험담

시원함과 찜찜함 사이

by 흐를일별진



나는 약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좋은 사람은 아니다.


사실 얼마 전부터 누군가가 미워지기 시작했다. 미워하지 않으려 오해하지 않으려, 어떻게든 이해하려 노력했는데 맘처럼 안됐다.
참다못한 나는 나만의 저수지를 찾았다. 미움을 쏟아냈다. 결국 내 탓일지도 모른다는 말을 방패 삼아 부정의 기운을 밖으로 쏟아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찜찜한 기분을 느꼈다. 놀랍지도 않았다. 사실 험담을 하던 도중 나는 이미 내가 옳지 못한 일을 하고 있는 걸 알았다.

정당화했다. 이 험담으로 인해 문제가 생긴다면, 그마저도 내 행동의 결과이니 받아들이겠다고. 지금의 나는 속이 시원해진 것에 만족한다고. 험담의 죄책감 때문에 미움이 줄어들었으니 그거면 됐다고. 그러나 우습게도 진짜 내면은 정리되지 않았다. 그렇게 믿은 것뿐이었다.


험담의 결과는 일시적이다. 아주 잠깐 속이 시원해지지만, 돌아서면 불안과 후회만 남는다. 그런 면에서 최악인 건 내가 미워하기 시작한 사람은 뒤끝이 없다는 사실이다. (최소한 지금은 그렇게 보인다)


다른 이야기이긴 한데, 난 뒤끝 없다는 말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말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쉽게 죄책감을 느끼는 나로선 그런 성향이 불편하기만 하다. 그가 던진 감정의 혼란을 받아내고 흘려보내는 건 오롯이 내 몫이 되니까 말이다.

이것도 험담이다. 면 대 면으로 험담하는 내 모습에 환멸을 느끼니, 누군가는 내 이야기에 공감하겠지 생각하며 글로써 험담하는 것과 같다. 포장이다. 나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눈을 감고 있다. 이 또한 영화 다우트 대사처럼 널리 널리 퍼져가려나. 아닌가. 이건 반성문일까.

해가 지나고 조금 더 성숙해지는 걸 기대했는데 사람을 대하는 데 있어서는 여전히 여유가 없는 것 같다. 아마 끝이 없겠지. 대신 정당화하는 능력은 확실히 늘었다. 뭐 하나라도 발전했으면 된 건가. 최소한 예전처럼, 고민하고 자책하다가 밤을 지새우는 일은 없으니까. 이거면 됐나,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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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있는 배게를 지붕으로 가져가서 칼로 찌른 다음에 다시 오시오. (얼마 후) 배게를 찔렀소?"
"네 신부님"
"어떻게 됐죠"
"깃털들이 쏟아져 나와서... 사방으로 날렸어요"


"집으로 돌아가서 바람에 날린 깃털을 모으시오"

"그건 불가능해요. 어디로 날아갔는지 모르거든요."
"바로 그것이 험담이오."

- 영화 <다우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