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새로운 경험은 림스키-코르사코프의 관현악 곡 '세헤라자데'를 대극장에서 감상하고 전율을 느낀 것이다.
내가 세헤라자데라는 곡에 대해서 아는 것이라고는 이 곡이 아라비안나이트(천일야화)와 관련이 있다는 것, 아련한 하프와 바이올린 소리가 매혹적인 곡이라는 것 뿐이었다. 사실 세헤라자데의 작곡가가 림스키-코르사코프라는 것도 공연을 예매하면서 처음으로 알았다. 나에게 클래식은 아름다운 음악이지만 클래식에 대한 조예는 전혀 없다. 솔직히 금요일 저녁 8시에 예정된 공연이라 취소를 할까 생각했을 정도로 나는 이 공연에 대해 큰 기대가 없었다.
그랬던 내가 공연을 보고 말그대로 전율을 느꼈다. 아니 전율이라는 표현보다는 압도되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 같다. 악기들의 터지는 소리가 온 몸을 휘감아서 나는 다른 시공간으로 순간 이동했다. 현실이 아닌 가상의 공간과 시간에 들어간 느낌. 비현실적이고 꿈을 꾸는 듯한 환각 비슷한 것을 느꼈다. 분명히 내 앞에서 연주자들이 공연을 하고 있는데 마치 그 공연장이 현실세계에서 뚝 떨어져 나와 우주로, 알 수 없는 미지의 공간으로 이동한 느낌이었다. 마치 수술 전 마취 주사를 맞고 몽롱한 무의식의 세계로 빠져들듯 나의 몸은 현실의 물리적 신체를 벗어버리고 소리들과 하나가 되었다. 온 몸의 세포가 툭툭툭 터져 우주로 유영하는 느낌이었다.
클래식 공연을 보고 이런 감각을 느끼는 건 처음이다. 딱 2번 클래식 공연을 보고 감동해서 운 적은 있었다. 그러나 이번처럼 온 몸이 소리들로 압도되어 세포 하나하나가 물결치며 터지고, 다른 시공간으로 여행을 온 듯한 느낌을 받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것은 음악이라기보다는 소리에 가까웠다. 나는 음악에 감동한 것이 아니라 소리에 압도되었던 것 같다. 보는 내내 '멋짐폭발'이라는 감탄만 나왔다.
모든 악기들이 마치 마법에 걸린 것처럼, 폭죽을 터뜨리는 소리. 일제히 미친듯이 소리를 내는데 그 함성이 인간의 모습을, 삶의 모습을 보는 듯 했다. 삶의 환희와 기쁨, 감동, 희노애락, 그리고 광기와 몰입, 열정. 모든 것들이 하나로 어우러졌으나 어우러지지 않고 폭발하는 자유. 각각의 소리들이 온전히 살아있으나 한 곳을 향해 함께 달려가는 순간. 아, 말로는 도저히 표현하지 못하겠다. 기회가 된다면 그 경이롭고 환희로운 순간을 다시 느껴보고 싶다.
금요일 저녁 그냥 취소하고 가지말까 고민했던 내가 바보같다. 이렇게 멋진 공연을 못볼뻔 했다니. 정말 후회할 뻔했다. 역시 인생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