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쟤들은 맨날 보는데 무슨 이야기가 또 많냐?" 엄마가 카페에서 남편과 둘이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시고, 언니에게 하신 말씀이다. 남편하고 나는 정이 좋다. 사람하고 관계 맺는 걸 좋아하지 않는 작은 그릇의 남편이지만, 그 작은 그릇에 나와 아이는 꼭 담고 산다. 그래서 때로는 소금 같고, 사람 만나는 것도 싫어하고, 답답할 때도 많다. 그렇지만, 내가 가고 싶어 하는 카페는 꼭 같이 가준다. 집 앞에 카페에서 둘이 가서 이야기하는 시간을 나와 남편은 참 좋아한다. 무슨 할 이야기가 그렇게 많았는지 나는 일하고 들어온 남편에게 내가 하는 공부이야기, 나와 관련된 사람들 이야기, 딸아이 이야기 등을 쏟아놓는다. 어떨 때는 남편도 너무 많은 말을 들어서 피로한 지 설거지를 한다는 핑계로 자리를 뜨곤 한다. 그래도 내 버릇은 고치질 못한다. 남편을 보면 자꾸 말이 많아진다. 남에게는 못하는 말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남편은 나를 만나 결혼할 때까지 많은 공부를 했다고 나중에 고백했다. 무슨 공부냐고? 그 당시 야후 사이트를 검색해서 여성에게 이런 말은 하지 말고, 이런 말을 해라 등등을 찾아보고 공부했다고 한다. 집에만 있던 남편은 이성과의 접촉도 별로 없었고, 결혼을 할 나이에 소개를 받은 여성들과의 몇 번의 짧은 만남이 있었을 뿐이다. 그러니, 여성의 마음도 모르고, 무얼 좋아하고, 무얼 싫어하는지 배우게 된 것이다. 그래서 나에게 온 이메일을 전부 출력해 파일을 만들어 놓았다. 결혼 후에 그 파일을 보니, 빨간 줄을 쳐가며 보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정말 공부하듯 결혼을 준비하고 결혼생활을 하고 있는 남편이다. 주말에 수능 영어 기출문제를 푸는 남편은 성실한 사람이다. 아이와 내가 무엇을 맛있게 먹거나, 어디를 가서 좋아하면, 그것만 반복하는 융통성 없는 곰돌이 같은 사람이다. 그래도 그는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이다. 어느 날인가, 아이 신발을 목욕탕에서 열심히 칫솔로 닦고 있는 그를 보았다. 내가 아이 신발을 잘 안 빨아 주자 아무 말 없이 자신이 아이 신발을 닦아 햇볕에 말리고 있었다. 날씨가 흐려 아이 신발이 안 마르자, 나는 잔소리를 했다. "자기야, 아이 신발은 빨래방에 맡길게요. 이제는 빨지 말아요." 그가 한 수고를 나는 가볍게 여겼지만, 그는 알았다고 수긍했다. 엄마는 작은사람 그만 부려먹으라고 딸보다 사위 아끼는 말씀을 가끔 한다. "내가 부려먹는 거 아니거든!" 퉁명스레 되받아치지만, 내심 신경 쓰인다. 자꾸 과로를 하는 그를 보면, 안쓰럽고 불안하다. 아버지가 처음 남편을 보고 기가 죽어 있어 짠하셨다고 한다. 막내딸도 측은하고 만감이 교차하셨겠지. 아버지는 살아오신 내공이 있는지, 남편이 다녀간 후 "처자식은 건사할 사람이다."라는 말씀을 하셨다. 무엇을 보고 그러셨을까? 아직도 아버지가 남편의 무엇을 보고 그런 말을 하셨는지 모르겠다.
남편은 나를 만나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같이 즐기고 있다. 떡볶이, 미술관, 산책, 카페, 호캉스... 남편은 혼자였을 때 이런 것들과 먼 생활을 하고 있었다. 지금도 자신이 혼자였으면, 이런 곳엘 못 와봤다는 둥, 이런 음식은 혼자서는 먹으러 못 왔을 거라는 이야기를 듣기 좋게 한다. 아직도 남편은 삶을 배우고 있다. 나는 그와 함께 삶을 즐겁게 사는 법을 배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