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적은 우리 안에 있었다.
3년 전, 사심 충만 <오! 쾌남>이라는 역사 여행 예능을 하고 있을 때, 당시 전문가 출연자였던 전수현 선생님을 통해 충격적인 깨달음을 얻은 적이 있었다. 우리나라가 받았던 침략의 역사와 현재 대한민국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선생님의 이야기를 정리하자면 이렇다.
한반도는 아주 오래전부터 긴 시간 외세의 침략을 받아온 땅이었으나, 주된 침략 수단이었던 무력 전쟁으로는 절대 이 땅을 빼앗을 수 없었다. 공격이 들어오면 이 나라의 국민들은 모두가 무기를 들고 일어섰다. 자신의 목숨을 잃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나라를 향한 무력 공격에 맞서 싸웠다. 이는 일본과의 싸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일본은 우리나라를 여러 번 침략했으나 결과는 매번 실패로 돌아갔다. 대한민국은 호락호락한 나라가 아니었다. 그래서 그들은 노선을 바꿨다. 무력 전쟁이 아닌 (보이지 않는) 이 나라의 민족정신을 말살시키는 방법으로, 서서히 우리를 옭아맸다. 우리의 말과 글을 빼앗았고, 수많은 경제적 보상을 내세워 많은 한국인을 그들의 편으로 회유했다. 그러나 일본의 시도는 결국, 또다시 실패로 끝났다. 이 나라의 국민은 말과 글, 국가의 중요성을 알았다. 보이지 않는 전쟁에는 보이지 않는 방어로 임했다. 물론 각자의 신념대로 무력 방어를 강행했던, 행동파 독립군도 존재했다. 그렇게 나라를 지키기 위해 수많은 피와 목숨이 이 땅에 스러졌고, 우리는 일본의 전쟁 패망과 동시에 잃어버린 주권을 되찾았다.
여기까지 들으면 소위 요즘 사람들이 말하는 '국뽕'에 차오르기 충분하다. 내가 생각해도 위기에 대처하는 우리나라의 국민성은 가히 놀라울 지경이니까. 그러나 선생님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죽도록 힘들게 나라를 지켜놨더니, 그 어떤 외세의 침략도 모두 이겨냈더니, 결말은 6.25 전쟁으로 인한 이 나라의 분단이었다. 모두가 성공하지 못한 한반도 침략이, 우리 한민족의 대립으로 인해 이루어진 거다. 서로가 서로를 칼로 찌르고 총으로 쏴대며, 더는 흘려서는 안 됐을, 서글픈 한 민족의 피만 이 땅 위에 스며들었다. 결국 가장 큰 우리의 적은 우리 자신이었다.
말을 끝낸 뒤 선생님은 씁쓸하게 웃었고, 그 무렵의 나는 그의 말을 마음 속 깊이 새겨두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지금. 요즘, 나는 선생님이 하셨던 말을 여실히 체감하고 있다.
최근 집에서 홈 트레이닝을 하기 시작했는데, 그때마다 뉴스를 틀어놓고 동작에 집중했다. 드라마나 예능은 보다 보면 주객이 전도되는 상황이 생겨서, 그나마 흥미가 '덜' 생기는 뉴스를 선택한 거였다. 그러나 반복적으로 뉴스를 보고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다 보니 정치를 잘 모르는 나도, 어느 정도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알게 되더라. 예전 같았으면 아예 무관심했을 일들도 관심을 갖고 바라보게 됐다.
그런 의미로, 요즘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정말 일제 강점기가 연상되곤 한다. 물론 현실은 광복 이후로 많은 것이 달라졌지만 정작 일본은 변하지 않은 것 같다. 아직도 그 시절 그 마인드 그대로, 결국은 실패할 싸움에 뛰어드는 것 같다. 나름 안팎으로 우리를 압박 중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여전히 우리는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런데 뉴스를 보고 있으면 진짜 문제는 일본이 아닌 것 같다. 국민들은 일어서 싸우는데, 나라의 핵심 존재들은 입만 살아서 서로를 물고 뜯기 바쁘다. 총과 칼만 안 들었지 그들의 혀와 입은 이미 강력한 무기가 됐다. 말꼬리를 잡아 유치한 싸움을 하고, 헐뜯고, 막말을 일삼는다. 겉으로는 일제 강점기가 보이는데 속으로는 6.25 전쟁 직전의 이념 대립이 보이는 것 같다. (과거 청산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 나타나는 서글픈 결과인가)
정당한 비판과 건강한 견제. 정치라는 것의 순기능이 지금으로선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냥 시장통 싸움을 구경하고 있는 것 같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싸웠던 그 시절, 영웅들이 다시 깨어난다면 지금의 현실을 보고 무슨 말을 할까? 그들이 목숨을 내놓으며 상상했던 대한민국이 과연 이런 나라였을까.
솔직히 나는, 일본의 공격에 대해서는 그리 걱정이 되지 않는다. 예전부터 그랬듯 우리 민족은 늘 잘 해낼 테니까. 어떤 식으로든, 어디서든 방법을 찾아내 이 나라를 지킬 테니까. 다만 6.25 전쟁이 발발했듯, 핵심 인물들의 이념 대립이 제일 두려울 뿐이다. 안에서 무너지면 답이 사라진다. 외부의 공격에 강력한 방어력을 자랑하는 우리 민족은, 정작 내부의 위협에는 지나치게 약했다.
최소한 이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분들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라도, 언젠가 한 예능에서 나왔듯 모두가 올바른 정도(正道)를 걸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