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이란 무엇인가?
공감(共感)이란 무엇인가? 같을 공, 느낄감 같은 느낌을 느끼는 것을 말한다. 영어로는 Empathy인데, 어원은 'Einfülung'으로부터 비롯되었다.
Ein(into)+fülung(feeling)=into the feeling
남의 감정 속으로 들어가는 일, 그것이 공감이다.
최근 들어 세대차이 난다는 느낌을 강렬하게 받을 때가 많다. 많은 '어린' 세대들이 이해 안될 때가 있고, 반대로 나이 든, 속된말로 '꼰대'들을 쉽게 만날 수있다. 우리는 마음속에 그런 사람 한명정도는 쉽게 떠올릴 수 있다.
어린놈이 말이야... 나때는 말이지...
늙으면 사고방식이 저렇게 굳는다니까, 참내
무엇이 이리도 세대들을 갈라놓는 것일까? 동년배 효과(Cohort effect)라는 게 있다. 같은 문화 세대를 겪은 사람들만이 공유하는 특성이 있다는 것이다.
예를들어보자.
우리는 수학여행에 대한 기억을 떠올린다면 소풍, 즐거움, 부모님의 용돈과 버스를 타고 떠나는 여행, 도시락과 같은 따듯하고 즐거운 감정을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반대로, 97년생 세대 이후라면 수학여행과 관련하여 '세월호 사건'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때의 충격이나 수학여행과 관련하여 안전성의 여부, 안전의식이 떠올라 섬뜩하고 무서운 감정이 들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세대에 따라 한 단어에 대해 공유하는 느낌이 상반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현재 20대 중반으로써, 내가 느끼는 현재 '꼰대'들의 문화를 이해함으로써, 공감의 시도를 하려 해볼 것이다.
다음의 사진을 참조하라.
생명체는 끊임없이 자라가며 개채수가 '이론 상' 계속 증가하게 된다. 하지만 끊임없는 환경 저항(Ex.생존 범위, 급격한 노화, 식량부족) 등으로 인하여 환경에 의하여 끊임없는 도전을 받는다. 생존하면서 끊임없는 생존의 노력을 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우리는 노인들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우리는 노인들을 늙은 사람들, 곧 죽을 이들이라 생각하지 않는가? 하지만 과학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에 이들은 죽음을 기다리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닌, 삶의 저항을 끊임없이 견뎌온 능동적이며 삶의 지혜가 있는 사람이다.
이들 또한 젊은 세대들이 느낄 수 있는 다양한 욕구를 느낀다. 식욕, 성욕, 수면욕 등 인간이라면 느낄 수 있는 다양 한 욕구를 가지고 있으나 사회적으로 노인들의 욕구는 무시되며 최대한 사회적으로 받아들이기 쉬운 방법을 채택한다.
이들이 겪은 문화는 10대, 20대, 30대 ....그리고 지금의 문화까지 다채롭게 입혀진 색채와 그림과 같다. 이들의 삶의 지혜는 참으로 아름다운 것이다. 사회학적으로 이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새로운 세대에게 잘 생존할 수 있도록 오롯이 이들의 지혜를 공유하는 일이다.
하지만 이들의 언어는 젊은 이들에게 '공감'되지 않는다.
이들의 언어는 마음깊숙히 와닿으며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저 나와는 다른 사람들의 말이라고 치부하기 마련이다. 우리는 우리보다 많은 연배를 가진 이들의 말을 수용하며 반대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또한 노인들의 사회적 참여를 촉진하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반대로 어린 세대들의 생각또한 공감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과거에 대해서 역사를 몇십년간의 일을 일직선으로 표현할 수 있다.
참으로 기나긴 역사들을 보기 쉽게 알 수 있다. 허나 우리는 10년 후의 일을, 1년 후의 일을, 단 일주일이라도 어떻게 변하고 무슨일이 일어날 지를 아는가?
현재 젊은 세대들은 매 초마다 격변하는 시간들 속에 존재하며 성격이 구성된다. 축구공처럼 어디로 튈 지 알 수 없다.
우리는 결국 다른 세대들에 대하여 공감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어떻게 공감하는 자세를 취하고 진정 마음 속 깊이 들여다 볼 수 있을까?
첫째로 우리는 타인의 삶에 대하여 내가 겪지 않았음으로 모른다는 자세를 취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그들의 삶을 살지 않았음으로 머리로 받아들이려는 노력이 있다. 우리가 그들이 될 수는 없다. 허나 그들의 삶을 들여다 보려는 시도는 할 수 있다.
둘째로 삶의 고통을 씹어보는 것이다. 내가 그 삶을 살았더라면 느꼈을 고통을 청양고추를 씹듯, 저림과 쓰라림을 느껴보는 것이다.
단, 그것을 씹되 삼키지 말아라. 당신은 그들이 아니다.
셋째로 인간에 대한 사랑이다. 누가 되었던 간에, 육체는 나이들더라도 마음은 항상 어린아이와 같기 마련이다. 누구를 보든 간에 어린아이에 대하여 호기심을 가지듯 무릎을 굽히고 그들의 눈높이와 맞추려 하여라.
이러한 방법들을 통해 우리는 진정으로 타인을 이해하고 삶을 들여다보고, 인류에 대한 사랑을 꾸밈없이 드러낼 수 있다고 하겠다. 올바른 방법을 통해 사랑하고 같이 존재하는 세계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