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 그리고 지혜> 레스터 레븐슨 지음, 정신세계사 출판
세상에서 떨어져 나와 혼자가 된다는 것은 곧 외부세계가 좇고 있는 방향을 벗어나서 자신의 참자아를 찾아 깊은 내면으로 다이빙해 들어가겠노라는 불굴의 결심이다. 그리하여 주의가 언제나 내면으로만 향하고 있게끔 말이다. 언젠가는 우리 모두가 이 꿈에서 깨어나서 자신이 꿈을 꾸고 있었음을 깨닫고 그 모든 것에 대해 한바탕 큰 웃음을 터뜨릴 것이다.
이제 나는 삶의 파노라마를 하나의 꿈으로 바라본다. 나는 그것이 꿈의 재질로 만들어져 있음을 알고, 그것이 펼쳐져 지나가게 한다. 그러다가 꿈을 떠나갈 때가 되면 자신의 모든 힘을 모으고는 만면에 미소를 띠면서 의식적으로 몸을 빠져나가 불멸성 속으로 들어선다. 진정한 당신은 당신 자신의 참자아, 있는 그대로의 당신의 ‘나’이다. 그것은 지금 당신이 자신으로 여기고 있는 몸이나 마음 따위에 한정되어 있지 않다. 우리의 실체, 우리의 진정한 자아는 영화관의 스크린과도 같다. 우리의 참자아는 변함없는 스크린이고, 세상은 스크린 위를 지나가는 그림자들이다. 우리의 참자아인 스크린은 움직이지 않지만, 스크린 위의 그림자들은 끊임없이 움직인다. 우리가 스크린 위의 인물들과 온갖 사건들을 지켜보고 있을 때, 불도, 홍수도, 폭탄도 스크린을 건드리지 못한다. 불은 스크린을 태우지 못하고 홍수도 스크린을 적시지 못하고 폭탄도 스크린을 파괴하지 못한다. 스크린은 바로 우리의 참자아와 마찬가지로 변함없고 건드릴 수 없어서 온전하다. 하지만 스크린 위에서 그 모든 사건이 일어나듯이 참자아 위에서 이 모든 행위가 일어난다. 우리 우주의 이 쇼가 영화만큼이나 만져지지 않는 그림자놀이라는 진실 속으로 깨어나면 그때부터 당신은 세상 속의 액션들이 영화속의 액션만큼이나 비현실적인 것임을 알아차리게 된다. 모든 사람 또 다른 나들을 위한 나의 온 소망은 그들이 내가 아는 것을 온전히 다 깨달아서 모든 불행과 고통을 종식시키는 것이다.
그러니 모든 방법 중에서 최선의 방법은, 승인을 얻고자 하는, 통제하고자 하는, 안전을 확보하려는 잠재의식의 모든 느낌과 생각들을 내려놓음으로써 마음을 고요히 가라앉히는 것이다. 그러면 남는 것은 본연의 당신인 ‘있음’이다.
그저 앉아서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저 행위자라는 느낌만 놓아 보내라. 그저 모든 것이 완벽하다는 사실만을 알라. 그러면 아무리 사소한 생각을 품어도 금방 실현될 것이다. 신에게는, 참자아에게는 한계가 없다. 자신을 놓아 보내면 어떤 생각을 품어도 현실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은 신, 곧 당신의 참자아인 당신의 무한한 권능을 불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뭔가 행위를 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 사실 그와는 반대다. 내가 말하는 대로 하면 당신이 원하는 것이 현실이 되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신은 우리 안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 아무것도 더해지지 않은 우리의 ‘나’야말로 우리가 찾고 있는 신이다. 그저 순수한 나, 오로지 나, 그것이 신이다. 당신 자신의 참자아 말이다.
마음이란 사실 모든 생각의 총합에 지나지 않고, 모든 생각은 제약적인 관념들이다. 우리 중 누구라도 지금 당장 생각을 멈추고 그 상태에 머물러 있을 수 있다면 그는 지금 이 순간부터 무한한 있음이 될 것이다. 그것은 이토록 단순하다. 실제로 그렇게 하기가 그리 쉽지만은 않지만 말이다.
그러니 우리가 해야 할 첫 번째 과업은 올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부정적인 사고를 되돌려 긍정적인 사고를 충분히 가지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 다음에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간에 모든 생각을 내려놓아야 한다. 이것이 되면 우리는 자신이 앎의 영역, 전지한 상태에 이르러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러면 생각을 할 필요가 없어진다. 왜냐하면 모든 것을 알 수 있고 너무나 환희로운 완전한 자유의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내면으로 들어가는 과정은 내면을 들여다보아, 마음이란 생각들의 총합과 다름없고, 그 생각들이란 제약적인 관념들일 뿐임을 깨닫는 것이다. 이런 생각들을 놓아 보냄으로써 마음을 고요히 가라앉히면 우리 자신인 이 무한한 있음이 발견된다. 그러면 이 무한한 있음을 덮어 싸고 있던 구름이 걷히고, 우리는 완전히 자유로운 존재로 남아있게 된다.
앞서 말했듯이, 이 진실은 세상 속에서는 결코 발견할 수 없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세상은 이원성의 멀티플렉스 극장이다. 하지만 그 세상 바로 너머로 가면 절대적 진실을 발견한다. 우리는 온 세상과 우주 전체가 하나여서 이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으며, 그것이 바로 흑자들은 신이라 일컫는 바로 우리 자신의 참자아, 나 자신의 존재임을 깨닫는다. 세상은 있다. 하지만 사람들이 보는 그 모습으로는 아니다. 세상은 실로 우리 자신의 참자아일 뿐이다. “나는...”하고 우리가 말할 때 쓰는 ‘나’는 잘못 나뉘고 분리된 듯 보이는 ‘나’이다. 하지만 진실을 깨달으면 우리는 상대방이 곧 나이고, 오로지 하나의 있음만이 존재하고, 오직 하나의 의식만이 존재함을 깨닫는다. 우리는 자신이 이전에는 분리되어 있는 것으로 보였던 모든 있음, 혹은 의식의 총합임을 깨닫는다. 그대는 그대가 찾고 있는 바로 그것이다.
- <깨달음 그리고 지혜> 레스터 레븐슨 지음, 정신세계사 출판
나의 참자아는 영화관의 스크린과 같다. 나의 참자아는 변함없는 스크린이고, 세상은 스크린 위를 지나가는 그림자들이다. 스크린 위에서 온갖 인물, 사건들이 생겨났다 사라지고 끊임없이 변화한다. 그러나 스크린은 변함없이 그대로 있다. 온갖 사건과 인물들이 일어났다 사라지지만 그것이 펼쳐지는 스크린은 영향을 받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 그것들을 비출 뿐이다. 판단, 생각, 감정, 느낌들도 스크린 위의 그림자일 뿐. 스크린은 그 어느것에도 훼손되거나 물들지 않는다. 하얀 바탕, 순수한 있음, 있는 그대로 존재함. 그것이 바로 우리의 참자아이다. 세상의 모든 일이 영화만큼이나 비현실적인 그림자 놀이이다. 꿈 속의 세계에서 꿈을 꾸고 있는지도 모르고 그림자 놀이에 웃고 울고 희노애락에 빠져 꿈 속을 진짜라고 믿는다. 이 모든 그림자 놀이, 꿈의 세계를 깨달아 나의 참자아로 존재하면, 남는 것은 본연의 당신인 '있음'이다. 그냥 존재함. 그냥 있음. 그것이 나의 본연의 모습인 참자아이다. 본연의 있음을 제외한 다른 모든 것들은 스크린 위의 그림자, 영화, 꿈 속의 세계의 일들이다. 나는 그것들을 있는 그대로 비추고 일어나게끔 허용하는 텅빈 공간이자 스크린이다.
내가 할 일은 아무것도 없다. 그저 행위자라는 느낌, 통제하고자 하는 생각, 안전해지고자 하는 생각, 인정을 얻고자 하는 생각들을 놓아버리면 된다. 모든 것이 완벽하고 한계없다는 것. 오직 무한한 있음만 존재한다는 것을 알면 된다. 신은 내 안에 있다. 순수한 나, 참자아, 그것이 내가 찾고 있는 신이다. 내가 찾고 있는 행복이다. 나의 참자아를 발견하여 슬픔없는 행복, 완전한 행복에 이르기 위해서는 마음을 놓아 보내면 된다. 마음은 생각의 총합이고, 생각은 제약적인 관념들에 지나지 않는다. 생각, 관념, 마음을 놓아보내고 '그저 있음'으로 존재할 때 우리 자신인 '무한한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의 참자아인 '무한한 있음' 그 자체로 존재하면 모든 생각, 관념, 마음이 창조해낸 온갖 제약과 괴로움들이 일제히 사라지고 무한한 기쁨, 이유없는 행복을 느끼게 될 것이다.
온 세상과 우주 전체는 하나이다. 이 하나만 존재한다. 그 하나가 바로 우리 자신의 참자아, 나 자신이다. 세상과 우주는 나의 참자아이다. 네가 곧 '나'이고, 모든 것이 '나'이며 오직 하나의 의식만이 존재한다. 분리되어 있다는 관념은 환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