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으로 다시 떠오르기> 에크하르트 톨레 지음 -1-

by 여행하는 그리니


07289682.jpg?type=m3&amp;udate=20191224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 에크하르트 톨레 지음



에고는 분리를 낳고, 분리는 고통을 낳는다. 따라서 에고는 명백하게 병적이다. 부정적인 마음 상태에는 분노와 증오 등 눈으로 금방 알 수 있는 것 외에도 더 미묘한 형태들이 있는데, 이것들은 너무 흔해서 보통 부정적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예를 들면 조바심, 초조함, 신경질, 그리고 지긋지긋함 등이다. 이것들이 마음 밑바닥의 불행을 구성한다. 그리고 그것이 많은 사람의 지배적인 내면 상태이다. 그것들을 감지하기 위해서는 활짝 깨어있어야 하고 절대적으로 현재의 순간에 존재해야 한다. 그렇게 할 때마다 그것이 깨어남의 순간이며, 마음과의 동일화로부터 벗어나는 순간이다.



마음과의 동일화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활짝 깨어 있어야 하고, 절대적으로 현재의 순간에 존재해야 한다. 마음에 떠오르는 생각들과 감정들은 현재가 아닌 과거나 미래에 대한 것들이다. 지금 현재 이 순간에 절대적으로 활짝 깨어있는 사람의 마음은 생각과 감정에 끄달리지 않는다. 지금 내가 자판기로 글을 쓰는 순간 현재 이 행위에 완전히 집중하여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하면 나의 마음에는 생각과 감정같은 것들이 올라오지 않는다. 예를 들어 청소를 집중해서 하거나, 독서를 하거나,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거나, 쇼핑을 하거나, 물건을 사거나, 영화를 보거나, 하늘을 보거나 그 무엇이든 그 무엇을 하는 순간에 절대적으로 활짝 깨어 현재의 순간에 존재하는 순간 마음과의 동일화에서 벗어나 ‘나’라는 에고를 잊어버리고 현재의 순간과 하나가 될 수 있다. 생각과 감정이 올라오는 순간 알아차리자. 그리고 현재의 순간에 온전히 절대적으로 깨어있자. 지금 현재 이 순간과 하나가 되자.


무슨 일을 하든 어디에 있든 하나를 수행하자. 머리와 마음속에 떠오르는 감정과 생각들에 끌려가지 않고, 그것들이 떠오르는 순간 알아차리고 현재의 순간에 절대적으로 깨어있어 존재하기를! 무엇을 하든 지금 현재 내 눈앞에 있는 일이 처음이자 끝이며 전부라고 생각하자.



사람들의 이야기는 모두 “왜 나는 지금 평화로울 수 없는가?”라는 제목을 붙일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이 평화로울 수 있는 유일한 기회는 지금 이 순간밖에 없음을 에고는 알지 못한다. 설령 알고 있더라도 당신이 그것을 알아낼까 봐 두려워한다. 어떻게 하면 지금 평화로울 수 있는가? 현재의 순간과 화해하는 것이다. 현재의 순간은 삶의 놀이가 일어나고 있는 장이다. 현재의 순간과 화해하면 무엇이 일어나는지 보라. 자신에게 무엇이 가능한지, 어떤 행동을 선택할 수 있는지를, 아니 더 정확히 말해, 삶이 당신을 통해 무엇을 하는지를, 삶의 예술에 대한 비밀, 모든 성공과 행복의 비밀을 전하는 세 단어가 있다. ‘삶과 하나가 되기’이다. 삶과 하나가 되는 것은 현재의 순간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때 당신은, 자신이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삶이 당신을 살고 있음을 깨닫는다.



내가 평화로울 수 있는 유일한 기회는 지금 이 순간밖에 없다. 현재의 순간과 화해하자. 현재의 순간은 삶의 놀이가 일어나고 있는 유일한 곳이다. 현재의 순간과 화해한다는 것은 현재 일어나는 모든 일이 그 자체로 완벽함을 수용하는 일이다. 그 무엇이 일어나도 그것은 지금 일어나는 일이기에 그 자체로 완벽하고 온전하다. 지금 이 순간 현재와 완전히 하나가 되자. 지금 이 순간과 하나가 되는 것은 삶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나는 지금 이 순간 현재 이 순간 숨쉬고 있는 나 자신의 있음을 있는 그대로 온전히 허용한다. 숨이 들어왔다 나가는 것을 있는 그대로 느끼고 그것을 바라보고 느낀다. 내가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삶이 나를 살고 있음을 깨닫는다. 숨은 내가 의지로 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숨이 저절로 들어왔다 나갔다 하며 삶이 나를 살리고 있다. 나는 어깨의 모든 긴장과 스트레스와 초조함과 불안을 내려놓고 숨이 들어왔다 나가는 현재 이 순간을 있는 그대로 온전히 바라본다. 나는 삶에 의해 살려지고 있다. 내가 삶을 살려고 하지 않는다. 한발짝 떨어져서 ‘나’라는 이 존재가 살려지고 있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깊게 깊게 호흡하고 숨을 바라본다. 숨을 바라보는 매 순간이 기적이다.



당신이 해야 할 일은 생각과 감정이 일어날 때 그것들을 알아차리는 것이 전부이다. 그것은 깨어있는 바라봄이다. 그 알아차림을 통해 감정과 생각마저도 개인적인 것이 되지 않는다. 또한 그곳에는 자신도 없다. 다만 인간의 감정, 인간의 생각만 있을 뿐이다. 궁극적으로 하나의 이야기, 한 묶음의 생각과 감정들에 지나지 않는 당신 개인이 살아온 이야기는 더 이상 의식의 전면을 차지하지 않게 된다. 그것은 더 이상 당신 정체성의 기초가 아니다. 당신은 현존의 빛이 되고, 생각과 감정보다 앞선 더 깊은 알아차림이 된다.


감정과 생각은 개인적인 것이 아니다. 인간의 감정, 인간의 생각만 있을 뿐이다. 하나의 이야기, 생각과 감정들에 지나지 않는 이야기들은 나의 정체성의 기초가 아니다. 나는 내가 누구이고 어디서 태어났고 누구의 자식이고 어떤 직업을 가졌으며 어느 나라의 국민이고 어떤 이름을 가졌으며 어떤 성격을 가졌는지 등등에 대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바탕으로 감정과 생각이 일어났다. 그것들은 나의 본질적인 됨됨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나는 마치 소설가처럼 이야기를 만들고 그 이야기에 빠져 지금까지 삶을 살아왔다. 그 무거운 이야기를 뒤집어 쓰고. 이제는 그것들을 다 벗어던져 버리고 알아차림으로써, 깨어있는 바라봄으로써 살겠다. 내가 누구이고 어떤 사람이라고 스스로 만들어왔던 이야기의 거죽들을 벗어버리고 지금 이 순간 살아있음에 대한 알아차림으로써, 깨어있는 바라봄으로써 살겠다. 이야기와 감정, 생각들에 끄달려갈때마다 알아차리고 숨을 관찰하자. 지금 이 순간 저절로 들어왔다 나가는 호흡을.



대다수의 사람들은 생각의 많은 부분이 자동적이고 반복적이며 의도한 것이 아니다. 일종의 정신적 잡음이며 실제적인 목적이 없다. 엄밀히 말하면 당신이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생각이 당신에게 일어날 뿐이다. 나는 생각한다는 나는 소화한다나 나는 혈액을 순환시킨다라는 말과 마찬가지로 틀린 문장이다. 소화가 일어나고, 혈액순환이 일어나며, 생각이 일어날 뿐이다.
머릿속 목소리는 그 자체로 하나의 삶을 가지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목소리에 끌려다닌다. 생각에, 마음에 소유당해 있다. 마음은 과거에 의해 조건 지어져 있기 때문에 당신은 언제까지나 되풀이해 과거를 재현할 수밖에 없다. 동양에서는 이것을 카르마(업)이라고 부른다.



나는 자주 깜짝깜짝 놀란다.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모를 정체불명의 생각들이 나를 놀래킨다. 대부분 쓸데없고 말도 안되거나 중요하지 않고 과거의 에고의 찌꺼기들이 라디오 잡음처럼 지직거리며 나불거리는 것들이다. 에크하르트가 말한대로 정신적 잡음이며 실제적 목적이 없는 생각들이다. 소화가 일어나고, 혈액순환이 일어나고, 숨이 쉬어지는 것처럼 생각이 일어날 뿐이라는 말을 읽고 얼마나 안도했는지 모른다.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맞는 말인지! 그 생각의 잡음들, 머릿속 목소리, 생각과 마음에 끌려다니지 말자. 소유당하지 말자. 과거에 의해 조건 지어져 있는 카르마(업)의 되풀이에 동참하지 말고 빠져나오자. 얼른 빠져나와 그것이 얼마나 잘 혼자서도 이야기를 만들어내는지 깨어있는 눈으로 알아차리자. 깨어있는 알아차림만이 그것을 놓아줄 수 있다.



에고의 목소리는 몸의 자연스러운 상태인 평화를 지속적으로 방해한다. 거의 모든 인간 육체가 커다란 중압감과 스트레스를 받고 있지만, 이것은 외부적인 요인에 위협받기 때문이 아니라 마음 내면으로부터 오는 위협 때문인 경우가 더 많다. 에고가 만들어내는 감정들은 마음이 외부적인 요인과 자신을 동일화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며, 물론 그 외부적인 요인들은 불안정할 뿐 아니라 어느 순간에라도 변하기 쉽다. 이보다 훨씬 더 깊은 감정은 사실 감정이 아니라 순수한 있음의 상태이다. 순수한 있음의 상태는 사랑, 기쁨, 평화로서 당신의 내면으로부터 발산되어 나온다. 그것들은 당신의 진정한 본성이다.



나의 몸이 육체가 스트레스를 받는 이유는 외부적인 요인 때문이 아니다. 에고, 마음이 만들어낸 감정들은 마음이 외부적인 요인과 자신을 동일화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고, 그 외부적 요인들은 끊임없이 변한다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나는 생각과 감정이 1초 단위로 1분 단위로 5분 단위로 수시로 끊임없이 변하는 것을 지켜 보고 놀란 적이 있다. 1초 전에 행복했던 나가 1초 후에는 불행한 나로 바뀌어있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오늘을 잘 살아내야 한다는 초조함으로 나의 육체를 가만두지 못하고 몰아치듯 닦달하는 것이 내가 가진 피곤과 스트레스의 근본 원인이었다. 그 모든 불안과 초조, 감정과 생각들을 내려놓자. 순수한 있음의 상태로 돌아가자. 사랑, 기쁨, 평화로서 나의 내면으로부터 발산되어 나오는 진정한 본성에 나를 맡기고 그냥 지금 여기 이렇게 순수하게 있자. 그냥 있음. 내 호흡을 가만히 보면서 그냥 지금 여기 깨어있는 것. 알아차리는 것. 아니 깨어있거나 알아차릴 필요도 없다. 그냥 호흡을 가만히 보면서 순수하게 있음. 그게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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