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마음 속에 어린아이가 있다
“너 자신을 알라” 이는 한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소크라테스의 명언이다. 어찌 나 자신도 모르는데 남을 안다고 할 수 있는가? 우리는 반드시 다른 이의 삶을 이해하기에 있어서 타인을 받아들이기 전에 자신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바이다. 앞서 사람 속에는 누구나 작은 아이가 있다고 설명하였다. 이번 장에서는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통된 특징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한다.
모든 생명은 살아있다. 그렇다면 생명체는 무엇으로부터 살아있다고 할 수 있는가? 당신이라면 어떠한 것이 살아있다고 말할 수 있는 판단 근거를 무엇이라 할 것인가? 생명과학에서는 살아있는 생명체에 대해 궁금해 한다. 생명체라 판단할 수 있는 7가지 준거가 다음과 같이 제시된다.
1.물질대사
2.세포구조
3.항상성
4.적응과 진화
5.자극에 대한 반응
6.유전과 생식
7.생장과 밣현
일곱 가지에 준거들은 이공학계 출신이라면 흔히들 들어봤을 법한 이야기이다. 핵심은 다음과 같다. 인간이란 존재는 살아있는 생명체로써, 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모든 방법을 총동원해야 한다. 이번 장에서는 인간의 기본적인 특성을 설명하기 위하여 과학적인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물론 당신이 과학에 흥미가 없고, 위의 이야기들을 몰라도 좋다.)
과학이란 무엇인가?
무엇이 과학적이라 이야기 할 수 있는가? 흔히 과학은 신학에 대하여 비교적으로 이야기 되고자 한다. 또는 우리는 무언가 자연적인 현상에 대해서 과학적이라고 이야기 하기도 하며, 무언가 규칙적이고 자연의 이치를 따지며 확실한 것에 과학적이라 하기도 한다.
내가 내리는 과학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누가, 언제, 어디서든, 어떻게, 무엇을 하여도 같은 조건하에 일어나는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을 과학적이라 할 수 있겠다.
생명체의 과학적인 특성은 위의 7가지 특성을 언제 어디서든 누구든지 나타낸다. 누구든지 밥을 먹으며(물질대사), 몸이 있고(세포구조), 항상 같은체온을 유지하며(항상성), 주변환경에 쉽게 적응한다(적응과 진화). 때로는 누가 건드리면 깜짝 놀라기도 하며(자극에 대한 반응), 부모를 가지고 있으며(유전과 생식), 어렸을 때부터 키가 커졌던 적이 있다(생장과 발현).
우리는 우리 몸속에 있는 DNA를 통해 몸이 만들어진다. 우리는 우리의 몸을 가지고 태어났다. 우리는 살아가며 다양한 상황을 만나 다양한 상황에 여러 반응을 한다. 하지만 우리의 삶이 드라마틱하게 변화는 걸 선뜻 두려워하기도 한다. 그러한 삶속에서 우리는 자라난다.
다양한 변화가 가득한 환경 속에서 사람은 누구나 자신 삶을 영위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는 존재이다. 먹고 사는 것은 매우 근본적이면서 중요한 문제이다. 더욱 행복한 삶을 위하여 끊임없이 생각하며 노력하기도 한다. 때로는 좌절될지언정 자신의 삶이 처참하게 무너지는 걸 바라는 사람은 없다. 자신의 몸속에 있는 DNA를 바탕으로 각자 다름을 가지고 태어났으며, 주어진 환경 속에 우리는 최선을 다하여 행복을 향해 달려간다는 것이다. 당신은 지금까지 자신 삶을 영위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한 존재인 것이다.
최선을 다해 살아왔다고 한들 모두가 만족스럽고 행복한 삶을 살아온 것은 아니다. 텔레비전에 나올법한 인생역전 이야기들도, 자수성가하며 자신이 성공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이들도, 공무원에 단번에 합격하고, 서울대에 들어간 이들 모두가 ‘성공했다’ 생각하기는 어렵다. 진정으로 성공한 삶은 무엇인가? 그것은 오롯이 행복에 달려있다. 아무리 멋지고 대단한 삶이라도 행복이 없는 삶은 무미건조하고 고난이 뒤섞인 삶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행복은 어떻게 생겨나는가?
우리의 삶이 어떻게 행복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우리의 마음속에 행복이 있다. 행복의 가장 큰 걸림돌은 자기 자신이기도 하며, 아이러니하게도 행복의 시작점은 나의 내면 안에 있는 것이다. 누군가의 마음속에 가장 기본적인 동기가 있는데, 이것을 실현화 경향성이라 한다. 들꽃이 저절로 꽃을 피우고 나무가 열매를 맺듯이, 인간의 잠재력은 내면에 무궁무진한 힘을 가지고 있다. 그것을 방해하는 것은 우리의 삶의 목표가 거짓될 때에 일어난다. 우리의 진정한 행복은 어디에서 출발하는지 당신 자신에게 물어보라.
언제 우리는 행복한가?
돈이 많을 때, 내가 원하는 직장을 다니게 될 때, 사랑하는 사람이랑 같이 있을 때 등 다양한 대답이 나올 것이다. 그 질문에 연달아 물어보라.
그것들은 당신 자신을 위한 것인가? 남들을 위한 것인가?
당신이 돈을 버는 것은 좋은 아빠로서 역할하기 위하여, 좋은 직장을 가지는 것은 남들에게 과시하기 위하여 때문이 아닌가?
진정으로 당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가 살아가며 수많은 경험을 하며 남들의 가치를 강요받고 학습 받는다. 행복의 길을 자신의 내면에서 찾는 것이 아닌 남들이 추구하는 가치를 최고의 가치라 여기기도 한다. 그것은 자기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자신의 삶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 아닌 남들이 만들어낸 환영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다. 그 끝은 헛되기 마련이다. 사람의 제 갈 길은 내면 안에 답이 정해져 있다. 행복을 향한 길은 정답 지처럼 또는 정해진 회로처럼 정확하게 공식화하며 행복을 추구하는 길을 만들어 낼 수 없다. 하지만 새가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가고 거미가 자연스레 거미줄을 치는 방법을 알듯이 삶을 살아갈 방법을 우리 자신은 알고 있다.
앞서 말했듯이 당신은 당신의 삶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고 살아왔다. 그 모습은 칭찬받아 마땅하다. 그 삶은 무언가에 쫓기듯이 살아오지는 않았는가? 되물어 보고 싶다. 아니면 열심히 달려오다가 엎어져서 상처를 입었는가?
우리는 자극이 있으면 그에 대한 반응이 이루어진다는 생명 현상 특성을 가졌다. 이름 모를 사람이 누군가와 부딪치면 화가 나기 마련이고 핸드폰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당황스럽기 마련이다. 이러한 자극과 반응 사이에는 보통 공간이 없다. 공간이 없다는 것은 자동적으로 이루어짐을 뜻한다. 이러한 것은 도움이 될 수도 있으나 삶을 속이기도 한다. 예를 들어보자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당신은 누군가가 '불이야!'라고 소리치는 것을 들었다(자극). 그 순간 당신은 놀라서 그대로 밖으로 도망치는 반응을 보였다(반응). 이때에 중요한 것은 극장에 불이 났는지 아닌지 여부는 고려할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위급상황에서는 이러한 것이 도움이 될 수 있지만 넓은 사고를 가지는 것에 방해가 될 수 있다. 극장에 불이 무슨 이유로 났는가? 어떻게 하면 불이나지 않게 할 수 있는가? 와 같은 고차원적인, 마치 장면을 손바닥에 놓고 위에서 내려다보듯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하다. 이렇게 자극과 반응 사이에 공간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며, 공간이 없는 상태를 매몰되어 있다고 한다.
상처를 입은 사람은 상처에 민감하다.
상처를 입었던 상황에 매몰되기가 쉽다. 우리는 행복을 향해 달려 나가는 존재이다. 불행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힘든 일을 반복해서 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그 일을 참고 하냐고 물으면 하다 보니 익숙해졌다고 한다. 하지만 고된 일과 상처는 몇 번을 반복해도 아프다. 그에 대해 둔감해지는 것은 마음속에 나도 모르게 누르고 억압하는 일이다. 억지로 밀어 눌러 놓는다면 그 힘은 마치 축구공처럼 퉁퉁 튕겨나가 다른 곳으로 굴러간다. 공이 눈으로 굴러가면 시야가 흐리멍덩하거나 헛것이 보이기 마련이고, 공이 귀로 굴러가면 예민해지고 시끄럽고 헛것이 들리기도 한다. 공이 심장으로 굴러가면 심장질환에 걸리기 쉬우며 온몸이 뻣뻣해질 수도 있다. 상처는 비디오테이프처럼 반복되기 마련이다. 한번 크게 엎어진 사람은 상처 입은 때가 몇 번이나 머릿속에서 재생되고 반복된다. 고통의 과정을 끊어내기란 쉽지 않다. 상황을 벗어나기를 바라며 간절히 바랄 수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변화를 바라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상처를 입던 때와 똑같이 행동한다. 마치 발걸음을 떼지 않으면서 앞으로만 나가길 바라는 사람과도 같다. 사람의 마음은 참으로 이상하다. 열심히 살아온 사람이 엎어졌을 때에 쿵 하며 다친 충격에 아파하면서도 엎어진 상태에서 엉엉 울고 상처가 나을 때까지 쉬었다가 다시 뛸 생각을 해야 하는데 엎어졌어도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며 불만을 토로하기도 한다. 자신의 상처가 아무는 것은 생각하지도 않고 삶이 드라마틱하게 바뀌기만을 바라는 것이다.
자신의 상황이 변하기 위해서는 첫 째로 우리 자신이 변해야 한다. 그 이유는 우리 안에 나아갈 성장 가능성이 있는 것이지 상황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떠한 사람은 자신의 상처를 껴안고 부둥키며 엉엉 울기만 한다. 상처받은 일과 사람은 별개이다. 한 사람자체가 고통이라 느끼며 삶을 고통처럼 느낀다. 당신이 삶에 고통을 껴안고 살고 있다면 일단 고통과 나 사이에 틈을 만들어 놓아라. 매몰되어 있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당신의 존재가 잠깐 고통이 붙은 것뿐이지 당신이 그 일을 통해 배움을 얻고 교훈을 얻은 후에 고통을 버리고 다시 앞으로 나아가면 되는 일이다. 만약 이것이 힘들다면 다른 것을 내려놓고 잠깐 쉬어도 좋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우리의 삶은 행복으로 통한다. 로마를 향해 앞으로만 무조건 달려가지 말고, 로마로 가는 길을 생각해보고, 로마 자체를 바라다 볼 필요도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틈을 만들 것인가? 틈을 만드는 자세에 대한 방법 그리고 틈을 만드는 기술에 대한 방법은 이후 이어지는 장에 기술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