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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간 수집가 Jan 11. 2024

내가 여행을 하는 이유

고살리 숲길

2024년 1월 8일 월요일     


어제 약을 먹고 잤지만 오늘도 몸 상태가 좋지 않다. 몸이 안좋으니 적극적으로 모험을 나서서 탐험하고자 하는 욕구가 줄어든다. 그래서 오늘은 쉬는 날로 정해 몸과 마음을 돌보는 날로 보내기로 한다. 오전에는 숙소에서 푹 쉬며 좋아하는 일드도 보고, 밀린 일기도 쓰며,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여행이 아닌 살아보기를 하면 좋은 점은 이런 것이다. 여행을 하면 몸이 조금 좋지 않더라도 무리를 해서 하나라도 더 보려고 무조건 밖으로 나간다. 시간은 정해져 있고, 떠나기 전 후회와 아쉬움이 들지 않도록 모두 다 봐두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70%가 건강한 몸과 마음이다. 이것이 받쳐주지 않으면 아무리 아름다운 것을 보아도 아무런 감흥이 일지 않는다. 여행이 아닌 살아보기를 하는 동안에는 하루 정도는 땡땡이를 치고, 여유를 부리는 것도 가능하다. 몸 상태가 좋지 않을 땐 몸에게 우선권을 준다. 몸이 어떻게 하고 싶은지 귀를 기울이고 그냥 해달라는 것을 해준다.      


몸이 어떻게 하고 싶은지 귀를 기울여보니 오늘은 그냥 침대 위에 누워 있고 싶다고 한다. 몸에 좋은 과일을 먹고, 물을 충분히 마시고 싶다고 한다. 요가를 하고 몸을 이완하며 긴장을 내려놓고 휴식하고 싶다고 한다. 그래서 아무말 않고 그렇게 해준다. 정성들여 요가를 하고, 침대에 누워 따뜻한 물을 담은 병으로 찜질을 해주고, 과일과 건강한 음식을 챙겨먹는다.   

   

나에게 여행은 나를 둘러싼 것들을 탐험하는 시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나를 탐험하고 성찰하며 관찰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특히 나의 몸과 영혼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인다. 평소에는 쓰지 않던 근육을 쓰기도 하고, 평소보다 많은 걸음을 걸으며, 하지 않던 것을 하다보면 몸과 영혼이 속삭이는 것이 들린다. 머리와 생각으로 사느라 들리지 않던 영혼의 속삭임이 들리는 것이다.      


여행을 하지 않는 평소의 나는 몸이 아닌 생각으로 머리로 사는 경우가 많다. 몸이 아닌 머리로 산다는 것은 인생을 있는 그대로 생생하게 체험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의 필터를 거쳐 여과해 받아들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내가 창조한 세계를 사는 것이지 세계를 있는 그대로 사는 것이 아니다살아있음을 강렬하게 있는 그대로 생생하게 체험하기 보다는 하던대로살던대로무의식이 처리하던대로 삶을 반복한다그것이 내가 말하는 머리로 산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여행을 하면 평소와 다른 환경에 나를 던지게 된다. 평소와 다른 것들을 하고, 다른 풍경을 보며, 다른 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내가 여기 이렇게 숨쉬고 있다는 것 자체가 매우 생경하고 낯설게 느껴지는 아주 짧은 찰나의 알아차림이 찾아온다. 그 찰나의 순간이 내 영혼이 깨어나는 순간이다. 살던대로 무의식이 처리하는 반복되는 생각의 삶을 살던 영혼이 잠들어있다 기지개를 키고 깨어난다.      


물론 여행을 떠나지 않고도 몸과 영혼의 목소리를 들으며 깨어있는 생생한 삶을 사는 것은 가능하다. 세계를 있는 그대로 생생하게 사는 것, 어린 아이의 순수한 눈으로 모든 것을 처음 경험하듯 순수하게 체험하는 것. 그런 생생한 삶은 여행지가 아니더라도 가능하다. 매일 매순간 내가 경험하는 것에 생생하게 깨어있으면 된다. 어린아이의 순수하고 맑은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된다. 사랑과 감사의 마음으로 모든 것에 환희를 느끼면 된다. 생각과 계산하는 습성은 버리고, 몸과 영혼이 시키는 대로 직관적으로 살면된다. 그러나 때로는 이렇게 낯선 환경에 나를 던져두는 것도 나쁘지 않다. 의도적으로 나를 낯선 환경에 던져두고, 평소에 하지 않던 것을 하며, 나를 관찰하면 자동조종장치처럼 움직이던 무의식이 깨어나기 때문이다.           


오전에 푹 쉬고 났더니 몸이 많이 좋아졌다. 그래서 오후에는 잠깐 나갔다 오기로 한다. 가고 싶었던 숲길 하나를 가자. 이름도 예쁜 고살리 숲길. 길이도 짧고, 쉬운 길이라 잠깐 걷고 오기 좋을 듯하다. 버스를 타고 도착한 고살리 숲길은 아무도 없어서 나만의 비밀 숲길을 걷는 느낌이었다. 처음에는 약간 겁이 났다. 그러나 생각을 비우고,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이 무서움도 나의 생각이 만든 것일뿐 숲은 평화로웠다. 중간중간 신기한 풍경들을 보여주며 아름다운 길을 선물해주었다. 생각과 느낌을 따라가지 않고 그것들을 하늘 위를 떠가는 구름을 보듯 멀리서 바라보면 그것들이 모두 만들어진 허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 허상같은 구름들을 그저 흘러가도록 놓아두자. 그러면 어느새 구름은 흘러흘러 사라지고 맑은 하늘만 남듯 텅빈 마음만 남는다. 맑은 하늘과 텅빈 마음. 그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 완벽하다. 저 나무와 이 나무, 저 하늘과 이 땅, 저 바위와 이 흙길, 저 새소리와 이 바람소리. 모든 것이 완벽해서 눈부시게 아름답다.      


생각을 비우고 텅민 마음과 순수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맑은 영혼이 되는 것. 그것이 내가 여행을 하는 이유이다.    


       

<고살리 탐방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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