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온 뒤 땅이 굳는다는 말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대단한 이유는 아닙니다. 비가 내리기 전에도 비가 내린 후에도 땅은 여전히 굳건하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비는 무언가를 단단하게 해 주기 위해 내리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비는 비대로 땅은 땅대로. 그렇게 그저 서로의 할 일을 다할 뿐입니다. 비 온 뒤 땅이 굳어졌다면 그건 단단해져 가는 땅 위로 마침 비가 내렸기 때문입니다. 누구의 탓도 누구의 덕분도 아닙니다. 오직 내리는 비와 굳어진 땅의 의지가 그 자리에서 만났을 뿐입니다. 어쩌면 어린 왕자와 여우처럼 그 찰나의 마주침에 오래도록 서로를 그리워할지 모릅니다. 단단해지는 자신을 볼 때마다 땅은 비를 떠올리겠죠, 여우가 그랬듯. 길들여진다는 것은 그런 거니까요. 그럼에도 하루를 살아냈던 여우처럼 땅도 스스로를 굳게 합니다. 다시 비를 만날 날을 기대하며. 그게 비가 하는 일이고 땅이 하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