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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디지만 우아하게 Nov 25. 2016

어떤 명함

이게 나예요

부쩍 글을 자주 쓰게 되는 요즘이다. 약간의 주저함과 왠지 모를 쭈뼛함도 있다. 그래도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사색하는 시간이 많아졌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다. 언제 다시 시류에 떠밀려 물결을 거슬러 오를 수 있을지 알 수 없기에 이 시간을 기뻐해야지. 멈춰서는 것에도 용기가 필요한 하루다.


수집에 관심 없는 나에게도 금세 쌓이는 게 있다. 눈처럼 소복이 쌓이는 추억이 그렇다. 그리고 명함이다. 불편한 자리를 피할 때 잠시 유용하긴 하지만 좀처럼 명함으로 시작하는 인사가 어색하다. 마치 '나는 이런 사람이니까 너는 이 정도만 알고 있으면 된다'라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여행이 좋다. 단 하루, 한 끼의 식사에도 친구가 된다. 명함 따위는 발 디딜 곳 없는 분주한 곳이다. 차가운 종이는 금세 녹아버릴 따뜻한 체온을 느낀다. 


그럼에도 기억되는 두 장의 명함이 있다. 물론 내 명함은 아니다. 하나는 네 잎 클로버가 담긴 명함이다. 어린 시절 책 사이에 나뭇잎을 모아두긴 했지만, 네 잎 클로버 명함이라니. 사람과 순간이 좋아진다. 태국 치앙칸을 여행하던 중에 만난 여행자 누나가 건넨 명함이다. 행운이 찾아올 것만 같다. 어쩌면 이미 그 행운을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아름다운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다음은 오래된 느낌의 갈색 명함이다. 앞면에 이름, 뒷면에 메일과 홈페이지 주소가 전부다. 라오스 루앙프라방에 있는 일식당에서 한 여성분을 만났다. 눈인사로 시작해 친구가 되었다. 본인을 작가라고 소개했고 나도 글을 쓴다고 답했다. 우리는 더 가까운 친구가 되었다. 천사 같은 눈망울의 꼬마 아이(딸)가 아직도 눈에 선하다. 헤어진 뒤 몇 번의 메일을 주고받고 홈페이지를 방문했다.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미학과 문학을 공부했다. 그런 건 명함 귀퉁이에라도 한 줄 정도 적어두면 좋으련만. 멋진 친구가 한 명 더 생겼다. 


명함을 내미는 상대에게 미소로 답하는 상상을 해본다. 어리둥절해도 하는 수 없다. 오롯이 나로 존재하는 순간. 명함이 아닌 삶으로 '이게 나예요'라고 말하는 우리면 좋겠다. 내가 직책 따위는 모르는 두 명의 친구를 기억하듯 누군가 나를 그렇게 기억해주면 좋겠다. 명함은 서랍에서 겨울잠을 자지만 추억은 초콜릿처럼 꺼내 먹을 수 있다고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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