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소유'보다 '연결'을, 연결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재미'를 추구하며 살아가게 될 것이다.
N이라는 국민국가의 환상이 소멸하면서 사회에 '행복의 정답'은 사라져버렸다. 좋은 대학에 진학하고, 좋은 회사에 취직하고, 좋은 배우자를 만나 결혼하는 것이 행복이라는 모델은 더는 작동하지 않는다.
이런 시대에 사람들이 마주해야 할 과제는 '얼마나 좋은 대학에 들어가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자신만의 행복을 발견해 추구하느냐'다.
무엇을 위해 무엇을 할지, 어떤 방식으로 할지 전부 자신이 정하고 스스로 책임지며 부딪혀 나아가라. 바로 이것이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즐기며 살기 위해 필요한 능력이다. 나는 이를 간단히 '몰입하는 힘'이라고 부른다. 나는 지금까지 살면서 부모나 학교교육에 충실한 적이 한 번도 없다. 내가 유일하게 따른 대상은 무언가에 빠져있는 나 자신이었다. 다시 말해 나는 '몰입'에 충실했다.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세미나도 공부도 아닌, '몰입하는 힘'의 해방이다.
스스로 갈 곳을 정하고 가속 페달을 밟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배움'이 필요하다. 내가 말하는 배움은 몰입이다. 한눈 팔지 않고 열심히 몰입하고 무턱대로 부닥치는 체험이 배움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몰입하는 대상은 수학, 영어, 요리, 춤, 무엇이든 가능하다. 진심으로 몰입할 수 있다면 대상이 무엇이든 나는 그것을 배움이라고 본다.
공부는 어디까지나 수동적인 행위다. 학교의 커리큘럼에 맞추어 교사의 이야기를 듣고 시험을 치르고 문제를 푸는 것이 공부에 해당한다. 회사가 원하는 방향대로 움직이는 직원을 양성하는 연수 또한 공부인 것은 마찬가지다.
요컨대 공부란 '주어지는 것을 소화하는' 작업이다. 여기에는 당연히 '주는' 존재가 있다. 공부에는 교실을 준비하고 시험문제를 만들고 정답까지 이끌어주는 '어른'이 반드시 필요하다.
반면 배움은 상당히 능동적이다. 미지의 영역에 발을 들이고 새로운 체험이나 사고방식을 맛보는 것 전부가 배움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배움의 장소는 학교나 기업에 한정되지 않고 정답도 필요없다. 배움의 모든 것은 '스스로 개척해나가는'일이기 때문이다.
몰입하는 사람에게는 정답이 보이지 않아도, 스스로 움직여야만 과제를 찾을 수 있어도 몰입할 대상이 있는 한 전부 '즐거운'일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즐거이 암중모색과 시행착오를 반복한다.
다시 말해 몰입은 사람을 멈춰 세우지 않는다. 몰입은 언제나 사람을 앞으로 움직이게 하며 새로운 체험을 제공하려고 한다. 그러므로 당연한 일이지만 모든 혁신을 낳는 것은 공부가 아닌 배움이다.
우리가 온종일 두뇌를 회전시키고 새로운 발상에 이르게 되는 것은 어떤 대상에 열중했기 때문이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시행착오를 거듭해도 노력하고 수고한 모든 과정을 즐길 수 있다.
지금 학문이라 불리는 영역도 결국 '누군가의 몰입 체험'을 보존한 것에 다름 아니다. 상세한 교과서와 암기해야 할 공식이 처음부터 인류에게 주어졌을 리 만무하다. 어떤 학문이든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그것에 몰입한 누군가'를 찾을 수 있다.
새로운 지식을 개척하고 새로운 일을 창출하고 자기 자신을 미래로 움직이게 만드는 진짜 배움은 몰입 속에 있다.
몰입하는 힘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힘이다. 당신도 한때 '몰입의 달인'이었던 때가 있었다. 바로 어린 시절 이야기다. 주변에 아이가 있으면 쉽게 알 수 있다. 어린시절에는 누구나 모든 일에 몰입하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어른 입장에서는 조금도 재미있지 않은 일을 아이들은 몇십 분동안 계속한다. 특정 크기의 돌멩이만 모은다든지, 나무블록으로 무언가를 만들고 부수기를 반복한다든지 말이다. 곤충채집, 전단지 뒷면에 낙서하기, tv게임, 만화, 도로 위 흰 색 선 걷기 등등. 누구나 어떤 형태로든 몰입을 경험한다.
그렇다면 몰입을 잊어버린 성인이 그 기억을 되살리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그 답을 말하기 전에 한 가지 착각하기 쉬운 점에 대해 말해두고 싶다. 무언가에 빠지는 일의 소중함을 이야기하면 사람들은 이렇게 질문한다.
"몰입할 대상을 찾지 못하겠어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이는 내 sns와 메일 매거진에 자주 등장하는 단골 질문이다. 사회 어딘가에 '몰입'이라는 라벨이 붙여진 보물이 잠들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그런 질문을 하는 것은 반짝반짝 빛나는 그것을 보아야만 '그래, 이것이라면 빠질 수 있어'라고 확신할 수 있다는 뜻일 수 있다. 슈퍼마리오가 별을 딴 순간부터 천하무적이 되는 것처럼 그 무엇인가를 손에 쥐면 단번에 몰입 상태가 될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완전히 잘못된 생각이다. 순서가 바뀌었다. '약속된 무엇인가'에 빠졌을 때 몰입에 이르는 것이 아니다.
눈앞의 무언가에 완전히 빠져들어 잠시 자신을 잊는 순간, 그 때부터 자신이 몰입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다시 말해, 몰입을 체험하고 싶다면 무엇이든 좋으니 철저히 해보라.
몰입하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은 '스스로 정한 규칙대로 움직이는 것'이다.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자신의 방식대로 수행한다. 그 과정에서 기쁨과 성취감이 샘솟는다. 다른 누군가가 명령한 규칙에 따라 행동해서는 기쁨도 흥분도 느낄 수 없다.
"호리에 씨의 조언대로 새로운 취미에 도전했는데, 좀처럼 몰입할 수 없었어요."
이번에는 몰입할 대상을 발견했다는 사람들의 고민이다. 그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들어보면 이유는 대체로 똑같다. 즉 눈앞에 있는 것을 그저 '소화'만 할 뿐이어서 그렇다.
가령 어떤 사람이 "한달에 1~2회 경마장에 가서 잡지에서 예측한 것을 참고로 마권을 삽니다."라고 한다. 그러나 이대로는 몰입하기가 어렵다.
나 역시 대학시절, 경마에 빠진 적이 있다. 경마장도 자주 다녔다. 시간과 돈을 쏟아붓고 급기야는 예측 프로그램까지 개발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경마장에 다니는 빈도가 아니라, 얼마나 자신의 머리를 사용해 적극적인 행동을 취했느냐다.
뇌는 따분함을 싫어한다. '새로운 것은 전혀 생각하지 마!' 라고 명령을 받으면, 따분한 나머지 추억을 재료로 삼고는 불안, 초조, 질투 같은 불필요한 감정을 방출한다. 역으로 생각할 거리를 쥐어주면, 뇌는 '즐거워, 좀 더 하고 싶어'같은 감정을 방출한다.
이렇게 뇌는 아이처럼 단순하다. 나는 그 효과를 실제로 몇 번이나 경험했다.
도쿄 대학 입학시험을 치를 때, 나는 영어단어장을 한 권을 모조리 암기했다. 단어암기라니, 평소 같으면 전혀 하지 않았을 일이다. 암기는 내게 너무 따분하다. 재미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일이다. 만약 교사가 암기하라고 명령했다면 '어떻게든 상관없다'라며 따르지 않았을 것이다.
당시 내가 영어단어 암기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것은 '나 스스로 정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입시 대책을 연구하던 중에 나는 자발적으로 '단어를 암기하자'고 결심했다. 그러나 마치 게임처럼 단어 암기에 빠지게 되었고 그 작업에 즐겁게 몰입할 수 있었다.
주어진 규칙이 아닌 스스로 하겠다고 정한 것을 할 때 사람은 '재미'를 느낀다. 역으로 아무리 굉장한 놀이라 해도 먹이를 기다리는 새끼새처럼 입을 벌린 채 기다리기만 해서는 진심으로 그것에 빠질 수 없다.
사소한 것이어도 괜찮다. 스스로 규칙을 정하고 스스로 만든 게임을 플레이하는 상황을 만들라.
다시 말해, 몰입이란 찾는 것이 아니라 머리를 사용해 도달하는 것이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몰입의 입구는 무엇이든 상관없다. 포인트는 단 하나, 그 몰입 속에서 규칙을 정하는 우두머리가 자신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 <모든 교육은 세뇌다> 호리에 다카후미 지음
"스스로 규칙을 정하고 스스로 게임을 만들어 즐기는 상황 만들기" 나도 이런 몰입을 경험한 적이 있다. 4년 전에 문학수의 <더 클래식>이라는 책을 읽고, 거기에 소개된 클래식 앨범들을 하루에 한장씩 찾아들었다. 그냥 다른 일을 하면서 듣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그 음악에만 집중해서 매일 들었는데 모든 음악들이 소름끼치게 좋았다. 내가 익숙하게 알고 듣던 그 클래식 음악이 아니었다. 아침에 일어나 정좌를 하고 앉아 온 감각을 음악에 집중하여 듣는 것은 그냥 음악을 배경음악처럼 흘려듣는 행위와는 전혀 달랐다. 마치 내 몸안으로 음악이 들어와 흘러넘치는 기분이었다. 급기야는 음악들이 색들과 이미지로 느껴져서 화실을 다니며 그림까지 그렸던 적이 있었다. 이 게임의 규칙은 딱 하나였다. 다른 생각이나 행동에 빠지지 않고 오직 음악에만 온 몸을 집중해서 듣기. 그리고 하루에 하나의 앨범만 듣기. 이 단순한 규칙이 클래식 듣기 라는 놀이가 되었고, 나는 음악의 아름다움과 신비로움에 빠지게 되었다.
그밖에도 나는 무엇이든 끊임없이 미션을 만들어 스스로 그 미션을 깨는 과정을 즐긴다. 새로운 습관을 만들어 내 것으로 체화해 실험해보는 것, 미니멀리스트의 삶을 책으로 읽고 내 삶에 적용해서 실행해보는 것, 비건에 대해 공부하고 직접 실행하는 것, 감사일기 쓰기 프로젝트, 마음공부, 낭독 독서와 필사노트, 독서노트 등 뭔가 나만의 실험 프로젝트를 만들고 탐구해서 직접 몸으로 삶 속에서 실험해보는 것이 즐겁다.
예전에 일본영화 '인스턴트 늪'이라는 영화를 재밌게 본 적이 있다. 미키 사토시 라는 감독에 아소 쿠미코가 주연인 영화이다. 거기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잘 풀리는 일도 하나 없고, 왠지 사는 게 기운 빠진다고 이야기하는 주인공 하나메(아소 쿠미코)에게 노부로는 좋은 걸 알려줄게 하며 비법을 전수해준다. 그 비법은 '세면대에 물을 틀어놓고 물이 넘치기 전에 자판기에서 쥬스를 뽑아오자' 라며 내기를 하는 장면이다. 영화의 다른 것은 다 잊어버렸는데 그 장면은 잊히지 않는다. 삶의 모든 것을 '놀이'와 재밌는 '게임'으로 만들어 즐기는 그 장면이 너무나 좋았다.
내가 규칙을 만들고 게임을 계획해서 즐기는 상황이 좋다. 모든 것을 철저히 즐기는 실험정신으로 놀이하듯 재밌게 사는 것이 좋다. 나만의 게임으로 만든다는 것, 머리를 써서 능동적으로 참여한다는 것은
1. 진심으로 그것에 몰입하여 즐긴다는 것이다.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삶의 모든 것을 진지하게 진심으로 놀이하듯 즐기는 것이다. 이것이 쓸모가 있느냐, 돈이 되느냐, 도움이 되느냐 따위의 현실적인 이유를 따지지 않고 그냥 하는 것이다.
2. 대상이 무엇이냐는 중요하지 않다. 삶의 모든 것이 게임이자 놀이가 될 수 있다. 아침에 일어나서 잠들기까지 하는 모든 것이 '놀이'가 되는 상상을 해보자. 두근두근 설레인다.
3. 스스로 정한 규칙대로 스스로 계획하고 스스로 움직인다. 내가 게임의 규칙을 만들기 때문에 정답이 없다. 잘하고 못하고도 없다. 철저하게 내가 주도하여 만든 규칙이므로 이 게임의 주인공은 나이다.
예를 들어 '하루에 하나씩 새로운 경험이나 배움에 도전하기' 라는 게임을 만들었다면 이런 규칙을 세울 수 있다.
1) 하루에 하나씩 아주 작은 것이라도 새로운 경험이나 배움에 도전한다.
2) 미리 리스트를 작성해두고, 중간중간 추가한다.
3) 무엇에 도전했고 어떤 경험을 했는지 과정과 결과를 기록한다.
4) 30일 동안 실행한다.
5) 트래커와 같은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매일 빼먹지 않고 한다.
6) 가장 두근거리고 재미있었던 경험을 골라 더 깊이 있게 도전하는 게임을 새로 만든다.
이렇게 여러가지 스스로 만든 규칙에 따라 게임을 만드는 것이 너무 즐겁다. 실험 프로젝트, 게임, 놀이, 인생 실험실, 배움. 이름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내가 좋아하는 것, 재밌는 것에 대해 나만의 규칙을 만들고 철저히 파고들어 즐기며 몰입하는 것, 게임하듯 완전히 빠져 그것과 하나가 되어 노는 것.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