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눈 속에 앉아 세상을 바라보는 명상의 시간

by 여행하는 그리니

1. Ryuichi Sakamoto - Blu (Tokyo Philharmonic Orchestra)

https://www.youtube.com/watch?v=pWI5aVKvkCg


새하얗고 서늘한 눈을 만지는 듯 매혹적으로 시작되는 피아노 소리. 그리고 뒤따르는 관악기과 현악기. 같은 테마가 계속 변형과 겹침을 반복하며 층층히 계단을 쌓아가듯 앞으로 나아간다. 이 음악은 계속 같은 테마가 반복되지만 반복이 아니라 전진을 떠올리게 한다. 한겹한겹 아주 얇게 천천히 쌓아가는 음악의 소리들. 소리의 겹이 쌓이고, 변주와 셈여림의 강약이 그 층을 풍요롭게 감싸안는다. 절정을 향해 달려가는 한편의 영화처럼 음악은 하나의 테마를 갖고 결말을 향해 나아간다. 절정에 이르러서는 폭죽이 터지듯 작은 축제를 벌이고, 이윽고 모든 것이 터진 후 찾아오는 평화롭고 감미로운 결말, 짧은 피아노 연주.


모든 것을 잊고 하얀 눈 속에 앉아 세상을 바라보는 명상의 시간을 경험하게 하는 음악.



2. Ryuichi Sakamoto -Merry Christmas Mr. Lawrence

https://www.youtube.com/watch?v=RQxOdTJcw1A&list=OLAK5uy_lL0WE-X3X8qCQPSu45-_74laxMqahedI8


푸른 대나무숲. 아무것도 없던 하늘에 한송이 두송이 작은 눈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떨어지는 눈들은 대나무 잎 여기저기에 떨어지고, 무거운 것은 저 아래로, 가벼운 것은 그보다 위에 살포시 앉는다. 어떤 것은 대나무의 온기에 녹아 물이 되어 사라진다. 어떤 것은 계속 쌓여 더 큰 눈송이를 만든다. 대나무 숲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고, 오직 눈송이 내려 포삭포삭 가라앚는 소리만 들린다.

눈송이들은 점점 커지기 시작하고, 새끼손톱만 하던 눈발은 아기 주먹만 하게 커져 대나무 숲은 온통 흰빛의 축제가 펼쳐진다. 눈은 대나무가 되어 숲을 만들고, 푸르던 대나무 숲은 어느새 하얀 눈 숲이 된다. 어느 것이 눈이고, 어느 것이 숲인지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새하얗고 아름다운 세상. 그 아름다운 세상에 귀를 열고 눈이 내리는 소리를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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