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 제작 워크숍 마지막 날 상영회가 열리다

100일동안 매일 그림을 그리고 4개월동안 다큐를 만들며 깨달은 것

by 여행하는 그리니

어제는 다큐 제작 워크숍 마지막 날, 상영회가 열렸다. 내 이름과 내 다큐 제목을 커다란 스크린에서 보니 기분이 이상했다. 6명의 작품 중 내 것은 두번째로 상영되었다. 혼자 집에서 노트북으로 볼 때와는 매우 달랐다. 영화관의 큰 화면과 사운드, 초대된 관객들, 선생님과 관계자들과 함께 내 다큐를 본다는 것은 생각보다 부끄러운 일이었다. 나는 오글거림과 창피함에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기분이 되었다, 혼자 감동했다가, 왜 저렇게 했을까 하며 후회했다가, 아쉬웠다가 20분 동안 온갖 감정을 왔다갔다하며 내 다큐를 끝까지 지켜보았다.


100일동안의 이야기가 담긴 20분짜리 다큐. 그 안에는 100일동안의 이야기가 다 담기지 못했다. 내 능력과 노력의 부족으로 아주 일부의 이야기가 담겼다. 그러나 그 이상이 담긴 다큐이기도 했다. 모든 것을 담았다면 아마 다큐는 20분이 아니라 1시간이 넘어갔을 것이고, 더 지루해졌을 것이다. 담지 않은 이야기는 이렇게 글로 기록했다. 나는 아직 하나의 다큐를 이제 막 완성했을 뿐이다.


100일동안 매일 그림을 그리고 4개월동안 다큐를 만들며 깨달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첫번째, 다큐는 내가 세상을 보는 방식을 바꾸었다.

다큐를 찍기 전에는 평범했던 것들이 특별해졌다. 아니 특별해진 것은 그것들을 바라보는 나의 눈이었다. 다큐를 찍고 만드는 동안에는 주변의 것들에 온통 관심을 쏟게 된다. 눈과 귀를 활짝 열고 자세히 살펴보고 깊이 들여다보며 보이지 않는 이면까지 생각해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큐라는 것을 만들 수가 없다. 나는 다큐를 찍고 만들면서 세상과 내 삶을 진득하게 꿰뚫어 깊이 들여다보는 태도를 배운 것 같다.


두번째, 다큐는 내 삶을 재료로 하는 기록물이다. 그래서 삶을 변화하도록 만든다.

만약 다큐를 찍지 않았다면 나는 100일 동안 그림을 그리지 못했을 것이다. 며칠 그리다 다른 일들에 묻혀 흐지부지 끝났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나는 다큐를 완성해야 했기 때문에 100일 동안 그림을 그렸고, 그리지 않았다면 몰랐을 여러가지 것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삶이 변화하기를 바란다면 다큐를 만드는 것은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다큐는 어쨌든 무엇을 재료로 하든 나의 시각이 담긴 이야기이다. 그리고 나는 앞으로도 다큐라는 도구를 통해 삶의 순간들을, 내 삶의 이야기들을, 세상을 살며 마주치는 것들을 수집하여 기록하고 표현하고 싶다는 것을 깨달았다.


세번째, 삶의 다양한 방식을 실험해보고 싶다고 생각하다.

다큐 제작을 하며 느낀 것은 나는 다큐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을 다큐라는 수단으로 변화시키고 기록하며 표현하는 것에 관심이 있다는 것이다. 즉 내 삶이 우선이고 다큐는 그것을 기록하는 수단이다. 그러나 수단인 다큐가 역으로 내 삶을 변화시킨다.

다큐라는 것은 영상과 글, 나래이션 등의 내용으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나는 내 삶을 다양한 방식으로 실험하고 그 과정을 영상과 글로 기록하고 싶다. 무언가 주제를 정하고 계획을 세우고, 삶의 방식과 행동을 변화시키고 그것을 실험해보고, 기록하는 것이 재밌다. 다큐라는 도구는 그 과정을 도와주는 훌륭한 방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첫번째 다큐가 '평범한 사람의 일상 예술 도전기, 100일 동안 그림 그리기' 실험이었다면 두번째 다큐는 삶의 다양한 방식을 실험하고 그것을 다큐로 만들어보고 싶다.


네번째, 다큐는 육체 작업이다.

다큐는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진행되지 않는다. 뭔가 액션을 취해야 하고 행동을 해야 하며 스스로 움직여야 한다. 하다못해 무언가에 카메라를 들이대고 촬영버튼이라도 눌러야 한다. 그리고 촬영한 후에는 또 책상에 앉아 편집이라는 육체 노동을 해야 한다. 영상을 고르고, 자르고, 붙이고, 모으고, 재배열하고, 자막을 쓰고, 넣고, 나래이션을 녹음하고, 잘 되었는지 계속해서 다시 봐야 한다. 사실 나에게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바로 이 육체노동 '편집'이었다.

영상화면과 나의 생각들,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편집이라는 행위로 풀어내는 그 시간이 가장 힘들고 어려웠다. 한번 시작하면 4~5시간을 의자에 앉아 컴퓨터와 씨름하다보면 손목과 온 몸이 아프다. 의자에 가만히 앉아 컴퓨터만 하는 것은 건강에 매우 좋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앉아 있는 것보다 걷는 것을 좋아하는 인간이구나 라는 것도 깨달았다.


마지막 상영을 위한 제출 마감을 앞두고는 거의 완성을 위해 편집작업에 매달리느라 숙제를 해치우는 기분으로 편집을 했다. 밀린 일기를 방학 마지막 날 몰아 쓰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결국 끝을 냈고 사람들 앞에서 상영을 했다. 내가 가진 능력을 모두 발휘해 극한까지 몰입하지 못했기 때문에 아쉬운 부분이 많았다. 하지만 4달이라는 시간 제한이 없었다면 나는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없었을 것이다.


마지막 상영이 끝나고, 다큐를 만든 사람들의 소감을 듣는 자리가 있었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처음에 다큐 제작 워크숍을 신청할 때는 다큐라는 것이 이렇게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신청을 했고,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감독님이 "여러분들 중간에 포기 하지 말고, 꼭 끝까지 만드셔야 되요."라고 하셨을 때는 왜 저런 소리를 하실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근데 해보니 다큐를 만든다는 것이 정말 어렵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어제까지 마지막 부분을 편집하며 든 생각은 '아, 다시는 하고 싶지 않다.' 라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오늘 다른 분들이 만드신 다큐를 보고 든 생각은 '그래도 다시 한번 또 만들어 보고싶다' 였습니다. 감사한 시간이었습니다."


편집이라는 힘든 산을 넘으며 다시는 하고 싶지 않았는데 그 산을 넘고 나니 또 무엇을 다큐로 기록할까 생각을 굴리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밀린 일기를 꾸역꾸역 쓰는 기분이 아니라 마음껏 실험하는 기분으로 다큐를 만들어 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숙제가 아니라 놀이하는 마음으로 진심을 다해 두번째 다큐를 만들어 보고 싶다.


첫번째는 해봤으니 두번째는 더 잘할 것이다. 진심을 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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