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도나 마음혁명> 레스터 레븐슨 지음, 샘파커스 출판
가장 높은 상태는 단순히 존재함이다. 그렇게 우리가 단순히 존재하고, 그저 뿐일 때, 우리는 우리의 무한함을, 그리고 우리가 전체임을 볼 것이다. 우리는 이제 완전히 만족하고, 영원하고, 변함없는 상태가 된다.
당신은 결코 당신의 개별성을 잃지 않을 것이다. 나라고 하는 느낌은 결코, 절대로, 당신을 떠나지 않는다. 다만 그것은 확장된다. 당신이, 당신의 본성이 무엇인지를 발견함에 따라 발생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곧 나이며, 당신이 곧 나이고, 거기 그렇게 오직 큰 하나가 있음을 보기 시작하는 것이다. 당신은 늘 그랬듯이 지금도 거룩하고 무한한 존재, 그 하나다.
내가 찾고 있는 행복은 바로 나다. 나는 전체다.
‘그저 일어나야 할 일이 일어나도록’ 이라는 느낌을 가지십시오. 이것을 완성시키기 위해 우리는 에고적 경향성을 놓아버려야 합니다. 에고는 “나는 레스터라는 개인이다. 나는 몸과 마음을 가지고 이것을 한다.”라는 느낌입니다. 이것이 잘못입니다. 나는 레스터를 길에서 물러나도록 하고 신 또는 진자아가 작동하도록 해야 합니다. 이것이 성취되었을 때 당신은 사물들 속에서 떠다니는 것 같고 노력조차 필요없어집니다. 만일 거기 노력이 있다면, 거기 에고가 있습니다. 노력이 없을 때 거기에는 에고가 없습니다. 더 많이 노력할수록 에고가 더욱 강해집니다. 그러나 어쨌든 당신이 완전히 깨달을 때까지는 노력이라는 도구를 사용해야 합니다. 언젠가는 당신이 노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 그런 시간이 올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것은 완전하게 당신 뜻대로 돌아갈 것입니다. 이때 당신은 바로 당신의 진자아입니다. 당신이 꾸준히 에고를 놓아버린다면 결국 그것을 놓을 것이고, 그러고 나면 행위자가 되기보다는 목격자가 될 것입니다. 그냥 일어나게 하십시오.
바로 당신이 진자아라는 것, 그저 나라는 것을 보십시오. 오직 “나, 나, 나...” 그러면 당신은 유쾌해질 것입니다. 당신이 혼자일 때 시도해보십시오. 단지 “나, 나, 나...” 그러나 “나는 몸이다. 나는 마음이다.”라고는 하지 마십시오. 그냥 나, 나, 나 라고 하는 존재성의 느낌입니다 . 나는 신을 한 단어로 표현할 때 가장 적절한 말이 존재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신은 존재하는 모든 것의 존재성입니다.
‘슬픔 없는 행복’은 오직 내면으로 들어가야만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이 첫 번째 요점이다. 두 번째 요점은, 우리가 찾고 있는 이 위대한 행복은 바로 우리 자신의 진자아이며, 우리 자신의 존재성 이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가 찾고 있는 이것은 우리에게 기본적으로 내재한 본성이며, 그것은 지금 여기에 있는 우리의 것이다. 우리 자신이 바로 우리가 찾고 있는 그 행복인데, 그것을 밖에서 찾으니 결국 못 찾고 마는 것이다.
-<세도나 마음혁명> 레스터 레븐슨 지음, 샘파커스 출판
나는 무한한 하나이자 전체이다. 내가 찾고 있는 행복은 바로 나다. 내가 찾고 있는 진정한 행복은 나 자신의 진자아이며, 나 자신의 존재성 이외에는 아무것도 아니다. 내가 찾고 있는 슬픔 없는 행복은 나에게 기본적으로 내재한 본성이다. 그것은 지금 여기에 있는 나의 것이다. 나 자신이 바로 내가 그토록 찾아다니고 염원하던 그 행복이다. 사랑은 나 자신의 진자아이다. 그것이 최고의 사랑이다. 내가 할 일은 '사랑-아님'의 느낌들을 놓아버리고 흘려버리는 것이다. 그러면 남는 것은 오직 사랑뿐인 바로 진짜 나 자신이다. 단순히 존재하기. 그것이 내가 할 일의 전부이다.
신은 존재하는 모든 것의 존재성이다. 무한함, 전체, 완전한 행복, 최고의 사랑, 신인 나, 자신의 진자아와 만나면 나는 노력하거나 애쓸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저 일어나야 할 일이 일어나도록' 허용하고 내맡긴다. 그러면 세상에 둥실둥실 떠다니는 느낌으로 삶을 살게 된다. 에고를 놓아주고 진자아로 그저 단순히 존재하면 우리는 세상 속을 떠다니는 것 같고, 노력하거나 애쓸 필요가 없음을 알게 된다. 그저 모든 일이 완벽하게 굴러가고 있고, 나는 그것을 그저 바라본다. 행위하더라도 그 행위에 빠지지 않고 관찰자가 되어 그것을 바라본다. 마치 내가 만든 영화를 보듯.
애쓰고 노력한다는 것은 억지로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무리하는 것이다. 무한한 하나이자 전체인 진정한 행복, 완전한 하나의 존재로서의 자신을 살지 못하기 때문에 작은 나인 에고가 노력하고 애쓰느라 힘이 든다. 오직 신만이 행위자이다. 신은 완전하다. 거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러므로 애쓰거나 노력할 필요가 없다. 물흐르듯, 구름이 떠가듯, 새가 지저귀듯, 여기 모든 것이 그러하듯, 존재하는 모든 것이 그러하게 존재하듯 그렇게 단순히 존재하면 된다.
생각들의 총합에 지나지 않는 마음에 빠지지 않고, 모든 생각을 생각으로 놓아버리고, 그냥 단순히 존재하기. 그렇게 단순히 존재할 때 우리는 노력하지 않아도 모든 것이 이미 완벽하게 성취되었음을 깨달을 수 있다. 그냥 나, 나, 나 라고 하는 존재성의 느낌. 신은 존재하는 모든 것의 존재성이다. 모든 것은 완벽하게 성취되었다. 거기 어떻게 문제가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