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번째 편지 - 플립사이드

2021.11.28

by 장준

To. 새 삶을 맞이하게 될 너에게


아가야! 너에게 아주 나쁜 소식이 있단다.


아빠가 생각 이상으로 패션 센스가 좋은 편이 아닌지, 다들 내 옷 매무새나 옷차림이 이상하다고들 하는구나!

네가 태어나고나서 옷을 입혀줄 때, 아빠가 이쁜 옷을 골라주지는 못하겠구나. 미안하구나.

내가 고른 옷 때문에 유치원에서 놀리는 친구들이 있을거란 생각이 들자, 덜컥 겁이 나기도 하는구나.

이런 부분을 항상 너무 앞서가며 염려하는 버릇이 있는 것 같기도 해.

혹시 너를 놀리는 사람이 있다면 아빠에게 말하렴! 바로 달려가서 네 편이 되어주마! 아빠는 항상 네 편이 되어 줄 것임을 약속하마.


내일은 백화점에 가서 옷을 몇 벌 사게 될 예정인데, 특이하게도 이상하고 웃긴 물건들이 그토록 가지고 싶더구나. 나의 특이한 집착욕이 요상한 부분에서 나타나는 것 같단다.


아빠는 항상 옷을 살 때 가장 값 싼 옷을 보여달라고 한단다. 아빠가 돈에 대해 정말 진심인 만큼 절약이 몸에 벤 것인지, 아니면 아빠가 째째한 사람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확실한 것은 아빠는 통 큰 사람은 못 되는 것 같아. 돈을 흥청망청 쓴 적이 없단다.


최근에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여지껏 돈을 번 적은 많지만 정작 나를 위해 돈을 쓴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단다. 물론 음식이나 소비품 같은 것들은 샀지만, 마음 먹고 비싼 것을 거침없이 산 적이 단 한번도 없다는 것을 느꼈단다.


최근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하여 본가에 머무르고 있는데, 내 2만원 짜리 구두를 보더니 어머니가 신발을 한 켤레 사시라고 하시더구나. 그것도 돈을 줄 테니 사라고 권하셨어! 네 할머니는 생각 이상으로 물건을 아끼고 나보다 더 짠돌이란다! 그런 말이 나온 것이 아주 놀라운 사실이라는 것을 네가 알아두면 좋을 듯 하구나.


어머니가 보시기에는 내 신발이 구겨지고 밑창이 뜯기고 먼지가 덕지덕지 묻어 말 그대로 헌 신짝이 된 것마냥 보시는 듯 하구나. 그것도 그럴만 한 것이, 2만원 짜리 구두를 벌써 2년이 넘게 항상 애용하며 신고 다녔으니 엄청나게 오랜 시간을 나와 함께 했다고 볼 수 있어. 신발이 안 찢어진 게 기적이라고 할 수 있겠구나!


그 신발 한 켤레를 신으면 아빠가 많은 생각이 든단다.

첫 월급을 받아 신발을 샀던 구두거든.

그리고 내가 차려 입고 다녀야 할 자리마다 그 구두를 신었단다.


교수님을 만나 인사를 드리러 갈 때

일자리를 알아보러 면접을 보러 갈 때

애인의 기념일을 축하하려 멋드러지게 입고 갈 때

친구의 결혼식을 참석하려 선물을 들고 갈 때


...그리고 아빠가 가끔씩 주말에 기분을 풀으려고 외출을 할 때!


낡은 신발이지만 지금도 신발의 매무새는 내 발에 딱 맞단다.

애착 인형이라는 말이 있듯이, 애착 신발이라는 말이 있으면 이 구두에게 이름을 그렇게 붙여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그 신발만 신으면 술자리에서 들뜬 기분부터, 일에 지쳐서 다리가 저려 겨우 터벅거리며 퇴근하던 때까지 생각난단다. 버리고 싶지 않다는 느낌보다는, 아직은 버릴 때가 아니야.


아가야! 아빠는 영어를 조금 할 줄 안단다!

언어에 생각보다 아빠가 능통하진 않지만, 그래도 못하는 수준은 아니여서 꽤 도움이 된단다.

아빠는 한자공부와 영어공부를 어릴 적에 했는데, 그 덕을 이제서야 조금씩 보는 것 같아서 기분이 새삼 좋단다. 그렇다고 너한테 영재교육이랍시고 영어나 한자를 가르치지는 않으마. 아빠는 어릴 적에 배우면서 너무 싫었거든. 너도 그러지 않을까?


영어의 사전적인 의미를 단순히 외우는 것과 현지인이 쓰는 영어의 어감을 아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만큼 격차가 크단다. 영어는 대부분 다양한 뜻을 내포하고 있는데, 그 뜻을 단순히 암기해야 할 때도 있지만 가끔은 단어가 가지는 어원과 맥락적 의미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단다.


네가 나중에 영어를 배우게 되면 알겠지만, 대표적인 예시로는 'Listen'과 'Hear'을 예시로 많이들 들곤 한단다. 사전적 의미는 둘 다 '소리를 듣다'는 뜻이지만, 실제로 이렇게 사용하면 곤란해!


'Listen'은 무언가 상대방이 말하는 것을 집중하여 듣고, 경청하며, 귀를 쫑긋 세우며 들을 준비가 되었다는 뜻이란다. 그래서 누군가가 "Hey, Listen. Let me tell you someting..."이라고 말하면 '내 말 귀 쫑긋 세우고 들어봐!'라는 의미를 담고 있어.

사실 이런 경우 수동태를 지양하고 능동태로 보통 말하곤 한단다.

특히 구어적인 표현으로 "Mark my words!"라고 많이들 말해. 너도 "내 말을 새겨두렴"


'Hear'은 우연히 지나치며 소리가 들린 것이란다.

나는 신경도 쓰지 않았는데 어떤 소리가 들리는 거지. 보통은 "Just wait a seconds, I hear someting..."이런 식으로 표현한단다.

Hear이란 단어는 사실 구어적인 표현으로 다른 식으로 많이 표현된단다.

"아이 참, 듣고 있다니까?"라는 느낌으로 "I hear you, buddy!"라고 짜증낸다는 말투로 표현 할 수도 있어.

"알았어! 예쁜아~"라는 느낌으로 "I hear you, sweet heart!"라고 달달하게 말하기도 한단다.


이러한 단어가 풍기는 느낌은 상당히 다르면서도 독특한데, 마치 조미료의 미묘한 맛을 느끼는 것처럼 단어의 진정한 풍미를 아는 것은 정말로 재밌고 즐거운 일이란다!


아빠가 영어의 뉘앙스에 대해 말을 꺼낸 이유는 Flipside라는 말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싶기 때문이야.

내가 어릴적에는 카세트 테이프를 감아서 라디오에 넣어 노래를 듣곤 했단다. 카세트 테이프를 써 본 적이 있는 사람들은 느낄 수 있는 추억과 향수가 있어! 아날로그적 감성이라 해야하나?


카세트 테이프는 재밌는 점이 있단다. 바로 테이프의 앞면과 뒷면이 정해져 있다는 거야. 보통은 A site, B site라고 앞뒤를 정해놓는데, A 면의 노래를 전부 들으면 카세트 테이프가 전부 감겨서 뒷면인 B site는 처음부터 노래가 나올 수 있게 된단다! 이 원리를 말로 설명하기가 힘들구나.


Flipside는 보통 정 반대면의 위치에 있는 반대쪽의 모습을 표현할 때 쓰곤 한단다.


Flip이 무언가 톡톡 누르거나 달칵거리는 의성어이기도 하고, 반대로 무엇을 '슈욱~'하고 한 순간에 뒤집는 모습을 표현하기도 한단다. 손가락을 톡톡 가볍게 두들기는 모습을 연상시키기도 하고, 동전을 가볍게 엄지손가락으로 '퉁~'하고 하늘로 튕기는 것을 뜻하기도 해.

그래서 사람의 성격을 Flip이라는 면으로 표현하면 휙휙 잘 변하는 변덕쟁이 느낌도 주고, 건방떨며 툭툭 퉁기는 반항적인 느낌을 주기도 한단다.


테이프도 앞뒷면이 존재하듯이, 우리 사람도 그런 Flip했을 때 보여지는 면모가 있지 않을까? 그것을 심리학에서는 Jung의 개인심리학에서 나타내는 "Shadow(그림자)"의 개념으로 해석하곤 한단다.


우리 모든 사람은 가면을 쓰고 Persona를 여러 개 가지고 다닌다고 앞서 말했지? 가면을 썼을 때 내 얼굴이 가려지며 생기는 어두운 모습을 Shadow라고 말하곤 한단다.

이것이 가지는 의미는 상당히 크단다. 인터넷에서 범죄자가 살았던 지역의 주민을 인터뷰하는 영상을 보면 "세상 착한 사람처럼 보였는데, 그런 범죄를 저지를 줄 몰랐어요"와 같은 말을 쉽게 하곤 한단다.

아가야, Persona 즉 가면을 잘 쓰고 멋진 얼굴을 한 사람이라 해서 그 사람의 어두운 면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지 말려무나. 가면이 완벽해 보일수록 그 내면에 드리워진 그림자는 깊디깊은 속내를 숨기고 있을 것이란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모두 가면을 가끔 써야한단다. 하지만 평생을 그렇게 다닐 순 없어.

네가 만약 '이상하리만큼 완벽한 가면을 쓴 사람'을 본다면 경계해도 좋을거야. 그 사람은 분명 엄청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는 사람일 것이기 때문이란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사이코패스, 소시오 패스는 심리학에서는 "반사회적 성격장애(Anti-social Personality Disorder)"이라고 포괄적으로 지칭한단다. 말 그대로 사회에 반하는 사람들이야.

이 사람들이 평소에 식칼을 쥐고 사람들을 찔러죽일듯이 쳐다볼 것이라 생각하면 오산이야.

이들을 비유할 때, 꽈리를 튼 독사라고 표현한단다. 평소에는 정상적인 사람처럼 보이지만 자신의 심기가 뒤틀리거나 먹잇감을 발견할 때, 말 그대로 성격이 Flip하고 뒤집히며 맹수처럼 사람 한명을 잡아 죽인단다.

애초에 위험해 보이는 사람이 있다면 속을 뒤집으려 하지 말으렴! 그게 더 안전한 방법이겠구나!


네가 그런 일을 겪기를 절대로 바라지는 않는다만, 혹시 남성 범죄자에게 피해를 당하게 된다면 이 말을 기억하렴. 절대 그 사람을 뒤집고 거스르려 하지말으렴. 이것은 범죄를 순순히 당해주라는 뜻이 아니야. 피해를 입되 순진하게 도망치려는 본능을 따르는 것은 위험한 행동이 될 수 있다는 뜻이란다.


기억하렴. 그 사람의 범죄에 끌려가되 '동의'하지 말려무나. 이것은 법정에서 피해를 보상받을 때, 그리고 그 사람의 행동을 대처할 때 핵심이 된단다.


내가 남성 범죄자라고 국한하는 이유가 궁금할 수 있겠구나.

일반적인 여성 범죄자의 경우, 계획적인 범죄자가 상당히 많단다. 네가 어떠한 행동을 취하던 간에, 그 사람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고 도망칠 거란다.

반대로 남성 범죄자의 경우, 많은 경우가 우발적이거나 충동적인, 하지만 이기적으로 설계된 경우가 매우 많단다. 이 때 남성 범죄자를 힘으로 이기려 하거나 도망치려 한다면 충동적으로 너에게 폭력을 가할수도 있단다.


너에게 중요한 것은 '재미없는 타겟'이 되는 거란다.

마치 우리가 장난감을 재밌게 가지고 놀다가 고장나면 버려버리듯이, 네가 남성 범죄자에게 "고장난 장난감"인 것마냥 행동하는게 좋단다. 과연 네가 아무 재미도 없는데 너를 죽이려 들까?


네게 필요한 전략은 "하지마세요! 도망가고 싶어요!"가 아니라, "저는 원치않습니다. 힘드네요. 알아서 하세요."를 표현하는 것이란다. 이것은 범죄를 동조하고 더욱 범죄심리를 자극한다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범죄를 저지르는 입장에서는 상당히 난처할 거란다. 생각해보렴! 네가 작정하고 사람을 죽이려고 범죄를 계획했는데 소리를 지르며 도망가는 사람들이 아닌, '어쩌라고?'식의 반응이라면 어떨거 같니?


중요한 것은 범죄자의 역린을 건드리지 않되, 너는 최대한 피해를 안 입도록 고장난 척 행동하는 거야.


아빠가 만약 범죄를 당한다면 항상 쓰는 전략이 있는데, 바로 "먼저 회초리 맞기"전략이란다!

상대방이 의도를 가지고 나한테 접근하여 공격할 때, "때리지 마세요!"라고 소리치기보다 내가 먼저 상대방이 나를 때리기 전에 내 자신을 자해하는 거야. 선뜻 이해가 안되지?


생각해보렴. 만약 반에서 숙제를 해오지 않아 매초리를 맞는 아이가 있다고 치자.

매를 맞기 싫다고 발버둥 치는 아이는 더 세게 혼나기 마련이야.

하지만 만약 아이가 눈물을 터트리며 "저는 두들겨 맞아 마땅한 사람이에요"라고 자책하며 머리를 쥐어뜯는다고 생각해보자. 선생님의 반응은 어떨까? 당황하고 놀라서 너를 때린다는 목적을 순간 잊어버릴거야.


이것을 심리학에서는 '자기패배적 전략'이라고 말하기도 한단다. 남이 나를 비난하기 전에 먼저 선수를 쳐버리면 상대방은 나를 비난하는 것이 꽤 머쓱한 상황이 나오기 때문에 비난하는 것을 멈추곤 한단다.


이러한 맥락에서 아빠한테 강도가 든다면, 그 자리에서 눈물을 터트리며 신세한탄을 할거란다.

그리고 "나도 돈도 못 벌고 힘들어 죽겠는데 왜 이런일만 생기는거야!"라고 엉엉 울면서 지갑이고 뭐고 다 가져가버리라고 할거란다. 그러면 강도가 당황하지 않을까? 적어도 나를 해치지는 않을거야.


사실 네게 범죄가 일어나는 일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하단다. 하지만 세상은 너에게도 언젠가 시련을 내려줄 때가 있을거야. 그 때를 위해 내가 해야 할 일은 '범죄를 막는 일'이 아닌 '범죄를 대처하는 일'이라 생각해 이렇게 글을 남겨준단다.


아가야, 아빠는 범죄를 저지른 적도, 그리고 범죄피해를 당한적도 있단다.

네가 물건을 뺏기기 싫은 만큼 남의 물건또한 소중히 여겨주렴.

다만 네가 남의 물건을 빼앗아야 한다고 결심했다면, 네 물건을 전부 잃어버릴 각오를 해야할 거야.


From.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하게 될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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