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보다 중요한 것들
2022년 11월 19일 결혼을 했다. 이 날을 준비하기까지 느리지만 천천히 약 1년을 달렸다.
세상 화려하고 그 누구보다 예쁘고 싶은 욕망, 나에게는 없겠지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결혼식을 준비해보니 욕심이 하나둘씩 생겨나는 나를 발견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호텔, 근사한 식사, 명품 드레스를 입고 결혼한 것은 아니지만
하나하나 소박하고 의미를 담은 것들로 채워진 결혼식 준비였기에 모든 것이 감사하고 행복한 하루였다.
물론 결혼을 하기 위해서, 또 보이는 것이기 때문에 화려한 것을 중시할 수 있지만
물질적인 부분이 아닌, 결혼식이 나에게 가져다준 정신적인 의미들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다.
1. 나의 취향을 바로 알게 된 시간
사람들은 결혼을 앞둔 예비신부에게
“너 정말 선택의 연속이야. 힘들 거야”라고 얘기하곤 한다.
하지만 나는 선택의 부분이 사실은 그렇게까지 힘들지는 않았다.
나도 내가 이렇게 취향이 확고한 사람인지 몰랐다.
평소의 나는 흔히 말하는 ‘선택 장애’를 가지고 있어서
친구들이나 남자친구(현재는 남편)와 식사를 할 때
주로 상대방에게 선택을 미루곤 한다. 그리고 곧잘 따라가는 편이다.
결혼 역시 선택의 연속이라는 말을 정말 많이 들어왔기에,
결혼 준비를 앞두고 ‘나 정말 큰일 났구나 어떡하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신부님 부케는 어떤 색으로 하시겠어요? “
”저는 화이트 그린 외에는 다른 것은 눈에 안 들어오더라고요. “
“신부님 DVD업체는 결정하셨나요?”
“상담 오기 전에 ㅇㅇ업체랑 이미 계약 마쳤어요. 여기 아니면 안 하려고요!”
“신부님 드레스업체 A,B,C 중에 어디가 좋으세요?”
“C요!”
생각보다 선택이 쉬웠다.
이만큼 내가 취향이 확고하고 분명한 사람이라는 것은 나도 모르던 사실이라
결혼을 통해 나를 배운 부분이다.
나의 취향으로 채운다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이었던 것이다!
조금, 웃긴 부분이지만
고급짐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가성비보다도 가심비를 따지는 사람이며,
공주님 왕비님 같은 화려한 느낌보다는
깔끔하고 심플한 느낌의 것을 좋아한다.
어둡고 웅장한 느낌보다는
밝고 트렌디한 재즈풍의 음악을 좋아하며
짙은 핑크색을 싫어한다.
화려한 장식, 비즈보다는 하얀색, 진주와 실크 특히 오간자를 좋아한다.
쨍한 느낌의 색감보다는 흐리면서도 깨끗한 색을 좋아하고
감동과 눈물이 넘치는 순간들보다
모두가 행복해 보이는 웃는 순간들을 좋아한다.
그리고 가장 크게 깨달은 교훈은
인생을 살면서
내가 결정하기 힘든 부분은 남편에게 선택하라고 시키면 된다는 점이다!
30여 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나를 조금 알아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2. 나를 나보다 소중히 여겨주는 사람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자존감이 그리 높지 않은 사람이다.
거울을 보면서 나는 왜 이리 통통할까 왜 이리 못생겼을까
생각하면서 샤워를 시작하곤 한다.
영어전공을 했다기엔 최근 들어 부쩍 떨어진 영어성적,
공부, 저축, 취미 무엇하나 제대로 한 것이 없는 나를 보며
나는 그동안 뭘 한 걸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많았다.
올해 생일을 맞았다.
결혼이 예정되어있는 상태였고, 인스타그램을 서로 팔로우하는 친구들은
내 피드를 보고 ‘아 선미가 결혼 준비를 시작했구나’ 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 것에 대해 크게 인지하지는 않았었는데
올해 생일은 정말 많은 연락을 받았다.
생일 축하한다는 메시지와 함께,
그동안 자주 연락을 주고받지 못해 결혼 소식을 알리기 미안한 지인들에게 결혼식에 초대해달라는 연락도 받았었고
결혼식 때 자신이 도와주겠다 하는 지인들도 많았다.
또한 결혼식이 끝나고 켠 카카오톡엔 정말 많은 나의 결혼식 사진들이 전송되어있었다
나는 사람을 좋아하고, 정이 많다고 생각하는 편이지만
어색한 사이에 먼저 연락하여 결혼식에 초대해달라고 했던 적도 크게 없었고
남의 결혼식에 가서 사진을 찍으며 기록을 잘 남겨주는 편도 아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나보다도 나를 아껴주고 예뻐해 주는 내 친구들 지인들 덕에
가장 예쁜 신부는 아닐지언정, 가장 예쁨 받는 11월 19일의 신부가 된 것 같아
정말 행복한 순간이었다.
또한, 나도 내 사람들에게 더욱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하루였다.
3. 누구보다 든든한 내 편이 생겼다는 안정감
우리는 사내연애커플이다.
회사에서 5년여간의 시간을 보내면서 초반 2년은 정말 고비일 정도로
마음이 너무 힘들었다.
사회생활은 일반 대학, 아르바이트 생활과는 다른
무서운 곳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어떤 곳이든 똑같은 커뮤니티인데,
‘돈’이란 것을 벌어서 그런 것일까, 공동의 목표를 수행하는 ’ 같은 과제‘를 수행하는 공간이어서 그럴까
왜 이곳은 차갑고 나는 부적응자 같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입사 3년 차에 현재의 남편을 알게 되었고,
우리가 처음 만난 날 농담처럼 했던 나의 회사에서의 고충을
우리가 4번째 만난 날 진지하게 이야기했다.
그리고 남편, 그 당시남자친구는 나에게
“네가 힘들면 나를 믿어봐. 너를 힘들게 하는 사람은 내가 가만 안 둘게. “
하면서 나를 위로했다.
어쩌면 그때 나는 이 사람과는 ‘결혼’이라는 거창한 단어를 쓸 수는 없을지 몰라도
오랜 시간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때의 마음이 지금의 결혼이라는 결실을 맺게 된 것이겠지.
사실 말 뿐인 위로일 수도 있는 말이지만, 사내에서 또 인생에서
가족이 아닌 누군가가 나를 이렇게까지 아껴주고 힘이 되어준다는 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날 이후로 내가 마음이 힘들 때면 남자친구는 옆에서
“아니야, 그거 별거 아니야. 정 힘들면 내가 너 책임질게. 걱정 마.”
라는 위로로 나에게 힘이 되어주었다.
그것이 진정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닐지라도
나의 마음에 크나큰 안정감을 가져다주었다.
우리는 주말부부를 앞둔 상태이다. (확정은 아니지만 거의 확정)
“여보가 보고 싶으면 어떻게 하지”
“우리는 평생 함께 할 건데, 그깟 몇 년 평일에 못 본다고 큰일 나지 않아. 걱정 마.”
마음이 단단하고 stable 한 나를 사랑해주는 남편이 있다는 사실에
안정감과 행복감이 찾아와,
결혼을 해서 나는 ‘행복’하다.
ENFP의 통통 튀고 발랄한 나와 ISTJ의 차분하고 이성적인 남편,
우리가 과연 잘 살 수 있을까?
너무 다른 우리기에 그동안 다투기도 많이 다퉜고
맞춰가는 과정도 너무 힘들었다.
하지만 ‘사랑’하기에,
이렇게 많은 것을 준 ‘결혼’을 통해
나와 평생을 함께 할 한 사람을 귀히 여기며 행복한 결혼생활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워나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