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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간 수집가 Aug 21. 2022

첫사랑의 숲을 다시 찾다 -3-

숫모르 편백 숲길과 절물자연휴양림 장생의 숲길

내가 제주 숲의 매력에 빠지게 된 건 "절물 자연 휴양림" 때문이다. 겨울이었고 절물 자연 휴양림의 나무들은 모두 하얗게 내린 눈 옷을 입고 있었다. 겨울임에도 숲은 춥지 않았다. 하얀 솜이불을 덮은 듯 포근하면서도 청명한 숲의 매력에 나는 푹 빠져버렸다. 그 전까지는 숲에 대한 큰 감흥이 없었다. 그냥 숲에 가면 기분이 좋아지고 공기가 맑아 건강해지는 느낌이라는 것이 다였다. 하지만 그 해 겨울 나는 숲의 매력에 푹 빠져버리게 되었고 2022년 여름 다시 첫사랑의 장소를 찾게 되었다.


이번 트레킹의 시작점은 절물자연휴양림이 아닌 한라생태숲으로 잡았다. 겨울에 찾았던 곳은 절물 자연 휴양림 안의 '장생의 숲길' 코스였다. 한번 완주하면 이름처럼 장생(오래 오래 살다)할 수 있을 거 같은 느낌을 주는 매력적인 숲길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른 길을 걸어보고 싶었다. 그리고 정보를 검색하던 중 한라생태숲과 절물자연휴양림이 연결되는 '숫모르 편백숲길'이 매우 좋다는 글을 보게 되었다.

이름도 낭만적인 '숫모르 편백숲길'. 처음 듣는 이에게는 낯선 이 이름이 나에게는 비밀의 숲으로 들어가는 암호처럼 들렸다.


"그래, 여기야!"


그렇게 나는 또 다시 숲과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는 숲길을 만나게 되었다.


숫모르 숲길의 '숫모르'란 '숯을 구웠던 등성이'란 뜻의 옛지명이다. 과거의 흔적을 찾아보기는 어렵지만 옛 숲 굽는 사람의 발자취를 따라 숲의 짙은 향기를 만끽할 수 있는 숲길이다.

숫모르 숲길은 한사람이나 두사람이 가까이 겨우 걸을 수 있는 소담한 길로 시작한다. 그럼에도 나무가 충분히 우거져 햇빛이 간간이 나뭇잎 사이로 비칠정도이다. 그래서 따로 모자를 쓰지 않아도 시원하게 걸을 수 있다. 아침 8시 정도에 숲길을 나섰는데 살짝 추울 정도였다. 얇은 겉옷을 가져올걸 그랬나 하고 생각했으나 숲길의 매력에 빠져 휘적휘적 정신없이 걷다보면 몸의 열이 기분좋게 퍼진다.

그렇게 숲길을 정답게 걷다보면 셋개오리 오름을 만나게 된다. 658m의 매우 낮은 오름이기 때문에 오르는 줄도 모르고 정상에 도착했다. 개오리란 이름은 산모양이 개오리(가오리)처럼 생긴데서 유래되었다. 가오리처럼 삼각형으로 생긴 정상 쉼터에 앉아 있으니 시원한 바람이 기분좋게 땀을 식혀준다. 여름 제주 숲은 바다보다 시원하다. 이렇게 기분좋은 여름 바람을 어디서 맞아볼까?


숲길 2.4km 지점에 이르면 숫모르 숲길의 하이라이트인 숫모르 편백숲길에 다다르게 된다.

하늘을 우러러 길쭉길쭉 시원하게 뻗어있는 편백나무들이 이국적인 풍경을 만들고 있다. 분명 제주도의 숲인데 외국의 먼 숲 속에 온 듯한 낯설고 멋진 풍경. 이곳에는 평상이 마련되어 있어 누워서 하늘을 바라보며 편백욕림을 즐길 수 있다. 편백나무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톤치트가 깨끗하고 시원한 공기를 만들어낸다.

나도 한자리 차지하고 누웠다. 마치 얼음판 위에 누운듯 서늘한 기운이 온 몸으로 뻗어나간다. 이렇게 여름에 도 시원한 곳은 강원도의 안반데기 이후 처음이다. 온몸에 기분좋은 닭살이 돋으면서 정신이 맑아진다. 한없이 누워서 편백욕림을 할 수 있을 거 같다. 실컷 하늘을 구경하고, 숲으로 샤워하며 지금 이 순간을 만끽한다.


편백숲의 시원한 숲 샤워를 마치고 장생의 숲길로 발걸음을 옮겼다. 겨울에 찾은 장생의 숲길과 여름의 장생의 숲길은 한 사람이 두 사람인 듯 완전히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겨울에는 앙상한 나뭇가지들이 눈이불을 덮고 이국적인 풍경을 자아냈다면 여름의 숲은 그야말로 연두와 초록, 붉은 화산 흙으로 색의 대조가 쨍하고 눈부시다. 바람에 요동치는 나뭇가지들과 조릿대, 다양한 나무들이 어우러져 최고의 하모니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역시 나의 첫사랑 답게 장생의 숲길은 여름에도 아름다웠다. 장생의 숲길의 또 다른 매력은 바로 절물 오름이다. 중간에 160m 정도만 올라가면 한라산을 비롯해 제주의 유명한 오름과 산들을 360도 각도로 한눈에 담을 수 있는 곳이다. 바람이 어찌나 센지 옷의 틈새 사이로 시원함이 파고 들어와 펄럭거렸다.

그렇게 바람을 만끽하며 절물 오름까지 야무지게 즐기고 나머지 장생의 숲길을 모두 완주했다. 장생의 숲길을 두번이나 완주했으니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겠다. 나에게 처음으로 숲의 매력을 알려준 첫사랑에게 고마움을 담아 인사하고 버스를 타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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