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을 메고 길에 오르듯 글과 함께 길에 오른다. 때론 글이 길을 이끌기도 하고, 때로는 길 위에서 글을 마주하기도 한다. 시와 철학은 우리의 삶을 낯설게 한다. 우리는 여행을 하며 오래된 자신을 만난다. 그렇게 우리는 길 위에서 시와 철학자가 된다. 길 위에서 글을 만난다.
지식의 세계사
넓은 도서관에서 우연히 이 책을 만났다. 서론의 도입부를 읽으며 깊은 인상을 받았다. 지난 일주일 동안 씨름하듯 출퇴근 시간을 쪼개어 책을 읽었다. 그만큼 쉽지 않은 지적 자극과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책이었다. 이 책이 내게 남긴 흔적을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철학은 저자의 글을 직접 읽고 사색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해왔던 내게, 제3의 저자의 글이 이렇게도 깊고 유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준 책이다. 저자의 모든 해석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본인의 관점을 비교적 명료하게 설명하는 논리와 그 투명함이 좋았다.
책은 '사상적 근대성'이라는 주제를 탄생, 위기, 해체의 세 단계로 설명한다. 시대적 배경은 16-20세기, 공간적 배경은 유럽을 중심으로 한 서구사회다. 철학의 발상지가 유럽이라는 점을 부인하기는 어렵지만(그럴 필요도 없겠지만), 서구사회를 중심으로 써 내려간 이 책에서 저자는 시종일관 서구사회라는 유럽 중심적인 표현과 사고방식에 비판적인 시선을 견지한다.
사회 초년생이 겪는 어려움 중 하나는 충분한 설명 없이 무언가를 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상급자의 지시로 일을 하긴 하지만, 전후 사정과 맥락을 이해하지 못한 채 그저 일을 처리해내기 일쑤다. 신입직원에게 모든 상황을 설명하고 이해하도록 강요하는 것도 또 다른 짐을 지울 수 있겠지만, 전체적인 그림을 이해하지 못한 채 일을 한다는 건 이유를 막론하고 쉽지 않은 일이다.
소위 철학과 역사 등 사회과학 분야에 관심이 있지만 큰 흐름이라고 할 수 있는 기준점을 갖추지 못해 산발적인 지식들이 파편처럼 흩어져있다면 이 책이 어느 정도 스스로의 관점을 갖추는데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한다. 쉽진 않았지만 읽는 내내 즐거운 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