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의 이야기
나는 굶주렸다. 먹고, 자고, 길거리에 찌꺼기를 먹는 짐승보다 더 비참했다. 따뜻한 체온과 짐승 같은 욕정, 형용할 수 없는 회색지대의 공허함. 위장은 마른 사막처럼 헛헛했다.
어째서 나는 배가 고픈가? 과거로부터 비롯된 애정결핍 때문일까, 아니면 물어뜯긴 상처의 잔흔일까.
B는 내 위장을 채울 좋은 먹잇감이었다. B를 처음 만난 것은 직장이었다. B는 190센티미터가 넘는 장신의 몸뚱이를 겨우 가누면서 “혹시 성인도 학원 등록이 가능 하느냐”고 물었었다. 젖살이 남은 통통한 얼굴과 달리, 팔뚝은 앙상했다. 홍채는 바닥을 떠돌았고, 웃음은 배운 적 없는 흉내에 불과했다. B의 모습은 낙오된 사슴처럼 위태로웠다.
직관적으로 나는 ‘반드시 이 사람을 잡아야겠다.’라고 다짐하였다. 그를 사로잡기 위해선 무슨 수라도 쓸 것이라고. 마치 어린 시절 아무것도 모르는 굶고 다니는 나를 보는 것 같았다. B의 차갑게 메마른 두 손을 내 손으로 따뜻하게 만들고 싶었다.
B는 이야기 중에도 계속 “엄마한테 한 번 전화 해보아도 되겠느냐”라고 이야기 하며 사소한 결정조차 못했다. 섬뜩한 피부 아래로 보이는 다리에는 멍 자국을 보고 나는 ‘B는 엄마한테 맞고 사는 인간이구나!’라고 확신했다. 진짜 엄마한테 가정폭력을 당하는 사람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어떻게 설계해 내 것으로 만드느냐가 관건이었다.
B가 만약 맞고 사는 어른아이라면, 어떻게 내 것으로 만들 것인가? 내가 생각한 방법은 ‘B의 엄마가 되어서 폭력적인 모습이 아닌 다정한 엄마로서 기능하기’였다. B의 사랑해주지 못한 결함을 내가 대신 채워준다면, 못 받은 사랑을 나에게 사랑해 달라고 아이처럼 매달릴 것이라 생각했다.
나는 ‘파블로프의 개’처럼 B를 조련했다. 규칙은 단순했다.
첫째, 내가 친절한 엄마 행동을 할 것.
둘째, 첫 번째 행동을 할 때 파블로프의 개처럼 종소리를 줄 것.
나는 면담이 끝나고 B에게 아이스크림을 쥐어 주었다. B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혼자서 영어를 배우려고 오는 것이 쉽지 않은데, 정말 대단해요. 예뻐”라고 칭찬했다. 놀랍게도 칭찬은 먹혀들었다. 처음으로 웃으며 아이스크림을 먹기 시작했다. B가 웃을 때 나도 웃었다. 내가 어릴 적 엄마 없이 못해본 즐거움을 대신 웃은 미소가 좋았다.
B에게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내가 B의 어머니가 된 듯 암시를 주려고 최선을 다했다. 먹을 것으로 환심을 사려 노력했지만 마음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B가 실수를 하거나 나를 시험하듯이 시험문제를 못 풀 때 나는 종 대신 손가락을 튕기며 소리를 ‘딱 딱 딱’ 세 번 내었다. 그리고 “힘들어 보이네요, 괜찮아요. 실수를 해야 더 잘해질 수 있으니까요. 애기학생”라며 농담인 듯 진심을 말했다.
B를 어느 정도 알아갈 즈음, 그가 “엄마! 나 문제 푸는 거 도와주세요.”라며 나에게 말했다. 이내 말실수를 깨달은 B는 당황하며 얼굴이 붉어졌지만, 나는 속으로 ‘내 노력이 드디어 결실을 맺는구나!’라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B의 말실수는 분명 나를 엄마로 여기기 시작한 것임이 분명했다. 나는 B에게 장난스럽게 엄마라고 불러도 괜찮다고 웃어넘기며 “엄마가 문제 푸는 거 도와줄까?”라고 말했다. 그렇게 부르는 게 당연한 것처럼 나는 B의 엄마가 되었다.
B의 요구는 날이 갈수록 진짜 갓난아기처럼 변모해가기 시작했다.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끙끙거리거나, “나 배고파요.”라며 진짜 어린 애처럼 말을 꺼냈다. 나는 B에게 모유를 먹이려고 젖을 물린 엄마가 된 착각을 느끼곤 했다. 때로는 나를 시험하려는 듯 “선생님, 저 화장실 가고 싶은데...”라며 반응을 보며 되려 내가 어떤 반응을 하는지 보려 하기도 했었다.
처음 나는 장난처럼 B를 내 모습에 맞춰 바꾸려고 했다. 허나 이 감정은 무엇인가? 귀여운 아이를 기르는 것 같다가도, 내가 요람에 전신이 구겨져 들어간 괴이한 기분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 모습을 B가 위에서 지켜보는 것만 같았다.
저녁 11시가 넘어 퇴근을 해서도, 새벽 4시에 잠을 청할 즈음에도 B는 연락을 수도 없이 했다. 한번 전화를 하면 먼저 끊는 법이 없었다. 전화를 끊으려고 하면 B가 애처럼 칭얼거렸다. 떼를 쓸 때마다 나는 B의 애기같은 얼굴을 잠깐이나마 밀쳐내고 싶었다. 정말로 B를 때리게 된다면 그의 엄마와 다를 바가 없었다.
애초에 B를 이렇게 만든 것은 나다. 이건 내가 설계한 사냥이고, 한낱 놀이었다.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는가?
내가 B를 아기로 만들고 있다고 생각했건만, 사실은 B가 엄마를 대체해줄 인간을 찾아 헤매고 있었던 것인가? 언제부턴가 190센티의 통통한 어른아이는, 내가 짠 정교한 실에 스스로 몸을 묶고 있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나는 B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이었을까? 약자로부터 얻는 성적인 착취? 귀여운 애기같은 남자와의 연애? 어릴 적 못 이뤘던 사랑의 되물림? 확실한 것은 내가 쳐놓은 덫에 내발을 집어넣고 있다는 것이었다. B를 폭력적으로 때리고 싶은 내 자신이 혐오스러웠다. B를 망가트려버릴 것만 같은 내 정신이, 더 이상은 버티지 못하고 망가질 것 같았다.
B를 안지 10개월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B는 커튼에 숨어 술래잡기를 하자는 어린아이처럼, 그는 자신의 생일선물로 커다란 장난감 자동차를 넌지시 바라는 듯 말을 꺼냈다. 나는 어른이 되어서 아직도 애처럼 구는 B에게 신물이 나다 못해 살점이 뜯기는 고통을 느꼈다. 그렇다고 B같은 사랑스러운 아이에게 감히 폭력으로 내치고 싶지 않았다. 생일이 다가올 수록 B는 잠을 잘 못잤다며 이야기 했고,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B의 생일날, 케이크와 함께 빨간색 모형 자동차를 선물로 주었다. B는 순진하게 웃으며 내가 최고라며 웃으며 내 볼에 뽀뽀를 하며 껴안았다. 나는 B를 살며시 밀어내며 진솔하게 말을 꺼냈다. 처음 B를 본 순간 이용해서 내 것으로 만들고 싶었다고 생각했으며, 책에서 본 기법과 암시를 쓰며 이용하려 했던 것 뿐 이라고 말했다. 이제 앞으로는 학원에서 학생으로만 보고 싶다고. 네 진솔한 마음을 이용한 것을 용서해달라 담담히 사과를 건넸다.
말이 끝나기도 전 B의 눈동자를 통해 눈물이 덩어리 째 떨어지기 시작했다. 갑자기 B는 자신의 손목을 연약한 손톱으로 피가 나도록 벅벅 긁었다. B는 낙태된 태아가 되어 울부짖었다. 나는 B를 움직이지 못하게 안았다. 무언가 잘못되었다.
사냥꾼이었던 나는 짐승이 되었고, 울부짖는 짐승은 나의 어릴 적 그림자였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나는 사라지고, 짐승의 송곳니만 남아 있었다. 이건 사랑도, 구원도 아니었다. 내가 오래 전 잃어버린 무언가의, 천박한 흉내였을 뿐.
B는 숨을 들이쉬지도 못한 채, 목 안쪽에 핏대가 솟아오르며 끅끅거렸다. 이내 제 육신을 버티지 못하고 선물과 함께 바닥에 나뒹굴며 숨을 쉬려고 애를 쓰기 시작했다.
엄마가 어떻게 나를 버릴 수 있어, 또 나를 이렇게 버리려 하는 거냐고, 엄마가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 나 버리고 가지 마, 잘못했어, 잘못했어, 잘못했어….
B의 괴이한 울부짖음과 사이렌 소리만이 귀에 맴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