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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lmarenvento Jan 08. 2019

수레바퀴 아래서

Unterm Rad

글, 그리고 길


배낭을 메고 길에 오르듯 글과 함께 길에 오른다. 때론 글이 길을 이끌기도 하고, 때로는 길 위에서 글을 마주하기도 한다. 시와 철학은 우리의 삶을 낯설게 한다. 우리는 여행을 하며 오래된 자신을 만난다. 그렇게 우리는 길 위에서 시와 철학자가 된다. 길 위에서 글을 만난다.



수레바퀴 아래서


헤르만 헤세의 작품이다. 데미안을 통해 처음 헤르만 헤세를 읽었고 그 뒤로 싯다르타를 알게 됐다. 이 책은 내가 세 번째로 읽은 헤세의 글이다. 처음 책을 접했을 때 두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먼저, 물레방아가 돌아가는 고요한 전원의 풍경을 생각했다. 아마 빨간머리 앤이나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의 한 장면을 떠올렸던 것 같다. 다음은 양반전으로 유명한 조선 후기 실학자 박지원을 생각했다. 엉뚱한 생각에도 나름대로의 이유는 있다. 물레방아는 수레바퀴와 그 모습이 닮았다. 그리고 연암 박지원은 수레의 활성화를 통한 조선의 발전을 주장했다. 물론 어느 것 하나 헤르만 헤세의 의도와는 닿아 있지 않다.


소설에는 두 명의 소년이 등장한다. 한스와 하일러. 한스는 소위 모범생의 삶을 살아온 소년이다. 반대로 하일러는 자유분방한 이단아에 가깝다. 세상이 말하는 성공적인 인생을 위태롭게 따라가는 한스. 세상보다는 내면의 소리를 따라가는 하일러. 잘 다듬어진 모범생과 길들여지지 않은 천재는 그렇게 서로에게 이끌린다.


인상적인 문구가 있다. 역사적으로 제도 교육은 천재성의 발현을 억누르고 훈육된 학생들을 양성하면서 발전해왔다. 그렇지만 제도 교육을 넘어 멀리 날아간 천재들은 세상의 규칙을 무너뜨리거나 스스로를 무너뜨린다. 그들의 일부는 위대한 영웅으로 또 다른 일부는 실패자로 기억된다. 한스에게 하일러는 학교의 담장을 넘어 자유롭게 창공을 누비는 새였다. 그리고 그 새는 결코 떠난 장소로 다시 돌아올 수 없다.


하일러처럼 하늘을 날고자 했지만 담장을 넘지 못했던 한스. 그렇게 날개 잃은 새 한스는 하일러와는 다른 방식으로 학교 담장을 나선다. 그의 아버지가 그토록 두려워했던 수레바퀴 아래에 놓인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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