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애정하는 생활
1년이 넘게 피부 가려움으로 고생하고 있다. 엄마도 마흔이 넘어서 알레르기가 왔다고 한다. 아무도 내 이런 고충을 깊이 알지 못한다. 약국에 가서 약도 지어먹고, 피부과에도 가보았지만 그때뿐이다. 며칠 전 엄마가 아는 사람에게 구해오신 사해소금을 꺼내어 주셨다. 반신욕 할 때 쓰면 간지러움도 사라질 거라는 희망적인 이야기였다. 몇몇 목욕제품을 같이 구매했는데, 비용이 16만 원 상당이 들었다. 딸이 피부과 약을 먹는 것이 안타깝고 걱정이 되셨던 거다. 독한 피부과 약이 좋지 않다며, 비싼 입욕제들을 준비하셨다. 소금을 받아 들고, 집으로 오려는데, 엄마가 몇 달 전에 까진 무릎의 상처를 걱정한다. 그리곤, 무릎을 꿇고 약을 발라준다. 순간, 내가 이렇게나 사랑받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스쳤다. 생각해 보면, 두 딸 중에 유독 부모님이 사랑해 주신 것 같다.
신이 모든 곳에 있을 수 없기에 어머니를 만들었다. 이 말은 곧 어머니가 신이다.라는 말로 들린다. 신이 자신의 대리인으로 어머니를 만들었기에 어머니가 신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청년시절에 개인적인 사정으로 정신건강에 대해 눈을 뜨게 되었다. 그때 소암 이동식 선생님의 책을 처음 접했다. 선생님도 몇 번 뵈었는데, 선생님이 88세쯤 되셨을 때였다.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이동식 선생님의 총기 어린 눈빛과 경상도 억양의 유머까지 내 기억에 아로새겨 있다. 선생님은 통찰력이 뛰어나셔서, 내가 곧 나을 거라고 이야기해주셨다. 여러 번의 시험의 낙방과 가파른 청년시절의 파도를 견디지 못하고, 잠시 주저앉았을 때, 이동식 선생님의 제자분을 만났다. 그분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알게 된 것이 많은데, 그중에 어머니에 대한 부분을 많이 배웠다. 정신분석학에서 0세부터 3세까지를 중요하게 여기는데, 이때 받은 어머니의 사랑이 아이의 평생 운명을 좌우할 정도로 중요하다는 것이다. 지금은 법륜스님도 자주 이야기하셔서 젊은 엄마들 사이에서 유명해진 사실이지만, 어머니 때는 아이는 밥 주고, 옷 주면 크는 줄 알았다고 이야기하신다.
아무튼 어머니는 자신의 중년을 갈아 넣어 나의 청년기를 지탱하셨다. 어머니가 살아오신 세월 중 가장 아름답게 빛나던 시절이었다. 운이 좋아 그 시절 나의 그림자는 어머니의 빛을 먹고 일어섰다. 지금은 그 빛으로 내 아이를 키우고 있다. 이동식 선생님은 내가 결혼하고도 몇 번 찾아뵀는데, 그때 남편을 잘 만나 다행이라고 말씀하셨다. 남편 역시 어머니가 만들어준 인연으로 만났다. 어머니는 지금도 자식들의 허물을 자신의 탓인 양 죄스러워한다. 언제나 죄 많은 인생이라고 자조 섞인 말씀을 하지만, 말씀드리고 싶다. 엄마! 당신은 신이에요. 가장 숭고한 이름 엄마!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