리마 프로젝트’ 자체를 파괴하려던 우주선에 올라탔다. 그 과정에서 또다시 희생이 있었지만, 나는 그에 동요하지 않았다. 아니 동요할 수 없었다. 내게 중요한 건 아버지를 직접 만나고, 내 손으로 모든 걸 끝내는 거였으니까.


아버지가 있다는 해왕성으로 가기까지 80일에 가까운 시간을 오롯이 혼자 보냈다. 정신이 아득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온갖 상념에 사로잡혔다. 아버지를 만나면 무슨 말을 할까. 그동안의 내 인생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나는 왜 늘 소중한 것을 지키지 못했을까.

지금껏 살아오면서 늘 혼자가 편했는데. 편하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지독한 고독에 사로잡혀보니, 내 삶이 잘못된 것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내가 선택한 고독은 아버지를 향한 미움에서 비롯된 건지도 모른다. 아버지처럼 살고 싶지 않았으나 내 삶은 아버지의 뒤를 그대로 따랐다. 결국 나는, 그와 같은 실수를 하며 살아온 거다. 나는 단 한 번도 아버지를 벗어난 적이 없었다.


온갖 우주의 부유물이 띠가 되어 떠돌고 있는 해왕성. 나는 그 세계의 잔해를 넘어 아버지를 만났다. 내 눈으로 마주한 아버지는 많이 늙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주에 대한 그의 의지는 하나도 꺾이지 않았다. 아버지는 서슴없이 우주에 대한 열망은 지구의 모든 것을 버릴 수 있게 만든다고 말했다. 지구에는 희망이 없고, 우주에만 희망이 있다고 말했다. 아버지의 말은 그에게 가족은 단 한 순간도 중요하지 않았다는 걸 의미했다. 사실, 화가 날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아버지를 만나고 보니 그리 화가 나지 않았다. 오히려 분노가 사라지고 측은함만 느껴졌다.

가족을 버리며, 지구를 버리며 우주로 떠난 아버지는 자신이 원하는 걸 찾아내지 못했다. 긴 시간 희망을 갖고 우주를 헤맸으나, 그가 마주한 건 ‘無의 세계’그 자체였다.


애초에 아버지는 우리를 떠날 사람이었다. 변할 수 있는 사람도 아니었던 거다. 나는 그 모습에서 나와 아버지의 차이점을 알았다. 그리고 동시에 삶에 대한 깨달음을 얻었다.

아버지는 머나먼 우주에서 無를 찾느라 가까이 있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리고 나는 지구에 없는 아버지를 쫓느라, 가까이 있는 존재를 챙기지 못했다.

살아온 길은 비슷했다. 아버지와 나는 곁에 없는 것을 찾아 많은 것을 희생하며 살았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우리가 다른 점은, 아버지는 변하지 못했고 나는 변할 수 있다는 거였다. 안도감이 들었다.


아버지를 설득했다. 지구를 위협하는 ‘리마 프로젝트’는 완전히 끝내고, 함께 귀환하자고. 다행히 아버지는 설득을 받아들였고, 우리는 자동 운항 중인 우주선으로 돌아가기 위해, 밖으로 나섰다.

그러나 아버지는 지구로의 귀환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스스로 줄을 풀고 우주로의 유영을 선택했다.

그런 아버지를 보면서도 나는 어쩌지 못했다. 사실 노력했다면 그를 구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살고 싶었다. 후회하고 싶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나는, 줄의 고리를 푸는 아버지의 손을 막지 않았다. 어쩌면 모든 걸 예상했던 걸지도 모른다. 그리고 아주 작은 마음이지만, 진짜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떠났고, 나는 아버지의 부재를 완전히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거다. 그는 어차피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했을 사람이었다.

그를 미워할 이유도 없었다. 애초에 아버지를 가족을 꾸릴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멀어지는 아버지를 보며 마음을 다잡았다. 그리고 남아있는 내 감정의 잔해이자, 해왕성의 띠를 뚫고 우주선에 올라탔다. ‘리마 프로젝트’는 아버지 자체였고, 그 프로젝트의 붕괴는 나와 아버지의 완전한 분리를 뜻했다. 나는 폭발력을 추진력으로 이용해, 지구로 귀환했다.



우주선의 문이 열리고, 고생했다는 말과 함께 사람의 손이 시야에 들어왔다. 아, 내가 있을 곳은 우주가 아니라 이 땅, 지구구나. 이제 혼자가 아니구나. 살아있다는 것이 행복했고, 돌아왔다는 것이 만족스러웠다.


더는 멀리 있는 것을 쫓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소중한 건 곁에 있었다. 미지의 생명체를 찾는 게 아닌, 소중한 이의 마음속 진심을 찾아내기로 마음먹었다. 죽을 뻔한 사고에서도 인생의 깨달음을 얻지 못한 나였는데, 아버지를 만난 후의 나는 제2의 인생을 살 수 있게 된 것만 같은 기분을 느꼈다.

나의 우주는 내 안에 있었고, 나는 감정이라는 은하계를 탐험하며, 나 자신의 진짜 삶을 살아낼 필요가 있었다.



더 이상, 내 삶은 어둠 속을 떠돌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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