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를 위한 그림일기> 정은혜 지음, 샨티 출판
사람들은 행복하고 싶다고 말하지만, 사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행복한 기분이 아니라 살아있다는, 그 가슴 뜨거워지는 경험인 경우가 많다. 살아있으려면 창조해야 한다. 창조는 ’ 살아있음'의 기운‘이 움직이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 <변화를 위한 그림일기> 정은혜 지음, 샨티 출판
행복은 굉장히 추상적인 말이다. 사람마다 행복을 정의하는 방식도 다르다. 누군가에게는 행복한 것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행복이 아닐 수도 있다. 나는 행복에 대해 자주 생각했지만 그럴 때마다 막연하고 설명할 수 없는 약간의 답답함이 있었다. 도대체 행복이 뭐지? 행복이 뭐길래 나는 행복해지기 위해 노력하는 것일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알기 위해서는 우선 행복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나만의 정의가 필요했다.
행복을 알기 위해서 내가 먼저 한 일은 내가 언제 행복을 느끼는지 스스로를 관찰하고 기록해보는 것이었다. 사람마다 행복의 정의와 기준이 다르다면 나는 나만의 정의와 기준을 세울 필요가 있었다.
* 내가 행복하다고 느끼는 순간이나 상황
1. 숲 속을 산책할 때
2. 오디오북을 듣거나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서 산책할 때
3. 그림책을 읽을 때
4. 글을 쓸 때
5. 여행 중
6. 아름다운 이야기나 영상을 감상할 때
7. 책을 볼 때
8. 만화책을 볼 때
9. 사진을 찍을 때
10. 명상을 할 때
11. 사랑하는 사람들과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낼 때
12. 내가 만든 것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때
13. 무언가를 만들거나 창조할 때
14. 몸을 움직여 무언가를 할 때
15. 나만의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목표를 세워 실행할 때
내가 행복하다고 느끼는 순간이나 상황을 책상에 앉아 생각하며 적지 않고, 직접 그 행동을 하며 나의 감정과 기분을 관찰했다. 생각만으로는 행복하다고 단정 지었던 것이 직접 해볼 경우 행복을 주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막연하게 '나는 이럴 때 행복할 거야'라고 미루어 짐작하지 않고 직접 그 행동을 했을 때 나에게 행복이라는 감정을 주었을 때만 그 항목을 리스트에 추가했다.
그리고 그것들의 공통점을 발견했다. 바로 '살아있다는 느낌을 준다'는 것이었다. 위의 것들을 할 때 나는 내가 살아있다는 생생한 느낌을 받았다. 단순히 그냥 명상을 하는 것만 해도 아무런 생산적인 일을 하거나 인생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음에도 행복을 느끼는 이유는 명상을 하는 순간에 내가 여기 이렇게 존재하고 살아있다는 실감이 강렬하게 들었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 나는 매우 행복한 아이였다고 기억한다. 그리고 그 이유는 매 순간이 살아있음의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움직이고, 만들고, 달리고, 넘어지고, 놀고, 먹고, 자고, 점프하고, 뒹굴고, 찍고, 읽고, 말하고, 춤추고. 모든 순간이 생생한 살아있음의 순간이었다. 그래서 모든 행위가 즉흥적이고 생생한 창조의 행위였다. 단순히 밥을 먹는 행위 하나도 그냥 허기를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써 요리를 하는 것이 하니라 놀이를 한다는 느낌이었다. 엄청난 미션을 하듯 밥을 하고, 계란 프라이를 하고, 후식을 준비하는 등 요리의 전 과정과 순간이 하나의 창조적 놀이였다. 그랬던 것이 어른이 되어가면서 모든 행위가 무언가를 위한 수단으로써 바뀌었다. 그리고 점점 살아있다는 생생함이나 창조하는 놀이의 즐거움을 잊어버렸다. 그래서 나는 행복에 집착하게 된 건지도 모르겠다. 어렸을 때는 행복하기 위해서 노력하지 않았다. 그냥 매 순간이 살아있음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창조이고 놀이였던 시절에는 행복이 무엇인지 물어볼 필요가 없었다.
이제 나는 행복을 위해서 무언가를 하지 않기로 한다. 그저 지금 이 순간 살아있음의 느낌을 마음껏 분출하며 창조적으로 놀기로 했다. 글을 쓰는 것도, 밥을 먹는 것도, 산책을 하는 것도, 책을 읽는 것도, 여행을 하는 것도, 몸을 움직이는 것도 모든 행위가 창조적 놀이다. 살아있음의 발현이다. 이제 나는 '지금 행복한가?'라는 질문을 그만두기로 했다. 대신 이렇게 묻기로 했다.
나는 지금 살아있는가? 살아있음의 기쁨을 충분히 누리고 만끽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