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신기율 선생님이 은둔의 즐거움이라는 글을 펴냈다. 나 역시대학원 시절부터 꾸준히 은둔이라는 키워드에 관심을 가지고 소소하게 글도 쓰고 있다. 몇 년 전부터 코로나로 인해 우리는 원치 않게 은둔을 경험하고 있다. 다소 창백한 은둔이다.
내가 그리는 은둔은 우리가 지금 경험하는 것과는 결이 다르다. 나의 은둔의 기억은, 후미진 골목 인적 드문곳, 별 기대 없이 들어간 음식점의 음식이 간이 꼭 맞아 마음을 흐뭇하게 하던 기억, 시골 외할머니 집 앞 열리지 않는 슈퍼에 문이 가끔 빼꼼히 열리면, 금방 닫힐까 마음을 졸이며, 냅다 손에 집히는 대로 과자를 집어 들던 기억, 동네에 오래 근무하신 잘 알려지지 않은 의사 선생님이 처방해준 약이 신통하게 몸에 잘 맞던 기억들과 함께한다.
잘 알려지지 않고, 유명하지 않은, 속세에 때가 덜 묻은 사람이 좋다. 은둔의 기억의 시작점은 아무래도 떡볶이 가게였던 듯 싶다. 서대문에 할머니, 할아버지가 운영하시던 떡볶이 가게가 있었다 그 집 떡볶이에는 마늘이 많이 들어갔었다. 당시 나는 서대문에 농협에 파트로 근무했는데, 당시 파트들은 잔심부름을 도맡아 하는 여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 여학생들이 좋아하는 떡볶이 가게가 운 좋게 회사 근처에 있어, 당시 파트들과 자주 그 가게에 갔던 기억이 난다. 떡볶이에 들어가는 야끼만두도 피가 두툼한 손만두였다. 속은 잡채로 가득 차서 요즘 유행하는 만두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었다. 인상 깊었던 것은, 떡볶이와 만두보다 할머니의 눈이었다. 지금 기억나는 할머니는 오염되지 않은 순수의 맑은 눈빛을 간직하고 계셨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눈이 흐리게 되는 것이 이치인데, 이상하게 할머니의 눈동자는 맑았다. 젊은이와 비교해도 깨끗하고 맑은 눈이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세상에 무리에서 우뚝 선 사람보다 조용히 자신만의 왕국에서 선량히 살며, 아무도 해치지 않는 은자를 동경하게 된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