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 유리 슐레비츠
이삭은 저녁도 굶고 자기 일쑤일 정도로 매우 가난한 사람이다. 어느 날 이삭은 수도의 왕궁 앞 다리 밑에 보물이 있으니 찾아보라는 꿈을 꾼다. 이삭은 보물을 찾기 위해 걷고 또 걸어 수도에 도착한다. 그러나 왕궁 앞 다리에는 보초들이 밤낮없이 지키고 있어 감히 보물을 찾을 엄두도 못내고 주위를 서성거린다. 어느 날 보초 대장이 사연을 묻자 이삭은 꿈 이야기를 들려준다. 보초대장은 이삭을 비웃으며 자신도 언젠가 꿈을 꿨는데 그 꿈대로라면 자신도 당장 이삭이 떠나왔다는 그 마을로 가 이삭의 집 아궁이 밑에서 보물을 찾아봐야 할 거라고 말한다. 이삭은 다시 온길을 걷고 또 걸어 고향으로 돌아와 자신의 집 아궁이 밑에서 보물을 발견한다. 그리고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예배당을 세운다. 그리고 벽 한 귀퉁이에 이런 글을 새긴다.
가까이 있는 것을 찾기 위해 멀리 떠나야 할 때도 있다
그리고 이삭은 죽는 날까지 다시는 가난하지 않게 잘 살았다.
우리는 꿈이나 목표를 이루기 위해 먼 길을 떠날 때가 있다. 그리고 누군가는 먼길을 걷고 또 걸어 마침내 자신이 꿈꾸던 그곳에 도착한다. 그러나 도착한 그 순간 자신이 꿈꾸던 그것이 사실은 그저 삶이라는 긴 여행길 중 거치는 작은 간이역 같은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꿈이나 목표가 이루어지면 내 삶이 행복과 기쁨으로 가득 차고 더 이상의 불행은 없을 거라고 착각한다. 그러나 그곳은 인생이라는 긴 여행길 중 만나는 작은 경유지일 뿐 진짜 삶의 목적지는 아니다. 목표나 꿈을 이룬 뒤 허무함을 느끼고, 더 이상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또 새로운 목표를 찾아 삶을 헤맨다. 그렇다면 진짜 삶의 목적지는 어디에 있을까?
그것은 바로 여행길을 걷는 나와 함께 존재한다. 삶의 보물, 우리가 찾아 헤매는 그것, 도달하기를 바라는 그곳, 손에 얻기를 꿈꾸는 그것은 사실 나와 가장 가까운 곳, 지금 여기 이 순간에 있다.
그러나 이삭이 예배당에 새긴 말처럼 우리는 가까이 있는 것을 찾기 위해 멀리 떠나야 할 때도 있다. 떠나지 않으면 가까이 있는 그것을 발견하기 어려울 때도 있다. 이삭은 왕궁의 다리 밑에 있는 보물을 찾기 위해 숲을 지나 걷고 또 걷고 산을 지나 걷고 또 걷는다. 그 여행길에서 이삭은 숲과 산을 걷는 즐거움과 기쁨, 두 다리가 땅을 딛고 걸을 수 있는 기적을 경험했을 것이다. 가난하지만 걸을 수 있는 튼튼한 두 다리와 살아있기에 가능한 그 여행길에서 이삭은 감사를 느꼈을 것이다. 그 여행은 이삭이 자신이 원래 가지고 있던 보물, 즉 '삶'이라는 그 자체를 경험하기 위해 떠난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여행을 떠날 때 목적지를 정하지만 사실 여행의 목적은 그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다. 목적지를 정하고 그 목적지에 가는 전 과정이 여행의 즐거움이고 기쁨이다. 삶의 목표나 꿈도 마찬가지이다. 목표나 꿈을 이루는 것이 우리의 최종 결과가 아니다. 목표와 꿈을 정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삶을 '사는 것' 그 자체가 꿈이고, 목표다. 삶의 목표는 삶의 존재 이유는 '삶을 사는 것' 그 자체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이 순간을, 삶의 모든 순간을 음미하고 만끽해야 한다. 언젠가 도달할 미래의 어느 순간이 아니라 지금 여기 이곳에서 두 다리를 단단히 딛고 머리 위 하늘을 바라보고 기쁘게 지금을 마주해야 한다. 삶이라는 여행길에서 만나는 모든 것이, 이 길을 걷는 것이 꿈을 이룬 것이므로 가까이 있는 이 삶을 제대로 음미해야 한다.
삶의 보물은 지금 여기 이 순간에 있다. 지금 바로 여기 내 안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