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순간을 주시할 때 ‘무언가’를 인식하던 마음은 그저 텅 빈 맑은 마음이 되어 내면에 형상을 초월한 순수의식의 차원을 깨운다. 형상이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하던 과거의 당신은 이제 없다. 진정한 지혜는 고요함 속에서 나온다. 그러므로 창의력을 개발하고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면 고요함 속으로 들어가라. 당신이 모든 것을 멈추고 고요해질 때 지혜가 바로 거기 있다. 그저 보고 그저 들어라. 그 이상은 필요 없다. 당신이 고요해지고, 그저 보고 그저 들을 때 생각을 여읜 지혜가 내면에서 깨어난다.
사람들은 대체로 자신의 생각이라는 감옥에 갇혀서 일생을 살아간다. 그래서 과거에 얽매이고 생각이 지어낸 좁은 자아상을 넘어서지 못한다. 내 안에 생각을 넘어선 깊은 의식의 차원이 존재한다. 나의 실체인 그것을 걸림 없는 순수의식이라고도 하고 맑은 마음이라고도 한다. 나의 실체를 발견하고 나면 세상과 나는 동시에 고통에서 놓여난다. 오직 내 안에 존재하는 걸림 없는 순수의식을 통해서만 사랑과 기쁨, 지속적인 마음의 평화가 삶 속으로 들어오고 나는 ‘큰 나’가 될 수 있다.
나는 순수의식, 맑은 마음, 내 안의 허공, 형상을 초월한 순수의식, 고요함이다.
나는 잠시 사람의 모습으로 변장한 맑은 마음이다.
나는 잠시 형상을 입고 사람의 모습으로 변장한 맑은 마음, 형상을 초월한 순수의식이다.
나는 생각이나 감정이 아니라 그것들이 만들어지고 사라지는 순수의식, 허공이다.
그저 보고 그저 들을 뿐, 생각을 여읜 지혜가 내면에서 깨어난다.
걸림없는 순수의식을 통해서 사랑과 기쁨, 지속적인 마음의 평화가 삶 속으로 들어오고 나는 진정한 나, 맑은 마음, 순수한 의식이 된다.
지금 이 순간 그 순수의식을 만날 수 있다. 눈을 감고 생각을 내려놓고, 심장이 쿵쾅거리는 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으면 이유없는 기쁨이 온 몸의 세포에서 팡팡팡 터지며 사랑과 평화가 온 몸으로 흘러넘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있는 이대로 나는 온전하고 완전하며 모든 것이 다 좋다는 충족감이 피어오른다.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성취하기 위해 쌓기 위해 모으기 위해 애쓸 필요없이 지금 이 순간 있는 그대로 완벽한 순수의식, 맑은 마음, 텅빈 허공이 거기 있다. 그것은 형상이나 육체, 생각, 감정들에 속박되거나 얽매이지 않는 한없이 자유롭고 무한한 텅빈 공간이다. 모든 것이 생겨났다 사라지고, 모든 것이 받아들여지고 수용되는 텅빈 공간, 판단도 없고, 과거나 미래도 없으며 오직 지금 이 순간 걸림 없는 사랑, 기쁨, 평화만이 가득하다.
그저 보고 듣고, 그저 있는 그대로 존재할 뿐, 그 이상은 필요없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눈을 감고 고요이 있는다.
무언가를 하는 중에는 내면의 순수의식, 맑은 마음, 텅빈 허공을 느끼며 살아있음의 순수한 기쁨을 누린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무언가를 하여도, 어디에서 언제든. 그 한마음, 순수의식, 텅빈 허공을 감지하여 연결되어 그곳으로 돌아올 수 있다면 '나'는 언제든 무한한 행복과 평화, 걸림없는 자유에 도달한다. 나는 걸림없는 순수의식, 맑은 마음, 텅빈 허공이다.
‘생각을 지나치게 중요하게 여기지 말라.’
우주의 실상은 ‘하나로 연결된 전체’이다. 만물은 다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홀로 분리되어 존재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 생각이 삶을 완전히 장악해버리고 나면 생각이란 것이 단지 내 실체의 아주 작은 일부임을 깨닫지 못하게 된다. ......
지혜는 생각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존재의 심연에는 이미 지혜가 있다. 그것을 끌어다 쓰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그저 앞에 있는 사람이나 사물에 전념하면 된다. 전념은 원초적 지혜이며 순수의식 그 자체이다. 전념은 개념적 사고가 만들어낸 장벽을 녹여 없애고 그로 인해 이 세상 아무것도 홀로 분리되어 존재할 수 없음을 알게 해준다. 맑은 마음이 이루는 공동의 장에서 인식하는 자와 인식되는 것은 하나가 된다.
근원적 어리석음은 무엇인가? 나=생각이라는 믿음이다. 깨달음을 얻었다는 것은 바로 생각이라는 꿈에서 깨어나는 것이다.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다만 나=생각이라는 일체감을 버리고 생각에 완전히 지배당하지 말라는 것이다.
삶의 달인은 지배하지 않는다. 그저 광대한 순수의식에 삶의 중심을 맞춰두고 그것이 말하고 행동하고 일하도록 맡길 뿐이다.
하나의 행위를 하면서 그것이 앞으로 가져올 결과보다는 행위 자체에 좀더 관심을 둘 때 나는 에고의 오랜 습관을 버리게 된다. 그때의 행위는 훨씬 더 효과적일 뿐만 아니라 나에게 무한한 충족감과 기쁨을 안겨준다.
목표를 정하라. 하지만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음을 알라. 어떤 행위든 매순간 그것 자체로 만족스럽다. 나는 더 이상 지금을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시키지 않는다.
지혜는 생각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생각은 내 실체의 아주 작은 일부이다. 존재의 심연에 이미 지혜가 있다. 그것을 끌어다 쓰기 위해서 할 일은 '그저 앞에 있는 사람이나 사물에 전념'하는 것이다. 전념은 원초적 지혜이며 순수의식 그 자체이다. 개념적 사고의 장벽과 한계가 없어지면 인식하는 자는 인식되는 것과 하나가 된다. '우주는 하나로 연결된 전체이고 만물은 다 서로 연결되어 있다'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생각이라는 꿈에서 깨어나 진실을 깨닫게 된다.
눈앞의 사람이나 사물에 전념한다는 것은 생각과 판단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 그것을 마주한다는 것이다. 내가 더 이상 생각을 하거나 무언가를 더할 필요없이 있는 그대로 눈앞의 사람이나 사물을 순수의식이 알아차림하는 것이다. 아무런 노력도, 정신적인 에너지도, 피로도, 욕망과 바램도, 바꾸려는 의지도 필요하지 않다. 그저 그것을 있는 그대로 허용한다. 그저 보고 듣고 있는 그대로 존재한다.
톨레는 "삶의 달인은 지배하지 않고, 그저 광대한 순수의식에 삶의 중심을 맞춰두고 그것이 말하고 행동하고 일하도록 맡길 뿐이다"라고 말한다.
지배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것을(삶을) 내가 원하는 대로 조작하거나 바꾸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다. 심지어 나의 생각도 판단하고 바꾸려고 하지 않는다. 생각이 일어나면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알아차림할 뿐이다.
삶의 중심을 광대한 순수의식에 맞추고 그것이 말하고 행동하고 일하도록 맡기기. 삶이 자신의 삶을 그저 스스로 사는대로 맡기고, 나는 몸에 힘을 뺀다. 삶이 말하고 행동하고 일하는 것을 바라본다. 젼념한다. 삶을 더 이상 지배하려 하지 않으니 욕심과 감정들이 사라지고 그저 삶의 기쁨, 삶이 그러함에 몸과 정신을 맡길 뿐이다.
어떤 행위를 하면서 그것이 앞으로 가져올 결과에 마음이 가있다는 것은 에고의 습관대로 끌려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 내 안에 존재하는 광대한 순수의식이 가진 무한한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에고의 작고 연약한 애씀, 기쁨 없는 노력에만 기대게 된다. 에고의 삶은 억지로 애쓰고 즐겁지 않은 노력이 필요한 삶이다. 그래서 피곤하고 기쁨이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하나의 행위를 할 때 행위 자체에 관심을 두고, 오직 그것에 전념하며 그 자체가 행위의 목적이 된다면 나는 애쓰거나 노력할 필요가 전혀 없다. 그저 내면에서 솟아나는 광대한 순수의식의 무한한 힘에 나를 맡길 뿐이다. 이는 나에게 '무한한 충족감'과 '기쁨'을 준다. 그것이 저절로 이루어지고, 나는 그 힘에 몸을 맡기고, 물결을 따라 흘러가는 느낌이다. 그래서 '어떤 행위든 매순간 그것 자체로 만족'스럽다. 지금 이 순간 모든 것이 성취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