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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간 수집가 Jul 27. 2021

앨리스 달튼 브라운, 빛이 머무는 자리 전시를 보다

바람의 나부끼는 커튼과 새파란  바다, 그림같은 구름. 손을 뻗으면 만져질 것 같은 나뭇잎. 그녀의 그림을 처음 보았을 때, 나는 처음에 사진인 줄 알았다. 그러나 그것은 완벽한 그림이었다. 앨리스 달튼 브라운. 그녀의 그림은 사진처럼 선명하고 실재처럼 반짝거린다. 

그녀는 뉴욕을 기반으로, 사실주의 기법에 가까운 세밀화 작업을 해온 화가로 주로 인공적인 소재와 자연적인 소재의 관계에 관심을 두며, 두 요소가 만나는 지점의 빛을 탐구한다. 특히 작가가 예순에 접어든 시기부터 친구의 집에서 본 창가의 풍경은 그녀 인생의 하나의 전환점으로, 작가의 시그니처 작품인 커튼이 있는 물가의 풍경을 그리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전시는 크게 4개의 섹션으로 나뉜다. 첫번째 섹션은 빛과 그림자라는 부제를 가지고 있고, 1970년대 후반 초기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주로 건물 밖에 비친 그림자를 탐구하는 그림들이 많다. 어디선가 마주칠 법한 건물의 구석, 창고의 뒷벽, 계단, 화단과 건물이 만나는 구석 모퉁이, 거기에 비친 나무의 그림자. 그런 것들이 주로 소재가 된 그림들이다. 이상하다. 그림들은 매우 정적이고 고요한데 분명 아무것도 살아움직이는 것이 없는 건물들과 그림자일 뿐인데 거기엔 살아숨쉬는 무언가 생명이 느껴진다. 순간 바람이 불어 창고 벽에 비친 나무 그림자가 흔들릴 것 같고, 모퉁이 구석에 누군가가 앉아 담배를 물고 있을 것 같다. 계단으로 갑자기 고양이 튀어나올 것 같은 묘한 긴장감. 분명 정지된 화면이지만 그 안에는 살아있는 무언가가 있다. 그리고 나는 그 이유가 그림자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림자는 빛이 있어야만 생긴다. 그리고 빛은 살아있는 생명들에게는 필수적인 무엇이고, 그녀의 그림들 안에는 그림자가 빛의 존재를 대신 말해준다. 그림자를 통해 빛을 말하고, 빛을 통해 그림은 살아있는 생생함을 전한다.


나무 그림자와 계단, 두 건물로 만들어진 모퉁이




두번째 섹션은 집으로의 초대. 현관과 창문과 같은 안과 밖의 경계에 쏟아지는 빛이 주요 대상이다. 그녀의 그림 속 집들은 누군가 살고 있는 듯하면서도 아무도 살고 있지 않은 듯 매우 생활적인 냄새가 나면서 동시에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모순된 느낌을 준다. 마치 누군가가 자신의 어린시절 고향 집의 모습을 떠올리듯 그 집은 있는 동시에 있지 않은 느낌이다. 


수영장, 늦오후의 현관


세번째 섹션은 여름 바람. 그녀의 대표작인 여름 바람 시리즈를 볼 수 있는 섹션이다. 

빛, 바람, 여름, 커튼, 빛에 반짝 거리는 호수와 바다, 녹색의 나뭇잎. 그녀의 그림에서는 바람이 느껴진다. 흔들리는 커튼을 통해 여름 바람이 후욱 하고 불어와 내 머릿결을 쓸어넘긴다. 마치 그림 속 풍경으로 들어가 창가에 앉아 하염없이 호수의 반짝거림을 바라보고 있는 듯하다. 시원한 여름 바람과 청명한 햇살이 한가득 들어오는 창가의 마룻바닥에 앉아 몇시간이고 눈앞의 생생한 아름다움을 감상하고 싶다. 


그녀의 그림은 사진처럼 현실을 박제하여 순간을 정지시킨 정지사진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우리에게 이렇게 전하는 듯하다. 지금 눈 앞의 생생하게 살아숨쉬는 순간의 살아있음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음미하라고. 그 순간은 마치 그림처럼 비현실적이고 바람에 나부끼는 커튼처럼 가벼우며, 순식간에 사라질 찰나의 것이므로. 




황혼에 물든 날, 여름바람


정적인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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