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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간 수집가 Jan 14. 2024

시간을 달리는 자의 제주 원도심 산책

용두암, 관덕정, 제주목관아,제주성지,산지천,고씨주택,삼성혈,책밭서점

112일 금요일     


오늘은 일어나 명상을 하고, 글을 쓰고, 목에 좋은 요가를 했다. 오른쪽 후두부가 약간 불편한 느낌이 들어서 목에 좋은 스트레칭과 요가를 유튜브에서 찾아 따라 했다. 제주도로 오기 전 나는 몸에 불편한 느낌이 들어도 그냥 무시하거나 약을 먹어 통증만 없애려고 했다. 몸을 보살피는 일보다 생활에 필요한 다른 일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리라. 생활의 일들에 밀려 몸과 마음을 보살피는 일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러면 결국 몸은 아프기 시작하고, 병들기 시작한다.      


그러나 제주에 와서 많이 걷고, 명상하며, 몸을 쓰는 여행을 즐기면서 몸과 영혼을 보살피는 일에 정성을 들이게 되었다. 몸은 영혼이 머무르는 고귀한 성전이고, 나는 그 성전을 쓸고 닦고 아름답게 보살필 의무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딘가가 불편하다는 것은 그것을 봐 달라는 신호이다. 그 신호를 잘 감지해서 풀어주고, 에너지를 불어넣어 주며, 달래주는 것이 내가 할 일이다. 결국 불편하다는 것은 사랑과 관심, 그리고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것이니까. 그래서 나는 목에 좋은 요가를 하며 내 몸에 시간과 정성을 들이는 아침 시간을 보냈다.     


제주에 있으면서 가장 많이 생각하는 것이 바로 몸과 영혼이다. 나는 제주에 오면 주로 걷는다. 그리고 걸을 때 나는 몸과 영혼을 만나는 시간을 오롯이 즐길 수 있다. 제주에는 원시의 생명을 가진 아름다운 자연이 있고, 그 자연 속을 걸으며 나의 몸과 영혼 속에 잠들어 있던 원시의 생명력, 자연의 생명력이 깨어나는 것을 느낀다. 평생 걷고, 읽으며 몸과 영혼과 하나가 된 삶을 살고 싶다고 생각한다.      


오늘 나의 산책의 목적지는 제주 원도심이다. 제주 원도심은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함께 느낄 수 있는 곳이다. 탐라국 개벽신화가 어린 삼성혈, 도심을 흐르는 생태하천인 산지천 주변이 문화재와 표지석 등에는 제주의 역사가 깃들어 있다. 또 제주항포구와 칠성골, 동문재래시장 등에서는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살아 숨 쉬는 삶의 현장을 엿볼 수 있다. 또한 아라리오 뮤지엄이나 산지천 갤러리 등 제주의 오래된 건물들을 활용한 다양한 예술공간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오늘 나의 산책코스는 다음과 같다. 용두암과 용연구름다리를 시작으로 제주 올레 17코스의 일부를 걷고, 관덕정과 제주성지 등 제주의 옛 문화유적 터를 지난다. 그리고 동문시장을 거쳐 산지천 갤러리와 고씨주택을 방문하고, 시간이 된다면 무화과 한입이라는 북카페에서 책을 읽는다. 카페를 나와서 삼성혈과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을 둘러보고 책밭서점이라는 중고책방을 구경한다. 에너지가 남으면 제주시에서 가장 큰 대형서점이라고 하는 한라서적타운을 갔다가 숙소로 돌아온다. 중간중간 제주 원도심의 오래된 골목길을 산보하는 것이 오늘의 테마이다.  

    

용두암에 도착하니 관광객들 무리가 버스에 내려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구경을 하고 있었다. 용두암은 용암으로 만들어진 바위로, 점성이 높은 용암이 위로 뿜어 올라가면서 만들어진 것이다. 붉은색의 현무암질로 되어있고, 용암이 굳은 뒤 파도에 깎이면서 그 모양이 용의 머리처럼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곳에서 소원을 빌면 행운이 찾아온다는 이야기가 있다고 하는데, 그런 이야기에 아랑곳하지 않고 바위는 묵묵히 파도를 견뎌내며 서 있다. 언젠가 파도가 바위를 더 깎아 다른 모양으로 변한다면 사람들은 또 어떤 이야기를 지어 기원을 하고 소원을 빌까.      





용두암을 지나 용연에 도착했다. 용연은 제주시의 중심부를 남북으로 흐르는 한천이 바다와 만나는 자리에 있는 작은 연못이다. 용연이 있는 한천의 하구는 용암이 두껍게 흐르다가 굳은 것이 오랜 세월 동안 침식을 겪으며 깊은 계곡이 되었다고 한다. 예로부터 용연 주변은 경치가 아름다워 영주(제주도의 옛 이름) 12경의 용연야범으로 유명하다. 용연야범은 여름철 달밤에 용연에서 뱃놀이를 하는 것을 말한다. 옛사람들이 풍류를 즐겼을 만한 곳에 정자가 서 있고, 그 주변은 현재의 다리와 식당들이 들어서 과거의 한적함은 사라지고 없다. 그러나 과연 경치가 아름다워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달밤을 즐겼을 만한 정취가 남아있다. 여름 달밤 배 위에 앉은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며 이곳을 누렸을까. 예나 지금이나 아름다운 자연에 기대어 삶을 즐기고자 하는 마음은 변하지 않는 듯하다.     






올레길 17코스를 걸어 도착한 것은 관덕정이다. 관덕정은 조선 세종 때인 1448년 안무사 신숙청이 병사들을 훈련시키기 위해 세운 제주도의 대표적 건물이다. 관덕이란 명칭은 ‘활을 쏘는 것은 높고 훌륭한 덕을 쌓는 것이다.’라는 예기의 내용에서 따온 것이다. 이는 ‘평소에 마음을 바르게 하고 훌륭한 덕을 쌓는다.’는 뜻이며 문무의 올바른 정신을 본받기 위해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매일 바른 마음으로 어떤 일을 꾸준히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첫째 바른 마음으로 어떤 일을 한다는 것이 어렵다. 바른 마음으로 한다는 것은 정성을 다한다는 것이고, 정신을 집중하여 몰입한다는 것이다. 허투루 하지 않고, 경건한 마음으로 그것을 한다. 둘째, 매일 꾸준히 하는 것이 어렵다. 사람은 결국 그가 하는 습관으로 이루어진다고 믿는다. 매일 그 사람이 어떤 일을 하느냐가 결국 그 사람의 인생을 이룬다. 그래서 무언가를 꾸준히 매일 한다는 것은 인생의 순간을 하나하나 쌓아나가는 작업이다. 덕이란 결국 인생을 잘 살아간다는 것을 말하고, 좋은 덕을 쌓아나간다는 것은 좋은 인생을 쌓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무엇을 정성을 다해 바른 마음으로 매일 하고 있는가. 스스로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2024년에는 무엇에 정신을 집중하여 덕을 쌓듯 몰입하여 꾸준히 할 것인지 그려보고 싶다. 제주에 있는 시간 동안 숙고하여 그것을 생각하고, 돌아가면 바로 시작할 수 있도록 하자.     


관덕정


     

관덕정 옆에는 제주목 관아가 자리하고 있다. 제주목 관아는 조선시대 제주도 행정중심지이던 관아 터이다. 지금의 제주도청과 같은 곳이라 할 수 있다. 평일임에도 한복을 입고 사진 촬영을 하는 외국인이나 관광객들이 많이 보였다. 제주목 관아를 둘러보고 나와 제주성지, 오현단을 둘러보고 동문재래시장을 걸었다. 감귤, 기념품, 오메기떡, 돌하르방, 국밥, 빵 등 먹을 것들, 살 것들이 가득한 시장을 지나 산지천 개러리에서 사진전시를 보았다. 제주의 옛 모습을 흑백사진으로 남긴 작품들이었다.


제주 목관아


오현단, 제주성지


산지천


산지천 갤러리 전시




바로 옆에는 고씨 주택이 자리하고 있었다. 고씨주택은 고용준이 지은 근대 건축물로, 기술적으로는 일식 건축을 참고하여 지었고, 기능적으로는 제주 민가의 전통적 내용을 계승하여지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가치가 있는 과도기적 건축물이라고 한다. 이러한 가치를 인정하여 지역 주민과 시민 단체가 이 주택을 보존하려는 노력을 하여 복원 공사를 마쳤고, 지금은 책방과 사랑방으로 문을 열어 주민들의 쉼터로 활용되고 있었다. 나는 잠시 안채(안거리)의 작은 방에 앉아 제주와 관련된 그림책을 둘러보았다. 오래된 역사가 남아있는 옛 집을 구경하는 것은 즐겁다. 게다가 이렇게 안에 들어와 그 공간을  느껴볼 수 있다는 것은 설레는 일이다. 공간에는 역사가 깃들어 있고,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에너지와 기운이 배어있다. 그래서 조금이나마 그들의 생활을 상상하는 즐거움에 빠져볼 수 있다. 시간을 초월해 하나의 공간에서 그들의 삶과 현재의 내 삶이 교차하는 이상한 감각도 느낄 수 있다.      





고씨주택




고씨주택을 나와 오래된 제주 원도심의 골목길을 산보했다. 원래는 ‘무화과 한입’이라는 북카페에 들러 책을 읽을 계획이었으나 이곳까지 와서 카페에 앉아 책을 읽기에는 시간이 아까웠다. 그보다 이곳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것을 해보고 싶었기 때문에 제주 원도심의 오래된 집들과 향수를 자극하는 옛 간판들의 가게들을 둘러보기로 했다. 제주 원도심의 오래된 동네 골목길에는 정말 다양한 주택과 가게들이 있었다. 모양도 건축방식도, 건축재료도 다양한 주택들과 가게들은 묘한 느낌을 준다. 하나도 같은 것이 없다. 닭장 같은 네모반듯한 세련된 아파트에서는 느낄 수 없는 감각. 그곳에는 사람 사는 냄새가 나고, 주인의 취향과 생활이 드러난다. 이곳에는 어떤 사람이 어떤 삶을 꾸려나가고 있을까. 상상하며 골목길을 걷는다. 나의 취미 중 하나인 골목길 산책과 오래된 주택 수집을 즐긴다.      






골목산책 후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을 방문했다. 화산섬 제주의 형성과정을 비롯하여 자연자원, 제주사람들의 생애와 민속 문화를 체험하였다. 그리고 박물관을 나와 오늘의 마지막 유적지인 삼성혈로 향했다. 삼성혈은 오래전 제주를 방문했다가 반한 유적지 중 하나이다. 제주의 오래된 신화 이야기가 길들어 있는 신비로운 곳이라 기운과 에너지가 남다른 곳이었다.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오래된 나무들과 새들이 이곳에 모여 그 에너지를 더욱 신비롭게 해 주었다. 삼성에는 제주 개벽신화인 탐라를 창시한 삼신인이 용출했다고 전해지는 구멍을 볼 수 있다. 세 개의 지혈은 주위가 수백 년 된 고목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아무리 많은 비와 눈이 내려도 고이거나 쌓이지 않는다. 또한 삼신인 고을나, 양을나, 부을 나가 이곳에서 태어나 수렵생활을 하다가 오곡 종자와 가축을 가지고 온 벽랑국 3 공주를 배필로 맞이하면서부터 농경생활을 시작하였으며, 탐라왕국으로 발전하였다고 전한다. 그런 신비로운 신화가 깃들어 있는 곳이라 그런지 이곳에 오면 왠지 모르게 희망과 설렘이 마음에 차게 된다. 나도 새롭게 무언가를 시작하고 싶다는 기분이 든다. 2024년 새로운 마음으로 목표를 세우고, 시작하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며 삼성혈을 나왔다.   

  



삼성혈



오늘의 마지막 목적지인 중고책방 ‘책밭서점’에 들러 오래된 책들을 구경하고, 책 한 권을 사서 돌아왔다. 황덕호의 <그 남자의 재즈일기> 2권. 1권은 집에 있는데 2권을 발견하여 가져왔다. 나를 아름답고 신비한 재즈의 세계로 안내한 책이다. 숙소로 돌아가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하고, 이 책에 나온 재즈 앨범을 들을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마음이 설렌다. 오래된 골목산책과 과거가 깃든 유적지 탐방, 중고책방 탐험, 시간과 공간을 거슬러 옛 시간과 오늘의 시간이 공존하는 흥미로운 산책이었다.



책밭서점의 중고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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