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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디지만 우아하게 Feb 04. 2017

향기

그 날의 분위기

언젠가부터 향수를 쓰기 시작했다. 처음은 선물을 받았고 다음부터는 구입했다. 선호하는 브랜드나 향은 없다. 그저 '느낌이 좋은 향'이면 충분하다. 다소 주관적인 기준이지만 그런 게 좋다. 정해지지 않아 즐거운 삶이라는 나름의 개똥철학을 여기에도 억지로 가져왔다. 다른 사람들의 코 끝을 찡그리게 하지만 않는다면 그걸로 다행이다. 지금 사용하는 향수가 여성용이라는 사실을 얼마 전에 알았다. 부끄럽진 않았다. 대신 소소한 에피소드가 생겼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추억을 간직하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장소와 대화, 옷차림 등으로 기억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 날의 분위기를 떠올리는 사람들. 나는 후자에 가깝다. 도무지 어디에서 무엇을 했고 어떤 옷을 입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느낌이 남아있을 뿐이다. 누군가 내게 어떤 순간을 묻는다면 좋았다거나 따스했다거나 시원한 바람이 불었다고 이야기해줄 따름이다. 그래서인지, 여행 계획을 세우는 친구들에게 나의 여행후기는 좀처럼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다시 언젠가부터 추억에 향기가 더해졌다. 그 날의 분위기와 함께 향기로 기억되는 순간과 사람이 있다. 가령 나에게 남해는 푸른 바다와 유채꽃 향기로 기억된다. 역시 어디에 서있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해안가 어디 즈음이었겠지만 그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다음에 남해에 간다면 꼭 그곳이 아니어도 바다와 유채꽃의 푸르름을 느낄 수 있을 테니까. 정해지지 않아 즐거운 삶의 낭만이다.




어제 선물 받은 디퓨져의 향기가 좋다. 언젠가 다시 이 향기를 만나게 된다면 선물한 친구를 떠올리겠지. 오래도록 추억될 향기를 선물한다는 건 제법 멋진 일이다.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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