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유명해지길 바라며
그를 처음 만난 건 내가 직장을 옮기고 나름 내 작품이라는 애착이 생긴, 첫 대본 리딩 날이었다. 굉장히 자극적인 사연이었고 새 시즌을 노린 듯 연기를 제일 잘한다는 두 분을 주연으로 모셨는데, 그 중 남자 주인공이 바로 준환씨였다.
그리고 그날. 처음으로 희열을 느꼈다. 내가 쓴 대본이 이렇게 실체화가 되는 구나. 생각했던 대사의 호흡, 강세 모든 게 그대로 살아나는 기분이었다. 그때 준환씨의 상대 배역은 주혜지라는 배우였는데 그 분도 연기력이 탁월했다. 다만 내가 준환씨에게 먼저 눈이 갔던 건 단 하나의 이유였다.
“이 사람, 대사를 갖고 논다”
단순한 문장에도 호흡이 있고 나의 경우 대본을 쓸 때 나름의 대사 호흡을 그대로 담는 편인데, 그걸 준환씨가 기막히게 살렸다. 쉼표, 마침표, 지문. 심지어 상대 여배우인 지혜씨와의 합도 너무 좋아서 솔직히, 눈물이 날 뻔했다.
중간 중간 캐릭터의 배경에 대해 설명하는데 유난히 준환씨와 눈이 많이 마주쳤다. 고개를 끄덕이며 내 말에 동의를 해 주고, 또 본인이 연구해온 캐릭터의 성격을 말해주던 준환씨. 그 전날까지 죽도록 까이고 자존감이 바닥을 치던 나에게, “작가님 대본이 너무 좋다”며 힘을 주던 그. 아마 본인은 모를 거다. 자신이 누군가에게 어떤 영향을 줬는지. 보잘 것 없는 나의 글을 누군가는 이렇게 고민하고 또 고민하면서 연기를 준비해 왔구나. 그건 곧 내가 인정받은 것과 마찬가지인 기분이었다. 배우와 눈을 마주치고 의견을 나누고 리딩을 하는 게 이렇게 즐거운 일이었다니.
그런데 대본 리딩이 끝나고 그가 내 이름을 물었다. 별 거 아닌 거긴 한데, 몇 달 째 그 프로그램에 몸담은 결과 작가의 이름을 물어본 배우는 처음이자 마지막, 단 한사람이었다. 배우 정준환.
그날 이후 나에겐 버릇이 생겼다. (물론 일을 그만두고 싶은 지금은, 하지 않는 행동이지만.) 내 대본에 연기를 해 주시는 주연 배우들에게 응원의 마음을 전하는 것. 이 버릇엔 준환씨의 영향이 크다.
그 리딩 이후, 고민 끝에 인스타 DM을 보냈는데 돌아온 준환씨의 답변이 너무 감동적이었으니까. 만약 그가 시니컬한 반응이었다면, 배우들은 다 이렇구나 실망하며 그저 평범하게 일 했을지 모른다. 그런데 준환씨는 달랐다. 물론 이 사람이 아직 신인이라, 이름이 덜 알려져서 이런 반응인가 생각하기도 했었는데 그의 멘트는 요즘도 내가 들여다 볼 정도로 감동적이었다.
나는 그가 잘 됐으면 좋겠다. 그리고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방송, 언론, 연예계. 이 바닥이 얼마나 더러운 지 안다. 나도 늘 도망치고 싶으니까. 하지만 이기적이게도 난 준환씨는 버텨줬으면 싶다. 잘 하는 사람이고 노력하는 사람이라 믿는다.
언젠가 뒤늦게 빛을 보는 배우들이 그렇듯 그도 버텨냈으면 좋겠다. 사람의 앞날은 아무도 모른다. 비록 지금은 걷고 있을 지라도 언젠간 날아오를 지도 모를 일이다. 나 또한 좋아하는 야외 예능에서 그를 불러 즐겁게 방송을 하게 될 지도 모를 일이고.
배우, 정준환을 응원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