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의 이야기
얼마나 많은 생명을 잡아먹어야 송곳니는 만족할까? 나는 만족할 줄 모르는 송곳니가 무섭다. 날카롭게 벼려진 칼날은 탄탄한 피부를 몇 번이고 찢어발겼겠지. 꿈틀거리는 수많은 피부들을 물어뜯을 거야. 잠깐이나마 눈을 붙이려고 할 때면 이빨 틈 사이에 낀 고깃덩어리가 잇몸을 간질인다.
아버지는 나에게 살아남는 법을 가르쳤다. 삶은 전쟁이고, 나는 사냥에 참전한 것이다. 사랑과 따스함은 전리품일 뿐, 오직 목표를 노리라고 말하셨다. 그 말의 뜻을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이제는 안다. 세상에는 오직 사냥을 나선 전사와 도망치는 겁쟁이, 오직 두 부류 밖에 없다는 것을.
아버지의 말뜻을 깨닫게 된 계기는 A였다. 순진하게 어른이 된 스무 살의 나는 A의 먹잇감이었다. A는 술집에서 몸을 파는 남자였다. 누구나 순결한 사랑을 꿈꾸곤 한다. 그저 어른이 될수록 현실적으로 내 수준에 맞는 반려자를 찾는 것이다.
A를 보자마자 처음으로 ‘관능적이다’라는 말의 참 뜻을 이해하게 되었다. 성적으로 사람을 끌어들이는 존재이며, 자신의 매력을 무기로 활용할 줄 아는 사람이다. 여린 소년이면서도 굳은살이 박혀있는 A의 손은 나를 첫눈에 사로잡았다. A와 연애를 시작하고 머지않아 그가 남창임을 알았었다.
A는 효자다. 그는 늘 새벽에 나가고 밤에 돌아왔다.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도 잘 몰랐다. 나중에야 들은 이야기지만, 그는 새벽에는 공장에, 점심엔 편의점에, 밤에는 술집에 있었다고 한다. A는 자신의 몸이 얼마나 비싸질 수 있는지 깨달았을 때, A는 더 이상 사람이 아니었다.
A는 일을 하는 자신이 정육점 사장님과 다를 바 없다고 말했다. 배고픈 사람이 오면 고깃덩어리를 팔아 배불리 채워주는 도축업자다. A는 이내 성별, 나이, 국적 등을 가리지 않고 장사를 했다. 그 돈으로 교통사고로 죽은 아버지의 빈자리를 채우고, 어머니 병원비를 납부했을 것이다.
나는 A의 메시아가 되어 그를 구원해야 한다고 믿었다. 세상에 더럽지 않은 사람은 없다. 추잡한 면모는 누구나 가지기 마련이니, 모난 A의 단점을 닦아주는 반려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나는 A가 남창임을 알았을 때, 나는 그의 숨통을 틔워줄 공간이 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자연의 섭리처럼 A와 내가 만난 것은 하늘의 뜻이라고만 여겼다.
A의 탄탄한 몸을 뒤집고 또 뒤집어 살피며, 단단한 소고기를 굽듯이 맛을 보았었다. A와의 성관계는 폭력적이었지만 좋았다. 사랑의 종류도 여러 가지라 하지 않는가. 아가페적인 사랑, 에로스적인 사랑이 있듯이 말이다. 이 남자의 사랑은 목을 쥐어짜는 듯 숨이 막혔다. A의 친구들은 항상 나에게 “저런 놈의 무슨 부분이 좋다고 만나느냐”며 걱정하곤 했었다.
“잘 생겼잖아요.”
반은 진심이었고, 반은 거짓말이었다. 진정으로 잘생긴 얼굴이지만, 어릴 때 꿈꿔왔던 연예인 같은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왕자님을 꿈꾸는 어린애가 아니다. 내가 가질 수 있는 남자 중 현실적으로 최고의 외적인 가치가 있다고 여겼다.
이상함을 느낀 시작점은 서울 강변에 갈 때였다. A의 일터에 택시를 타고 가기위해 올라탔었다. 목적지를 향해 5분 정도 되었을 때였다. A는 택시 기사가 돈을 더 받기 위해 돌아간다고 여겼던 지, 매서운 눈초리로 노려보더니 말도 없이 택시 운전사의 뒤통수를 가격했다. A는 “순진한 서울 촌놈들은 속여도 날 속일 순 없다”며 갓길에 차를 세우게 만들고 주먹이 부러지도록 운전사의 머리를 가격했다. 갑작스런 A의 분노는 이해되지 않는 것이었다. 어째서 그는 화를 이렇게 냈던가? 평소에는 천사 같은 소년인데, 갑자기 헐크가 되어 합리적이지 않은 폭력을 휘두른단 말인가?
A의 톡 쏘는 폭력은 성관계에도 이어졌다. 그와 데이트를 30분 늦은 날 A는 삐진 듯 콧방귀를 끼었다. 내내 삐진 어린애처럼 굴다가, 싸구려 모텔에서 내 목을 쥐고 목덜미를 피가 나도록 물어뜯었다. 풍선이 터지는 것만 같은 날카로운 통증에 놀랐었다. 비명은 A의 손아귀에 걸려 시뻘건 공포로 피어났다.
이건 공포인가? 아니면 행복? 몸과 심장은 떨리고 있었지만, 쾌락 때문인지 두려움 때문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A의 “사랑한다.”라는 말과 함께, 오묘한 이빨자국들이 피부를 찢고 장난삼아 눌렀다.
섹스가 끝나고 저녁동안 나는 잠을 이룰 수 없었다. A에 대해 나는 공포심이 생긴 것일까? 그렇다면 그를 볼 때 어째서 이렇게 애틋하고 떨리는 것일까? 왜 가까이 갈 때 두려우면서도 사랑한다는 이 떨리는 감정이 드는 것일까?
A와 같은 매력적인 남자를 사냥하기 위해서는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법이 아닐까? 집 고양이가 주인을 할퀴는, 애정의 상흔 같은 것이 아닐까?
A는 어쩌면 아버지에게 사랑을 주고받는 법을 모르는 어린 아이면서, 내가 키우는 육식동물인 것이었다. 나는 잠자는 그의 짧은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순간 오른쪽 머리 귀 끝 상단 부분에 꼬맨 자국이 길고 가늘게 남아있는 것을 느꼈다.
A는 자신의 아버지가 죽었던 사건과, 가족에 대한 이야기는 함구했었다. 암묵적인 A와 나의 규칙이었다. 다만 손끝에 수술자국이 닫는 순간 나는 깨달았다. A는 교통사고로 고장 난 괴물인 것이라고.
수술 자국은 ‘우측 실비안열’이라는 낯선 뇌 부위였다. 인터넷에 검색한 내용들은 번잡하고 어려운 내용들이었지만, “A의 분노 통제와 사랑에 대한 조절능력이 망가졌다”라는 사실을 명백히 말하고 있었다.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내가 A를 조절하며 돌본다고 여겼건만, 그저 잘생긴 짐승과 동침을 여태껏 해왔던 것이었다.
거미줄에 걸린 나방은 퍼덕일수록 더욱 날개가 엉킨다. 거미가 다가오면 죽는다는 공포감을 느끼지만, 잡아먹지 않고 다정하게 내버려둔다. 그리고 거미줄로 천천히 감싼다. 나방이 도망치려고 발버둥을 치면 으름장을 놓듯 오른쪽 날개 윗부분을 찢어버린다. 나는 바보같이 날개를 찢는 거미가 다정하다고 여겼던 것이었다.
다음날 아침 A와 나는 샐러드를 먹었다. 나는 입맛이 없다고 한사코 거절했으나, “그럴수록 먹어야 한다.”라며 고기를 시켰다. 8만원 어치의 스테이크(평소라면 ‘이렇게나 나를 사랑하는구나!’라며 감복했을 것이다)의 고인 핏자국은 어제 A가 미친 듯 물어뜯었던 목의 이빨자국을 저리게 했다.
나는 “배가 이상하게 부르다.”며 한 입 먹고 포크를 내려놨다. A는 그 말을 듣고 “내가 사준 성의를 무시하는 건 아느냐? 먹기 싫으면 먹지 말라.”며 그릇 채로 집어 던졌다. 나는 놀라 종업원에게 한사코 미안하다며 깨진 파편을 치웠다.
씩씩대는 A의 고함과, 물린 목덜미와 떨어진 고깃덩이를 바라보는 주변인들, 그리고 유리 파편에 손가락이 베인 나.
A는 그동안 사냥 당하는 척 나를 사냥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목의 통증과 손가락에서 피어나는 새빨간 피가 여태 꼴좋다며 비웃는 것만 같았다. 바닥에 내팽겨쳐진, 물어뜯긴 스테이크가 울고 있었다.
이날 A와의 아침밥은 그와의 마지막 식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