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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간 수집가 Jan 12. 2023

숲을 걷다 스누피와 숨바꼭질을 즐기다

제주 비자림과 스누피 가든

2023년 1월 6일 금요일


* 8시 30분 숙소 출발, 6시 숙소귀가

* 16,108보

* 11.47km 걸음

* 제주 비자림, 스누피 가든

* 점심 : 제주 삼다장 - 삼다장 set (20,000원)  



# 제주에서 두번, 세번, 매번 가도 가도 좋은 곳들

지금까지 제주도에 꽤 자주 왔다. 1년에 1~2번은 일주일씩 머물며 여행했었다. 그동안 갔던  곳 중 가장 좋았던 곳을 꼽아보면 절물자연휴양림, 한라생태숲에서 시작하는 숫모르숲길, 삼성혈, 삼다수숲길, 거문오름 그리고 비자림이 있다. 보통 여행을 가면 한번 갔던 곳을 다시 가지 않는 편인데 위에 언급한 곳들은 두번, 세번, 네번, 매번 가도 좋다.

이곳들의 공통점은 나무가 있는 곳이라는 점이다. 사람보다 나무가 많고, 자연의 숨결, 숲의 향기를 맡을 수 있는 곳들이다. 나는 걷기를 좋아한다. 특히 나무가 많은 숲이나 산, 공원을 걷는 것을 좋아한다. 나무들 사이를 걷고 있으면 나도 한그루 나무가 되어 그곳의 일부가 되는 느낌이다. 나도 결국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으로 돌아갈 운명인 자연의 일부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애쓰지 않아도, 노력하지 않아도, 실망하지 않아도, 성공하지 않아도, 화내지 않아도, 슬퍼하지 않아도 된다. 결국 흙으로 돌아가 자연의 품에 안길 것이다. 중요하지 않은 것에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다.




# 비자림, 고귀하고 아름다운 나무들처럼 살고 싶다

오늘 첫번째 걷기 목적지인 비자림은 나무의 아름다움에 푹 빠져 걸을 수 있는 황홀한 숲이다. 한번 들어가면 나오고 싶지 않은 비밀의 숲이다. 지금은 유명한 관광지가 되어 많은 사람들이 찾지만 오늘 같은 평일 아침시간에는 한산하게 홀로 숲을 즐길 수 있다. 


나무는 홀로 있을 때도 아름답지만 함께 있을 때도 아름답다. 이리저리 곡선으로 휘며 서로의 몸통과 줄기들이 만들어내는 나무들의 어울린 몸을 보고 있으면 정말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의 피부처럼 나무들도 저마다 다양한 질감과 색깔, 껍질을 가지고 있고, 인간의 얼굴처럼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시야를 넓혀 나무들 전체를 보면 그 다양성들이 한데 어우러져 하나의 조화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나무들은 한편으론 독립적이다.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다. 뿌리와 가지가 각각의 공간을 차지하고 각자의 성장을 이어나간다.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고, 도움을 바라지 않으며,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간다. 나무들은 자연의 일부로 태어나 인간보다 더 길게 생명을 이어나간다. 다른 동물을 잡아먹지도 않고 오로지 자연의 일부인 햇빛과 물, 공기, 토양만으로 살아갈 수 있다. 오히려 나무들은 자연에 이로운 것들을 제공하며 나무가 있기에 지구는 풍요롭게 유지된다. 얼마나 고귀한지. 

나는 나무들의 태도를 닮고 싶어서 그것들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어디에도 의지하지 않고 자립적이고 독립적으로 삶을 살아가는 나무들처럼 살고 싶다. 






#삼다장 식당

비자림에서의 나무 산책을 마치고 점심을 먹기로 한다. 비자림에서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에 있는 식당은 많지 않다. 나는 혼자 여행 중이고, 뚜벅이 여행자이며, 고기를 먹지 않기 때문에 선택권은 더 좁아진다. 반드시 전화를 걸어 미리 1인 주문이 가능한지를 확인하는 것도 필요하다. 삼다장 식당에 전화를 걸어보니 삼다장 set가 가능하다고 하여 점심을 그곳에서 해결하기로 했다.

삼다장은 전복, 딱새우, 게 3가지 해산물을 간장에 숙성시킨 모둠요리다. 평소 간장게장을 즐겨먹지는 않지만 전복과 딱새우장이 궁금해 가게 되었다. 

set에는 돌문어 미역국과 양념게장, 전복죽도 포함되어 있다. 전복장과 딱새우장은 적당히 짭조름해 감칠맛이 있었고, 간장게장은 부드러워 밥과 잘 어울렸다. 나는 특히 밑반찬으로 나온 양념게장이 맛있었다. 전복죽은 별로였지만 돌문어 미역국은 맛있었다. 특히 김치가 맛있었는데 제주도 식당들은 모두 김치가 맛있는 건지 어제 식당도 김치가 특히 맛있었다. 신기하다. 

밥 한 공기를 더 시켜 두 공기를 클리어하고 다음 목적지인 스누피 가든으로 향했다.






# 스누피 가든,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는 숨바꼭질 정원

혹시 <월리를 찾아라>라는 그림책을 알고 계시는지. 한 번쯤 월리를 찾아 책에 코를 박고 신나게 숨은 그림 찾기에 몰두해 본 적이 있다면 스누피 가든을 추천한다. 주로 어린아이들을 데려온 가족 단위의 방문객들이 많았지만 어른들도 즐겁게 동심으로 돌아가 스누피와 놀 수 있는 곳이다. 

스누피 가든은 야외정원과 실내전시관으로 나뉘어 있다. 나는 야외정원을 먼저 둘러보기로 했다. 야외정원에는 다양한 테마로 이루어져 곳곳에 스누피와 친구들이 자연 안에 숨어 있다. 낙엽 쌓인 빨간 지붕집 위에 스누피가 누워있기도 하고, 찰리 브라운과 친구들이 야구장에서 야구를 하며, 파란 담요를 끌어안고 손가락을 빨고 있는 라이너스도 숨어있다. 겨울임에도 푸른 제주의 숲 속에서 평화롭게 스누피를 끌어안고 앉아있는 찰리 브라운과 함께 햇빛멍을 즐길 수도 있다. 

우드스탁의 새 친구들이 지저귀는 소리를 들으며 새 집을 올라가 보기도 한다. 1시에 도착한 나는 거의 세 시간을 넘게 그곳에서 놀았다. 거의 마지막엔 내가 스누피 마을의 주민이 되어 그들의 친구가 된 기분이었다. 가끔은 어른다움을 내려놓고 어린아이로 돌아가 신나게 놀 시간이 필요하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쓰느라 억눌러왔던 내 안의 작은 어린아이를 꺼내줄 필요가 있다. 어제에서 배우고 오늘을 즐기는 스누피처럼 지금 이 순간에 행복하자. 빨간 지붕 위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는 스누피처럼 한가하게 게으르게 자연을 만끽하자. 하늘을 자주 올려다보고 작은 일에도 기쁨의 춤을 추는 여유를 갖자. 스누피 가든은 우리가 잊고 살았던 동심을 찾아 떠나는 어른들의 놀이터다. 






p.s 빈티지 스누피 피규어들을 모아놓은 전시장 - 예쁜 쓰레기는 수집하지 않지만 스누피 피규어는 매우 탐이 났다. 

p.s 아무 생각 없이 낄낄거리며 행복해지고 싶다면 유튜브에서 스누피를 검색해 하나만 보자. 5분 만에 행복해질 수 있다. 

p.s 루시의 가드닝 스쿨 전시관 안에는 작은 서가가 있어서 가드닝과 관련된 흥미로운 책들을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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