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음의 속도를 늦추어라> 에크낫 이스워런 지음, 바움출판
마음 일부만 가지고 무슨 일을 할 때, 우리는 삶의 표면만 대충 스치고 있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스며들지 않습니다. 아무것에서도 진정한 감동을 받지 못합니다. 그것은 결국 내면의 공허감으로 귀결됩니다. 불행히도, 바로 이 공허감이 우리를 충동질하여 더욱 많은 것을 쑤셔넣어 필사적으로 우리의 마음속 빈곳을 채우게 합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정반대입니다. 속도를 늦추고 완전히 현재에 사는 것입니다. 그럴 때 순간순간이 모두 충만해질 것입니다.
일념집중은 아름다움을 더욱 아름답게 만듭니다. 음악이 한층 아름다워집니다. 그림이 한층 아름다워집니다. 색이 더욱 생생해지고 음이 더욱 감미로워집니다. 서구 신비주의에 성스러운 글이 있는데, 여기서 토머스 트러헌은 자기 눈에는 거리가 황금으로 포장되어 있고 거기서 놀고 있는 소년소녀들이 천사로 보인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처음에는 새롭게 신기해 보이고, 말할 수 없이 진기하고 즐겁고 아름답게 보인다." 일념집중은 이렇게 시력을 강화하여 생의 핵심을 들여다 볼 수 있게 해줍니다.
-< 마음의 속도를 늦추어라> 에크낫 이스워런 지음, 바움출판
"나는 지금 이 순간 마음 전체를 온전히 깨어있는 알아차림으로 유지하고 있는가?"
"나는 지금 이 순간 마음의 일부만 가지고 삶의 표면만 대충 스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스스로에게 이렇게 질문해 보는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
마음의 일부만 가지고 삶의 표면만 대충 스치고 있을 때는 내면의 공허감으로 삶이 무미건조해진다. 현재는 미래로 가기 위한 임시정거장 혹은 수단의 의미로 전락하고 지금 이 순간에 온전히 존재하지 못한다. 끝없는 갈증과 공허감이 계속될 뿐이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을 마음전체로 받아들이게 되면 지금 이 순간이 내가 되고 내가 지금 이 순간이 되며 모든 것이 마음 전체가 뛰어놀 수 있는 무한한 놀이터가 된다. 무엇을 해도 그 무한한 놀이터 안에서는 허용되고 모든 순간이 기쁨과 놀이의 순간이 된다.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 마음 전체를 온전히 깨어있는 알아차림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첫번째 속도를 늦춘다. 말, 행동, 호흡 모두를 아주 천천히 한다. 아주 천천히 호흡하고 천천히 말하며 천천히 행동한다. 속도를 늦추면 모든 것이 분명하게 인식될 것이다.
두번째, 지금 이 순간 완전히 존재한다. 나도 당신도 어디로 가야하거나 무언가를 성취하거나 이루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지금 이 순간 있는 이대로 모든 것이 행복하고 충만하다.
세번째, 눈 앞의 일과 대상에 온전히 집중한다. 삶은 오직 지금 이 순간 속에서만 찾을 수 있는 찰나적인 것이다. 그무엇도 불변하거나 영원한 것은 없다. 모든 것은 변화하기 마련이다.
속도를 늦추고 지금 이 순간에 온전히 깨어있을 때 문득 보이지 않는 삶의 신비와 아름다움을 깨닫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