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 위에 내리 앉은 눈

겨울에 먹는 딸기잼

by 장준

사실, 나는 딸기잼을 딸기에 얹어먹는 바보 같은 모순을 즐긴다.


겨울이면 어머니는 딸기 꼭지를 베어 설탕에 절이고, 병마다 살아있는 핏빛 빨강을 채워 넜었다. 그러나 나는 그 병 속의 청을 떠내, 물기 묻은 딸기 위에 덧씌워 먹곤 했다. 달콤한 것 위에 달달함을, 고생 위에 또 고생을 얹는 셈이다.


그렇게 자란 곳은 딸기밭이 끝도 없이 높은 산등성이 속 촌이었다. 흙 묻은 손으로 따낸 딸기를 바로 씹으면 입안이 온통 빨개졌고, 교회 종소리는 매일 같은 시간에 골짜기마다 울려 퍼졌다. 도시란, 그 먼 소리 너머의 별빛 같은 꿈이었다.


딸기가 냉해에 약하다고들 말들 하지만, 비닐하우스 속 딸기는 칼바람이 불 때 쯤 빛을 머금는다. 겨울잠을 대비하려는 개미와 새들도 몰래 구멍을 뚫고 과실의 맛을 보곤 했다. 어머니는 일거리가 늘었다며 짜증을 내셨지만, 나는 친구들과 비닐구멍을 드나들며 놀곤 했었다.


이모들과 이웃사촌의 몫까지 딸기를 나눠주고 남은 것은 전부 잼이 된다. 큰 통 속에서 자작하게 끓이다 보면, 딸기는 제 형체를 잃고 설탕과 하나가 되어 흐물거린다. 나는 그 모호함을 좋아한다. 하얀 순결한 설탕을 빨갛게 물들여가는 과정을 말이다.


저녁이 되면 교회 십자 네온사인에도 빨간 불이 켜진다. 눈이 덮힌 천장은 딸기같다만, 입 안에 넣고 맛을 볼 수 없어 아쉬웠다. 그럼에도 주말이 되면 친구를 보러 교회에 갔다. 유독 같이 놀고 어울려 지냈던 민호에게도 겨울마다 딸기를 한 소쿠리 건네주곤 했었다.


민호는 마을에서 유일한 외동아들다. 목사님 집에서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서울 대학병원에서 인공수정해서 겨우 출산을 했다고 들었다. 유별나게 아끼는 아들이라 그런지 목사님은 민호의 건강에 참 신경을 썼나 보다. 겨울에 민호가 감기에 걸리면 읍내 한의원에서 소뿔을 종종 달여먹였다고 한다.


나는 민호가 퍽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시골 아이들은 보통 남녀 할 것 없이, 각다귀같이 빨리 커서 팔다리만 늘어지게 컸다. 또 피부는 어찌 그리 탔는지 새까맣다. 선크림이라는 것이 있던 때가 아니니까. 까무잡잡한 피부를 볼 때면 딸기꼭지를 씹는 기분이 들었다.


민호는 어렵게 태어난 아이라 그런걸까? 촌티 안나는 뽀얀 피부가 마냥 부러웠다. 나는 민호의 하얀 얼굴을 볼 때면 팔뚝을 괜히 벅벅 긁곤 했다. 아빠는 제 긁은 자국을 보고 피부 부스럼이 옮았느냐 묻곤 했다만, 어린 사춘기 때의 부끄러움을 긁어낸 게 아닐까.


민호에게 딸기를 건네주고 돌아오는 길이면, 한 상자를 또 다시 가져다 주는 상상을 했다. 우애좋은 동화 속 형제가 된 것처럼 선물을 자꾸만 주러가는 즐거움을 느끼고 싶었다. 나는 흐르는 상상을 입으로 되쇄김질하며 몇 번의 겨울을 삼켰다.


그런데, 왜일까?


내가 열 세살이 되던 날에 어머니께 이 말을 해버렸던 것 같다. 찬 거실 바닥에 앉아서 칼로 딸기 꼭지를 따던 손이 멈추었다. 아무리 어린 나라도 무언가 잘못 말했다는 것을 느꼈다.


"왜, 민호가 불쌍해보이드냐?"


어머니는 그대로 눈을 치켜뜨며 저를 바라보며 말했다. 연민의 감정은 아니었던 것 같다. 추운 겨울날 버려진 새끼고양이를 바라보는 애처로운 마음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이미 어머니의 벼려진 눈초리에 기가 죽어버렸다. 무조건 아니라고 말해야 할 것만 같은 분위기였다.


나는 내 마음도 모르고 고개를 저었다. 왠지 모르게 그래야 했다. 어머니는 나를 지그시 바라보더니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내 칼을 내려놓고 찬장에서 플라스틱 그릇을 꺼내 무심하게 딸기를 골라 담으시는 것이었다.


"딸기 꼭지는 너가 따서 줘라. 큰 놈은 가는 길에 너가 먹고."


어머니는 말을 하며 억척스럽게 벙어리 장갑과 목도리를 둘러주셨다. 나는 피부에 닿는 털이 마냥 따갑고 답답했지만, 어머니가 화가 나지 않은 것에 다행이라 여겼다. 그리고 민호에게 가벼운 발걸음으로 눈을 밟고 달려갔다.


교회 안은 대리석 복도로 차가운 기운이 맴돌았다. 바닥은 무릎까지 쌓인 눈덩이보다도 더 차가웠다. 손끝이 얼얼했지만 나는 민호를 찾아 두리번거렸다. 대강당에도, 자동차 창고에도, 식당에도 그는 없었다.


나는 딸기를 담은 그릇을 식당에 두고, 알 몇 개만 쥔 채 위층으로 향했습니다. 그때 작은 기도실에서 고통에 신음하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민호가 또 병치레를 하는 줄 알고 조심스레 문틈을 들여다보았다.


안에서는 뜻밖의 광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민호는 온몸을 떨며 발작하듯 몸부림치고 있었다. 웃옷은 아예 벗겨져 있었다. 그 곁에는 하얀 의사 가운을 입은 사내가 앉아 있었다. 그는 민호의 어깨와 팔목을 힘껏 눌러가며 “진정해라”라 소리치고 있었다.


그 장면은 치료라기보다 의식에 가까웠다. 민호의 몸짓은 바다에 내던져진 물고기처럼 거칠었고, 사내의 손길은 그것을 붙잡은 어부처럼 집요했다. 의사의 굵은 팔뚝이 꼭 십자가 속 말뚝 같다고 느꼈다. 내 시선은 의사의 못박음질에 이미 사로잡혀버린 것이었다.


나는 눈을 뗄 수 없었다. 낯선 공포와 알 수 없는 설렘이 뒤섞여, 숨조차 막혔다. 기도실 뒤편 십자가 위의 예수는 어둠 속에서 늘어진 채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순간, 유리창의 햇빛이 내리앉았다. 민호의 팔에 매달려 떨고있던 수액도, 차가운 바늘의 피냄새도 전부 끌어안아버렸다.


그 이후의 기억은 희미하다. 심장은 서늘했지만 머릿속은 복잡했다. 그 사내는 누구였을까? 민호는 정말 죽을 병에 걸린 걸까? 집에 돌아오자 어머니는 왜 딸기를 다시 가져 왔느냐고 물었지만, 나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내 손끝에 알코올 솜의 냄새만이 오래 남아 있었다는 것만 기억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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