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쓰지 마세요> 김계숙 지음, 초록비 책공방 출판
바른 가치관에 따라 생각하며 행동하면 일관성이 있어서 생각을 지키기 쉽고 생각대로 순조로운 삶을 살게 됩니다. 보이는 물질이나 명예에 가치를 두게 되면, 보이는 대로 변하는 대로 바삐 쫓아가다 보면, 생각과 마음 또한 변해 버려 결과로 나타나기가 어려워집니다. 사심이 없어지는 무심의 순간, 번뜩이는 직관이 떠오릅니다.
맑은 정신을 유지하면 순간적 감정에, 상황에 정신을 뺏기지 않습니다. 궁리 끝에 악심 생긴다고 이리저리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본성에 맡겨 가장 적당한 때에 맞춤 해결을 하게 됩니다. 담대하게 신념을 지킬 수 있습니다.
빠르게 성취하려면
목표를 쉽고 빠르게 성취하려면 내 생각과 사심이 없어야 한다. 단지 목표만 바라보면 된다. 아는 지식이 방해된다. 감정이 방해한다. 새털 같은 가벼운 마음만 필요하다. 마음을 비우려면 눈에 보이는 공간부터 심플하게 비우는 게 순서. 그다음 감정을 비우고 생각을 비우면 어느 사이 목표에 도달한다.
우리는 이미 신의 형상으로 완전하게 태어났는데 그 완전함을 믿는다면 이 세상에 사는 게 얼마나 신날까? 세상은 우리가 불완전하다고 배우고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정신없이 배우며 애쓰다 허망하게 세상을 떠나게 만든다. 욕심, 집착, 분노에서 만든 생각이 아닌 무심에서 오는 생각은 결단하면 된다. 자연히 현실로 모습을 드러낸다.
- <애쓰지 마세요> 김계숙 지음, 초록비 책공방 출판
바른 가치관과 보이는 물질, 명예 중 어디에 가치를 두고 사느냐에 따라 삶은 달라진다. 바른 가치관이란 나와 세상에 이로움을 주는 생각을 말한다. 보이는 물질과 명예는 오직 나의 욕심에서 비롯된 외부적이고 부수적인 가치다. 즉 바른 가치관을 추구하며 일관성 있게 무언가를 추구하고 행동하다 보면 보이는 물질이나 명예 같은 외부적이고 부수적인 것들은 결과로써 얻게 된다. 그 반대는 성립되지 않는다. 보이는 물질이나 명예를 얻기 위해 행동하고 애쓰는 사람은 겉껍질, 허상을 얻기 위해 마음에 욕심과 사심이 가득하다. 그래서 일관성 있게 무언가를 지속하지 못하고 세속적인 가치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게 된다. 뿌리가 얕아 아주 작은 바람에도 쓰러지고 만다.
그러나 바른 가치관이라는 깊은 뿌리를 가지고 사는 사람은 외부의 상황, 물질, 명예 등에 신경 쓰지 않기 때문에 위로 아래로 사방으로 높이 넓게 뻗어나가 세상에 이로움을 준다. 그러므로 항상 무슨 일을 하든 내가 추구하는 바른 가치관이 무엇인지 기억하자. 스스로에게 질문하자. 그러면 흔들리지 않고, 망설이지 않고 뚝심 있게 나아갈 수 있다. 지속하는 힘이 생긴다.
가장 좋은 것은 무심의 상태가 되어 텅 빈 마음으로 그것을 하는 것이다. 이것저것 따지고 계산하지 않고 모든 것을 내 안의 부처님에게 턱 맡기고, 그것이 알아서 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면 '에고'는 떨어져 나간다. '내'가 한다는 욕심과 생각을 버리고 내 안의 신성, 부처님이 그것을 하게 내맡기는 것이다. 무심, 무욕, 텅 빈 마음, 무아. 무엇이라 불러도 좋다. '내'가 한다는 감각이 아니라, 애쓴다는 느낌이 아니라, 내 안의 무언가가 알아서 저절로 애쓰지 않아도 스스로가 모든 것을 해결하고 행한다. 저절로 이루어진다.
'내 생각'과 '사심'을 버리자. 그리고 단지 바른 가치관과 목표만 바라본다. 지식, 감정, 생각도 모두 비운다. 텅 빈 마음만 있다. 무엇인지 이름 붙일 수 없는 무언가가 알아서 그것을 할 것이다. 모든 문제를 해결할 것이다. 저절로 목표를 향해 나아가게 될 것이다. 마치 우리 심장이 내가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힘차게 뛰며 이 몸을 살리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이미 신의 형상으로 완전하게 태어났는데 그 완전함을 믿는다면 이 세상에 사는 게 얼마나 신날까?"
우리는 이미 신의 형상으로 완전하게 태어났다. 다만 그 사실을 잊어버렸을 뿐. 우리는 모두 완전한 신의 형상을 하고 있는 완벽한 존재들이다. 우리는 불완전한 나를 다듬고 고치고 변화시켜 완전한 나가 되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다. 이미 지금 이 순간 있는 이대로 너무나 완벽하고 완전한 상태다. 그러므로 애쓰거나 노력하거나 불만족을 느끼고 내가 아닌 다른 무언가, 여기가 아닌 다른 어딘가를 찾아 방황할 필요가 없다. 그저 자신이 신의 형상으로 완전하게 태어났음을 기억하고 그 신성이 모든 것을 하도록 내맡기면 된다. 편안히 누워 세상의 즐거움과 살아있음의 기적을 누리며 신나게 살면 된다. 이보다 더 쉽게 사는 방법이 있을까.
삶은 단순하게 살면 살수록 쉽다. 어렵게 살면 살수록 한없이 어렵다. 이미 완벽하고 완전한 신성에 모든 것을 맡기고 그것이 행하게 두자. 그러면 단순하고 쉽게 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