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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디지만 우아하게 Feb 07. 2017

의미가 되어주는

누군가의 무엇처럼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무척 슬펐다. 어려서 할아버지와 보낸 시간들이 많았다. 할아버지 뒤를 따라 걷는 시골길좋았다. 한 번도 이기진 못했지만, 할아버지에게 장기를 배운 덕분에 또래 친구들과의 대결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시골이 있어서 다행이다.


아버지가 우셨다. 그래서 슬펐다. 부모님이 우시는 모습을 보는 건 뭐라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의 소용돌이다. 나도 그랬다. 장례식이 지난 후에 들은 아버지의 한 마디가 무엇보다 나를 슬프게 했다. 목욕탕의 따뜻한 물에 잠긴 몸과 마음이 조금씩 풀어질 즈음, 옆에 계신 아버지가 '이젠 아빠에게 아빠가 없어서 그게 슬프다'라고 말씀하셨다. 말문이 막혔다. 그저 도망치듯 더 깊은 물속에 머리까지 담그고 한참을 그렇게 있었다.


'누군가의 무엇'이 되어주는 삶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할아버지는 평생 할아버지셨지만 그보다 조금 모자란 시간 동안 아버지의 아버지셨다. 무엇이 행복했는지 묻는다면 아마 후자라고 답하셨을 것 같다. 나는 나인 게 좋다. 그렇지만 나도 누군가의 무엇이 되어줄 수 있다면 좋겠다. 쌓인 시간만큼 이별의 순간이 슬프겠지만 그보다 더 많은 의미가 되어준다면 그제야 후회가 없었노라고 감히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김춘수 시인의 글처럼,

나에게 와서 무언가가 되어준 모든 이들이 고마운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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