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끝의 카페> 존 스트레레키 지음 | 고상숙 옮김 | 북레시피
"두려움이라는 것은 주로 무의식 속에 잠재합니다. 대체로 사람들은 매일 죽음을 염두에 두고 살지는 않지요. 하지만 잠재의식 속에서는 하루하루 시간이 흐르면서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하루 더 줄었다고 인식하죠. 그래서 언젠가는 하고 싶은 일을 아주 못하게 되는 날이 진짜로 오지 않을까 두려워한답니다. 다시 말해 죽는 날을 두려워하는 겁니다."
"스스로 존재의 이유를 묻고, 존재 목적을 충족시켜줄 수 있는 일들을 선택하고, 그리고 그런 일을 하면서 살고 있다면 죽음을 두려워할 이유가 어디 있겠어요? 이미 원하는 일을 했거나 매일 하고 있다면 더 이상 하고 싶은 일을 못 하게 될까봐 두려워할 필요가 없겠죠."
- <세상 끝의 카페> 존 스트레레키 지음 | 고상숙 옮김 | 북레시피
지금 이 순간 오늘 하루를 내가 진정으로 살고 싶은대로 마음껏 살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진다. 지금 이 순간 오늘 하루를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충분히 음미하고 즐겼기 때문에 후회와 미련이 없다.
우리는 미래로의 '시간 여행'을 자주 떠난다. 꼭 현재가 불만족스럽지 않아도 여기, 현재가 아닌 미래의 어딘가로 생각을 이동시키고 막연한 기대와 환상을 품는다. '아, 그게 이루어지면 좋을텐데.' '아, 지금 현재 이건 불만족스러워. 이 일은 하고 싶지 않아. 더 좋은 삶이 있을텐데.' 등등. 마음은 자주 지금 이 순간의 살아있음의 기적을 충분히 음미하지 못하고 미래의 환상에 마음을 빼앗긴다.
그러나 미래의 오지 않은 행복을 기약하는 한 우리는 영원히 죽음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다. 죽음이 언제 와도 두렵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 현재, 오늘 하루를 후회 없이 살면 된다. 마음껏 이 세상을 즐기고 마음껏 살아있음의 기적을 누리면 된다.
나는 죽음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다. 죽음이 무엇인지, 죽음을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 깊이 있게 사유하지 않았다. 나에게는 먼 미래의 일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죽음을 금기시하고 꺼려하는 사회적 관습에 나도 모르게 지배를 받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죽음과 삶이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삶은 죽음이 있기에 가능하다. 죽음이 없다면 삶은 없다. '나'가 있기에 '너'가 있는 것처럼 삶과 죽음은 하나이다. 죽음이 찾아오면 실제로 어떤 경험을 하게 될지 알지 못한다. 그것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일 수도 있고, 새로운 세계로의 여행이 될 수도 있다. 이제는 죽음이 두렵지 않고 궁금한 무언가가 되었다.
죽음이 두렵지 않게 되면 삶도 두렵지 않게 된다. 죽음이 두렵지 않다는 것은 지금 이 순간 현재를 마음껏 즐기며 살고 있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 현재 마음을 다해 즐기다 보면 죽음에 대해 생각할 수도 없거니와 '아, 이것을 해보고 싶은데 언제 하지.' '아, 이렇게는 살고 싶지 않은데.' 같은 쓸데없는 갈망이나 후회 없이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지금 하고 싶은 것을 지금 당장 하게 된다. 언젠가 해보고 싶은 버킷리스트로 남겨두는 것이 아니라 지금 현재 버킷리스트를 이루는 삶을 살게 된다. 삶이 나에게 무엇을 던져주든 그것을 삶의 기적이자 선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과거에는 피하고 싶던 삶의 곤경이나 문제, 온갖 부정적인 것들이 삶을 더욱 흥미진진하게 만드는 재료이자 양념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죽음이 두렵지 않으면 삶이 두렵지 않고, 삶이 두렵지 않으면 죽음도 두렵지 않다. 삶과 죽음은 하나이다.
"오늘 하루 나에게 주어진 삶이라는 멋진 기적이자 선물을 마음껏 즐기자.
그것이 삶과 죽음을 멋지게 여행하는 방법이다.
나는 당장 내일 죽음이 오더라도 후회 없는 하루를 살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