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재은 Aug 05. 2022

빈티지 - 낡고 오래된 감성

나의 애정 하는 생활

"오늘 이대에 양말 사러 가자!" 내 친구와 나는 고등학교 시절 이대 뒷골목을 자주 갔다. 이대에서 패션 양말이며, 구제 청바지, 운동화 등을 실컷 구경하는 것이 방과 후 우리의 즐거운 일과였다. 90년대 후반 이화여대에는 고등학생, 대학생들이 많이 모여들었다. 우리는 머리를 아이롱 파마를 할 때 어김없이 이대 미용실을 찾았다. 공부할 귀중한 시간에 친구와 이대를 쏘다닌 것을 크게 후회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그때 내가 그곳에서, 젊은이들의 문화의 향기를 내 몸으로 통과했다는 것이 뿌듯하기 때문이다.

 어제, 홍대 앞에 나가보았다. 갑작스레, 홍대를 가보고 싶었다. 홍대에는 아이와 남편과도 자주 가지만, 혼자서 가보고 싶었다. 홍대 역시 젊은이의 거리였다. 그래도, 아직 젊음이 조금 남아있는지, 위축되거나, 어색하지 않았다. 시간이 얼마 없어 여유롭게 보지는 못했다. 샵이 밀집되어 있는 음식점을 지나는 골목이 있는데, 그곳을 재빠르게 들어갔다. 옷가게를 둘러보았지만, 너무 작은 사이즈의 옷들은 나의 즐거움이 돼주질 못했다.

 그러다가, 흰색 원피스를 발견했다. 빈티지샵이었다. 흰색 원피스는 갖고 싶었지만, 내 체형에는 좀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샵은 지하에 있어서, 내려가 보았다. 들어가 본 샵은  아늑하고, 포근한 오렌지빛이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빈티지 특유의 감각들이 묻어났다. 정말 사고 싶은 아이 니트가 있었지만, 이미 많이 자라 버린 딸아이 몸에는 작은 것이었다. 딸아이가 하나 더 있으면 좋겠다고 느낀 순간이었다.

 빈티지 샵은 새 옷이 아니기 때문에, 옷을 입는데 큰 불편이나 눈치가 보이지 않았다. 여러 옷들을 골라보다가 두벌을 샀다. 아이보리 블라우스, 흰 블라우스 두장을 샀다. 연달아 두장을 사니, 직원이 기분이 좋아 보였다. 내게 명함도 주고, "가게랑 손님이랑 잘 어울리세요."라는 칭찬도 해 주었다. 집에 와서 보니, 옷은 낡아 보이지 않았고, 직원이 뿌린 방향제 향기가 감돌고 있었다. 향수 같기도 하고, 묘하게 쾌감이 느껴졌다.

 학생 시절 이대 뒷골목에도 빈티지 샵이 유행했던 기억이 있다. 아이들은 숫자가 새겨진 티셔츠나, 코카콜라, 나이키 등의 로고가 새겨진 빈티지 티셔츠들을 여름이면 입고 다녔다. 지금도 나는 빠알간 코카콜라 로고가 그려진 티셔츠에 애착한다. 그때 이대 뒷골목에서 산 빈티지 청바지는 꽤 오래 가지고 있었다. 아이를 낳고, 도저히 그 바지는 입을 수가 없어 버릴 때, 마음이 좋지 않았다. 나와 등교를 같이 하던 친구가 그 바지를 빌려달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소중한 것이라, 빌려주지 않으면서, 친구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눈치 보였던 내 마음도 떠오른다.  지금도 낡고 오래된 것을 보면, 그것을 내 마음에 담고 싶다. 오래도록... 낡고 오래된 감성은 언제나 투명이게 반짝이고, 화려하진 않지만, 온기로 체온을 데워준다.

이전 07화 배우자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