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세상에 완벽한 사람이란 없다. 아무리 완벽해 보이는 사람일 지라도 자신 안에 있는 약점이 있고 아픔이 존재한다. 어떠한 신념을 가진 사람일 지라도 그것을 완벽하게 극복해 내기란 힘들 것이다. 외유내강(外柔內剛)과 내유외강(內柔外剛)이라는 말이 있다. 겉은 강해보이지만 속은 여린 사람 그리고 속이 강하지만 유해보이는 사람. 당신은 둘 중에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우리는 삶을 겪으면서 다양한 모습을 가진 사람들을 가지게 되었다. 삶의 경험들이 조금씩 축적되면서 우리가 끊임없이 세상에서 주어지는 자극을 받고 그에 대해 끊임없이 반응하며 한 사람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한 사람은 지금 이 순간에도 지금-여기에 존재하고 있다. 심리학자 중에서, 우리가 심리학을 배우지 않더라도 한번쯤은 들어 봤을 법한 이름 Frued는 사람들에 대해 이 두 가지를 궁금해 하였다.
(1)얼마나 미쳤는가?
(2)어떻게 미쳤는가?
Frued의 시각에서는 사람은 그저 각기 다른 모습으로 미쳐있기 마련이었다. 마치 미쳤느냐 말았느냐의 전기 스위치를 On/Off로 구분하는 흑백논리가 아닌, 사람이 극단적인 모습을 취할때에 나타나는 현상이라 생각하였던 것이다. 얼마나 일반적인 모습과 다른 모습을 보이는가? 그리고 그 모습이 어떤 모습인가에 궁금함을 보였다. 최근에 들어 정신질환자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다.
누군가가 우울증으로 정신병원을 다닌다고 하면 우리는 선뜻 그 사람을 다른 시선으로 보게 될 것이다. 우리가 감기에 걸리면 병원에 가듯이 정신질환 또한 마음의 병일 뿐이다. 완전히 다른 사람들의 일이 아닌 우리가 극단적인 모습을 취했을 때에, 본인의 상태가 매우 취약해진 상태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임을 말하고 싶다.
최근 정신질환자의 범죄가 급증하면서 정신질환자에 대한 왜곡된 시각이 형성되고 있다. 정신질환자를 예비범죄자로 보는 시각도 존재하며, 나아가 정신질환을 법정에서 형벌을 줄이기 위한 꼼수를 사용한 것으로 치부해버리기 마련이다. 이러한 실태 속에서 정신질환 범죄자에 대한 처우 또한 열약하다. 정신질환에 대하여 어찌 이런 깊이 없는 시각이 형성되었는가?
아무리 달라 보이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도 그들이 자라오는 과정에서 순수한 어린 시절이 존재했음을 머릿속에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다. 누구나 마음속에 어리고 순수한 부분이 존재하며, 반대로 악의적이고 더러운 마음의 서랍 한구석의 모퉁이가 존재한다. 어른이 되어 현실에 치이면서 살아가며 내 마음속에 여러 모습들을 감추고 잊고 살아갈 수는 있어도 순수한 마음을 없는 것으로 치부할 수는 없는 법이다.
누군가가 손가락을 가시에 푹 찔린다고 생각해 보아라.
찔리는 즉시 아픔이 밀려옴과 동시에 나도 모르게 “엄마!”하며 자신의 따듯한 품을 찾기 마련이다. 하지만 현실에 있어서 남자는 남자답게 행동해야 한다. 혼자 살아갈 때에는 아픔을 티내면 안 된다. 남들의 시각과 비판적인 태도에 당신은 웅크려들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마음속의 아이는 여전히 아파하고 있을 것이다. 마음속의 어린아이는 우리 자신이 반드시 알아주어야 한다.
어린아이를 이해하려고 한 적 있는가? 어린아이의 행동을 보면 참으로 순수해 보이기도 하다가도 아이의 행동이 손바닥 안에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아이를 키우는 사람, 또는 아이를 자주 볼 수 있는 환경에서 종사하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아이들의 사고는 우리가 제 3자의 시선으로 들여다보기가 쉽다.
세상을 조금 한 발짝 떨어져서, 그리고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 볼 수 있는 것은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어준다.
내 기억 속에 있는 사람 중에 문제아라고 불리는 애가 있다. 그 아이는 울고 떼쓰며 사방팔방 난리를 치는 아이였다. 교사들 사이에서도 문제 있는 아이라고 소문이 났으며, 친구들 사이에서도 말썽을 일으키고 물건을 던지며 장난을 치는 아이였다. 양치기 소년이 그러했듯 이 아이에게도 거짓말과 장난꾸러기 같은 마음은 가슴속에 심어져있는 듯 했다. 어느 날은 학교 교무실로 내려가 큰소리로 외쳤다. "불이야! 위층에 불이 났어요!" 놀란 교사들은 위층으로 올라갔다. 교사들이 올라가서 당황하며 상황을 살펴봤으나 위층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 "어디에 불이 났니?" 그 아이는 장난스럽게 장난이라며 혀를 메롱 내밀고는 엉덩이를 흔들었다.
이 아이를 보면 다양한 생각이 들 것이다. 누군가는 장난이 심한 아이라고 생각할 것이며, 또 누군가는 부모가 어떻게 교육을 시켰는지 궁금해 할 것이다. 나는 이 이야기에 대하여 당신에게 이러한 질문을 하고 싶다.
'이 아이가 이러한 장난을 친 이유는 무엇인가?'
질문에 대한 정답은 없다. 각자가 생각하기 나름일 것이다. 나는 앞으로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를 말하고 싶다.
'세상에 문제아는 없다'
이 아이는 거짓말을 하며 자신이 이전부터 문제아라고 불리며 못 받았던 사랑받는 관계를 받고 싶었던 것이다.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주기를 바랬던 커다란 갈망이 거짓말을 써서라도 사랑받는 나라는 관계를 만들어내고자 했던 것이다. 이 아이는 얼마나 사랑을 받고 싶었으면 이러한 행동을 했을까? 이 아이는 그러면 원하는 만큼 사랑받지 못했던 것인가? 이 아이에게 거짓말을 쓰지 않더라도 사랑을 받을 수 있음을 알려주면 얼마나 좋을까?
문제아라고 아이를 비난하는 것은 우리 머리에서 자동적으로 지나치는 사고일 뿐이다. 이러한 것은 머릿속에 저절로 떠오르고 사라지는 자동적 사고이다. 행동과 생각 사이에 틈이 없는 행동이다. 행동과 생각 사이에 조그마한 틈을 만드는 것, 아이의 문제행동을 보았을 때에 이 아이는 무슨 이유로 이렇게 행동한단 말인가? 생각해 보는 틈을 만드는 것은 우리에게 있어서 사람을 바라보는 다양하고 넓은 관점을 제시해준다.
각자의 삶에 틈을 만들어 생각하는 것은 바로 넓은 시각을 가지게 되는 첫 걸음이다. 어린 꼬마아이의 행동을 문제아가 아닌 무릎을 굽혀 아 아이의 눈높이를 바라보듯 살펴보려는 시도가 바로 사람의 마음을 알아보게 하는 첫 시도인 것이다. 누구든지 무릎을 굽혀 눈높이를 맞추어 속을 들여다보면 그 속에는 상처받은 아이와 같은 모습이 존재한다. 누구는 자신의 삶에 현재 만족하며 살아갈 수 있다.
자신의 상태에 현재 문제를 느끼지 않는 상태를 '자아 동질적'이라고 표현하는데, 자아 동질적이라고 하여도 그 사람이 문제없는 완벽한 사람임을 뜻하지는 않는다. 인터넷 상에는 우스갯소리로 돌아다니는 농담이 있다. 주변사람들이 바보가 아니면 내가 바보일 확률이 높다. 내가 문제가 없다고 느껴진다면 주변을 둘러보아라.
나의 곁에 있는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가?
내가 생각하는 나의 모습은 어떠한가?
남들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하는 나의 모습은 무엇인가?
이 글은 기본적으로 대상관계이론 학자인 John Bowlby 이론을 기반으로 하여 쓰인 것이다. 앞으로 우리는 자신을 이해하고 타인을 이해하는 과정을 돌아볼 것이다. 자신을 돌아봄에 있어서 그 단계는 4가지로 나뉜다.
자기이해 → 자기수용 → 타인이해 →타인수용
먼저 자신을 머릿속으로 이해한 후에 비로소 우리는 타인을 바라볼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이해와 수용에는 벽이 존재한다.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남을 가슴깊이 받아들이는 자세가 갖추어 진다면 우리 삶이 더욱 풍족해지고 윤택해질 것임을 바랄 수 있을 것이다.
누구나 마음속에 상처가 있기 마련이다. 그 상처에 대해서 꿋꿋이 버티는 것이 항상 옳은 답은 아니다. 상처를 들여다보기도 하고, 그것에 대한 아픔을 표현하기도 하는 것, 그것이 행복으로 나아가는 것에 있어서 첫 발걸음인 자기이해를 바탕으로 한 자기 수용인 것이다.
“힘든 것을 굳이 드러낼 필요가 있나요?”
자신의 마음속의 상처를 껄끄러움에도 불구하고 억지로 드러낼 필요는 없다. 하지만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옷을 벗어야 하듯이, 부끄러움을 내려놓고 자신의 상처를 발가벗은 상태로 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그 상처는 완전히 아물 지는 모른다. 적어도 행복으로 가는 것에 있어서 더 행복한 삶의 과정이 될 것이라 장담한다. 상처의 치유력은 사람의 내면 안에 가득히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행복으로 가는 방법을 스스로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마음속에는 커다란 성장 가능성이 있다. 현재 그 사람이 엎어지고 마음이 찌그려져있어도, 그 모습 자체 하나하나가 특별하고 아름다움을 전하고 싶은 마음에 글을 쓰는 바이다. 앞으로 이 글을 읽는 데에 있어 사람들이 이와 같은 멋진 아름다움을 살아가며 느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