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을 만드는 자세

누구나 마음 속에 어린아이가 있다

by 장준

상처를 입으면 누구나 어린아이처럼 엄마를 찾기 마련이다. 그러나 어른이란 이유로, 남자라는 이유로 또는 다양한 외부의 환경 때문에 그것을 억누르고 숨겨두며 살아왔다. 누구나 마음속에 어린아이가 있다. 다른 사람은 몰라주더라도, 본인은 그 어린아이를 알아차려줘야 한다. 안 그러면 누가 억울함을 알아 줄 수 있겠는가?


앞서 자신에게 주어지는 자극과 그에 대한 반응 사이에 매몰되지 말고 틈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었다. 우선 틈을 만들기 위한 기본적인 자세에 대하여 소개를 하려고 한다.



기독교인 중 더러 이렇게 말하는 경우가 있다.


'위선적인 본인의 모습을 인정하라'


자신의 거짓말을 내려놓고 알몸을 드러내듯이, 자신의 모습을 부끄럼과 다양한 감정 속에 자신을 내놓아라. 는 말이다. 이것은 좋은 말이다. 하지만 어떻게 자신을 드러낼 수 있단 말인가?


이와 관련하여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가 있다. 내 친구는 예전부터 친하게 지냈던 단짝친구를 꿈속에서 두들겨 때리는 꿈을 꿨다고 한다. 나중에 꿈을 꾼 것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며 이렇게 말을 했다. "내 무의식 속에 친구에게 화가 났던 게 남아 있었나봐!" 그에 대해 나는 이렇게 말했다. "무의식은 의식 밖에 있는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인데, 그것을 어떻게 알고 있다고 생각을 하니?" 친구는 철학과가 말할만한 농담 따먹기 같은 소리라며 웃어넘겼다.

Frued는 자신은 자기 자신을 모른다고 하였다. 본인의 생각 속에 수많은 생각들을 가슴깊이 담아놓는다. 이것이 Frued가 강조했던 억압의 과정이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자신의 기억이 너무 아프므로 움츠러들고 손을 빼버릴 뿐이라 생각한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생각들은 마음속에 꾹꾹 담아놓고 모른 척을 한다.


아이를 키우는 사람은 흔히 이 광경을 목격하기 쉬울 것이다. 자신의 아이를 데리고 치과에 가야하는 상황을 생각해보라. 아이는 치과가 무서워 엉엉 울고 떼를 쓰며 가지 않으려 기를 쓸 것이다. 그 아이에게 치과의 이로운 점을 손을 꼽으며 설명을 하고, 의사 선생님이 얼마나 상냥한지, 그리고 치과에 간다면 해줄 수 있는 보상이 무엇인지 화려하게 말을 할지언정 아이는 말을 듣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간과하는 것이 있다. 감정은 어떠한 논리도, 이유도 필요해 하지 않는다. 무서우면 무서운 것대로 도망을 치고 움츠러들고 싶다는 마음뿐이다. 논리적으로 아이에게 접근을 해도 아이는 비합리적인 이유들을 만들어 낸다. "치과에 가야하는데 거기는 무서운 사람들이 있어요." "몰라요. 발이 안 떨어져서 못가요." 치과라는 무서운 장소를 직면하기에 있어서 자신의 감정은 너무 요동친다. 그러기 위해서 무서운 감정을 억누르게 되는데, 억눌린 감정은 통 하고 튀어서 치과 밖에 있는 사람에게 넘어간 것이다. 치과에는 자신의 무서운 감정이 담겨있는 곳으로 돌변한다. 그 사람 한명이 무섭고 괴로움을 주는 대상과 같다고 느껴지는 것이다. 이렇게 사람이란 존재는 참으로 합리적인 존재인 것 같으면서도 비합리적인 존재인 것이다.


이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무엇이 이 아이에게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게 만들 수 있단 말인가? 아이에게 다가가 어떻게 말해야 "치과는 제게 무서운 감정을 주는 곳이므로 저에 내면 안에 무서움이 가득합니다. 저는 지금 두렵고 무서운 상태에 빠져있습니다."라고 생각할 수 있단 말인가? 한번 생각해보라 당신은 이 아이를 어떻게 달랠 것인가?


"치과는 무서운 존재가 아니야" 라고 말하는 것은 씨알도 안 먹히는 것은 아이들을 돌보는 사람이라면 알고 있다. 중요한 것은 말을 하는 내용이 아닌 말을 하는 스타일이다. 만약 당신이 유명 강사의 강의를 현장에서 듣는다고 생각을 해보아라. 강사의 강의 내용은 정말이지 명강의라고 느껴진다고 하자. 강의는 머릿속으로 참으로 훌륭한 강의라고 생각될 것이다. 하지만 강사의 마이크에 문제가 있어서 중간 중간 잡음이 생긴다고 하자. 당신은 몇 시간 동안 강의를 들으면서 편안하고 좋은 상태일까? 강의의 내용은 콘텐츠(Content)이다. 머릿속으로 이해되고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강의의 스타일(Style)은 마음속에 받아들여진다. 아이를 대하는 것에 있어서 콘텐츠가 아닌 스타일을 달리 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러면 어떤 스타일을 가져야 하는가? 사람은 안전한 대상 앞에서는 어떠한 방어도 하지 않는다. 자신을 감추려고 하거나 숨기려고 하지 않는다. 그것을 진정한 자기(Real Self)를 보여준다고 한다. 당신은 아이에게 있어서 안전한 대상이 되어야 한다. 나는 너의 안전하고 편안한 존재이고, 비록 네가 무서움을 느끼더라도 같이 존재해 줄 것임을 알려주어야 한다. 비록 무서움은 사라지지는 않더라도, 이 아이는 무서움을 향해 한발자국 나아갈 힘이 생길 것이다.


앞선 예시들이 가볍게만 느껴진다면 나아가서 생각해보자. 조현병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조현병 양성증상에 대해 생각을 해보면 환청, 환각, 왜곡된 사고 등이 존재한다. 조현병 증상이 나타나는 사람들을 당신은 어떤 사람이라 생각하는가? 더 나아가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조현병 및 정신 병리로 인하여 감형을 받는다면 당신은 무슨 생각을 하겠는가? 이 장은 조현병 정신질환자에 대하여 논하려는 장이 아니다. 또한 정신질환 범죄자에 대한 논의 글도 아니다. 핵심은 다음과 같다. 머릿속에 지나가는 자동적인 사고가 아닌 틈을 만들어 보아라. 어떻게 이 사람들은 이 지경까지 되었는가? 본디 태어나기를 정신병자로 태어났는가? 정신병에는 복합적인 이유가 존재하며, 물론 선천적인 유전적 요인이 작용한다. 다음 질문을 통해 글을 읽는 것을 잠깐 멈추고 이유를 한번 내려 보아라.

"왜 조현병 환자들은 환각, 환청 및 기이한 사고를 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는가?"


조현병 환자를 이해하려는 많은 시도들이 있었다. Frued 또한 조현병에 대하여 다양한 가설들을 내놓았다. 조현병 환자를 치료하여 가족에게 돌려보냈을 때에 다시 재발하여 치료를 받으러 오는 것이었다. 여기서 이중구속(Double Bind)이 조현병 환자의 가족에게서 보이며 조현병을 만들어 내는 것이라 생각했다. 이중구속이 무엇인가? 다음의 질문을 보아라.


"야! 넌 내가 너를 사랑하는 걸 알면서도 그런 짓을 하는 거야?"
"아들 공부는 잘하고 있지? 그런데 너 학교 성적이 낮아졌더라?"


이 말을 들으면 대부분의 사람은 짜증이 확 날것이다. '그래서 나보고 어쩌라고?'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남을 수도 있다. 화를 내며 사랑한다는 것을 아냐 묻는 것은 사랑을 하는 사람의 태도인가? 공부를 잘하느냐 물으면서 공부를 못했다고 넌지시 비난하는 건 어떻게 대처하라는 말인가? 이러한 서로 반대되는 답을 요구하는 것을 한 문장 안에 담는 것을 이중구속이라 한다. 이러한 이중구속이 머릿속에 혼란을 일으켜 환각, 환청을 만들어낸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주장은 많은 부모들에게 책임을 묻는 원인이 되고 말았다. 나는 이 문제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고 싶다.


환각, 환청이 들리는 것은 그 사람이 모자라서 그러는 것이 아니다. 본디 그 사람들은 상상력이 너무나도 풍부한 것이다. 생각해보아라. 얼마나 상상력이 풍부하면 자신을 지키기 위하여 자신의 두려움을 밖에 존재한다고 상상을 하겠는가? 자신의 두려움이 너무나도 큰 나머지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것을 마음속에 꾹 담아놓는다. 하지만 두려움의 에너지는 너무나도 큰 것이다. 억눌린 에너지는 통 하고 튀어 눈으로 가서 환각이 보인다. 귀로 가면 환청이 보인다. 머리로 가면 기이한 상상을 한다.


다음 두 경우를 생각해보라.

A는 일을 마치고 귀가를 하는 도중에 괴한을 만났다. 가방을 뺏기고 몸싸움을 하던 도중 겨우 도망을 쳤다. 심장은 쿵쾅거리며 당황과 공포 속에 놓여있다. 집으로 돌아가는 도중 저 멀리 불이 켜진 A의 집이 보인다. A가 집을 들어가니 불이 켜져있고 가족들이 단란하게 밥을 먹고 있었다. A는 마음이 놓이고 몸이 풀리는 게 느껴지며 엄마를 찾으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가족들은 A를 발견하고는 무슨 일이냐며 당황해하며 A를 달래기 시작했고, 이야기를 들으며 같이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다음의 경우를 비교해보라.


B는 일을 마치고 귀가를 하는 도중에 괴한을 만났다. 가방을 뺏기고 몸싸움을 하던 도중 겨우 도망을 쳤다. 심장은 쿵쾅거리며 당황과 공포 속에 놓여있다. 집으로 돌아가는 도중 저 멀리 불이 꺼진 B의 집이 보인다. 집에 가니 어두컴컴한 방과 아침엔 급하게 출근하느라 어질러진 집들이 보인다. 두려움에 버들버들 떠는 자신의 모습이 느껴지며 당황함과 당혹감에 어찌할 줄을 모른다. 낮은 온도가 아님에도 자신이 춥다고 느껴지며 이불을 덮는다.


A와 B의 차이점이 느껴지는가? 둘 다 괴한을 만나 자신에게 충격이 가해지는 사건을 겪었다. A는 이에 대하여 가족들이 있었고, B는 혼자였다. 이는 머그컵에 비유를 할 수 있다.


머그컵을 떨어트릴 때에 A의 가족은 푹신한 쿠션처럼 A의 외상을 어느 정도 막아주고 충격을 완충시켜주는 역할을 하였다. A에게는 충격이 가해지겠지만 그것은 A를 깨트릴만한 힘은 아니다. B는 땅바닥에 머그컵이 떨어지는 것과 같은 충격을 그대로 받았다. B의 내면은 흔들릴 것이며 금이 갈 것이다.


조현병 환자의 경우도 이와 같다. 이 사람들은 어렸을 때부터 자그마한 충격들을 받고 살아왔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충격을 받으며 살아왔다. 하지만 조현병 환자에게는 충격을 완화해줄 존재가 모자랐다. 충격을 고스란히 온몸으로 받아내며 추운 마음과 떨리는 두려움을 감싸며 혼자서 버텨낸 것이다. 그렇게 몇 개월 몇 십 년을 산다. 생각해보아라. 과연 어느 누가 제정신으로 버틸 수 있겠는가? 자기 자신이 깨지지 않기 위하여 택한 방법은 자신의 강점인 상상력을 발휘해서 자기 자신을 산산조각 낼만한 두려움이 바로 밖에 있다고 믿어버리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마음에 상처를 가지고 있다. 어느 부분이 찌그러져있을 수도 있다. 당신은 어느 부분이 찌그러진 사람인가? 사랑을 덜 받고 자란 사람일 수도 있으며, 평생을 고통 속에 살아온 사람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찌그러진 모습이 당신의 강점이다. 사람마다 다르게 자라오며 상처를 받아온 그 모습 자체로 아름답다. 당신은 삶에 있어서 최선을 다해 앞으로 노력한 것이다. 무기력하게 삶을 방치해 두었었는가? 당신은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 상황에서라면 누구나 그랬을 것이다. 본인의 다양한 감정들을 가슴 깊숙이 억누르며 자연스레 떠오르는 거짓말과 거짓 목표들을 만들어 냈던 것이다. 상처에 너무나도 깊게 매몰되어버린 것이다. 마음에 틈이 없으면 생각의 틈도 없다. 마음에 틈을 만들어야 우리는 비로소 더 넓은 시각을 가지고 세상을 둘러볼 수 있다. 삶에 쫓겨 바쁘게만 앞으로 달려가는 사람이 어찌 주변 관경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겠는가? 달리다가 엎어져서 상처 입은 사람이 주변에 누가 있는지 보이기나 하겠는가? 주변을 둘러보면 꽃 하나하나에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고 산들거리는 바람의 감미로움을 느끼는 것이 참으로 행복한 일임을 알 수 있다. 마음에 여유가 없으면 행복할 수 없다. 좁아진 마음은 가시밭길과도 같아 다른 사람이 들어올 여유조차 주지 못한다.


"나는 왜 이지경인거지? “
"너희들이 얼마나 잘났으면 그렇게 행동하지?"


뾰족한 가시달린 마음속에는 꽃이 필 여유가 없다. 자신의 찌그러진 부분을 보아라. 그 부분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당신은 알아야한다. 당신 자체로 매력적이고 소중한 존재임을 느껴라. 내가 내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누가 나를 사랑해주겠는가? 세상이 내편이 아니어도 적어도 나는 내편이여야 한다. 당신은 당신 본인을 환대하는가? 나의 아픔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연습을 해야 한다. 그리고 부끄러움을 인정하여야 한다. 나의 모습을 바라보면 얼마나 아름다운 존재인지 모를 것이다. 이렇게 나를 다르게 바라보기 시작하면 비로소 마음의 여유가 생길 수 있다.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 삶을 살아오며 여러 변명들의 꼬리표가 덕지덕지 붙다보니 우리의 본 모습을 감추며 살아가게 되었다. 틈을 만드는 자세는 나에게 진실로 대하려는 진정성이다. 나 자신을 진정 있게 바라보기 시작한다는 그 자세가 생각의 틈을 만드는 시작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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