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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디지만 우아하게 Nov 24. 2016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

サラダ好きの ライオン: 村上ラヂオ(3)

글, 그리고 길


배낭을 메고 길에 오르듯 글과 함께 길에 오른다. 때론 글이 길을 이끌기도 하고, 때로는 길 위에서 글을 마주하기도 한다. 시와 철학은 우리의 삶을 낯설게 한다. 우리는 여행을 하며 오래된 자신을 만난다. 그렇게 우리는 길 위에서 시와 철학자가 된다. 길 위에서 글을 만난다.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라니! 한 번 키워보고 싶다. 고기를 조금만 좋아할 테니 나를 물지도 않을 텐데. 다만 사자만큼이나 채소를 좋아하는 내 밥그릇이 벌써 걱정이다. 이런 이유로 사자는 샐러드를 좋아하지 않는 게 모두를 위해서 좋다. 사자는 샐러드를 먹지 않아도 지금처럼 고지방 저탄수화물 식단으로 건강할 테니. 사자 미안.


사자와 샐러드를 상상하느라 책 소개가 늦었다. 지난번에 이어 무라카미 하루키 씨가 '앙앙(anan)'이라는 잡지에 연재한 에세이의 다음 한 해 분이다. '무라카미 라디오'의 세 번째 단행본이기도 하다. 모처럼 알라딘 중고서점에 다녀왔다. 예전에는 서울 종로에 있는 중고서점을 왕왕 다녔는데 외국에서 일을 시작한 뒤로는 좀처럼 가볼 기회가 없었다. 지금은 직장을 잃었지만 다시 낡은 책을 얻었다면 제법 괜찮은 거래 아닐까?


하루키 씨의 글에는 항상 음악과 채소와 고양이가 있다. 좋아하는 걸 적는 게 좋다는 단순한 이유다. 쓰기 싫은걸 쓰다 보면 사자가 샐러드를 좋아한다는 가설과 증명들이 연속해서 하품을 유발하는 논문이 될 테니 제법 설득력 있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채소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역시 모두 좋은 사람이다...라는 지론 같은 건 가지고 있지 않지만,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주제로 글을 쓰는 하루키 씨가 한층 좋아졌다.


소설로 읽는 하루키 씨가 진지한 표정으로 은행나무 길을 걷고 있다면, 에세이로 만난 하루키 씨는 떨어진 낙엽을 청소하는 동네 이웃의 모습이다. 대부분 긍정적이지만 소설을 쓸 때면 사람의 어두운 면을 보게 된다는 그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런 의미에서 에세이집에 담긴 하루키 씨의 글은 밝고 경쾌하다. 정말이지 당장이라도 밖에 나가서 가을을 툭툭- 차며 걷고 싶은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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