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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간 수집가 Jan 15. 2024

반짝반짝 보석 같은 순간들을 수집했던 제주에서의 하루

동백동산, 비건책방, 올레 19, 서우봉, 함덕해변, 전이수, 만춘서점

1월 13일 토요일     



2024년 새해 작은 목표를 세웠던 것들 중에 매일 명상하기, 요가하기, 글쓰기가 있었다. 여행 중에도 이 습관들을 실천하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면 기지개를 켜고 창문을 연 다음 명상을 한다. 그리고 노트북을 들고 테이블로 가 글쓰기를 시작한다. 글쓰기가 끝나면 요가를 하고 하루를 시작한다. 이제 완전히 습관이 되어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 이루어진다.    

  

오늘의 오전 방문지는 제주 동백동산 습지이다. 동백동산은 선흘리에 위치해 있는 곶자왈 대로 크고 작은 암석과 나무, 덩굴식물이 함께 있는 곳이다. 연중 온도 변화가 적은 독특한 미기후 덕분에 북방계 식물과 남방계 식물이 공존하고, 난대상록활엽수의 천연림으로 학술 가치가 높아 지방기념물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2011년에는 동백동산이 람사르습지로 등록되고, 2013년에는 전국생태관광지로 2014년에는 세계지질공원 명소로 지정되었다.      

습지센터에 도착해 안내도를 보고 있으니 해설사 선생님께서 다가오셔서 탐방에 필요한 여러 가지 것들을 설명해 주셨다. 이곳은 경사가 거의 없는 평지라 걷는 길은 어렵지 않고, 가는 길에 나무마다 번호가 있으니 그 번호를 보고 걸으면 된다고 하셨다. 또한 이곳은 나무들이 워낙 빽빽하게 자라다 보니 햇빛이 키 작은 동백나무에게까지 전달되지 못해 꽃은 2월이 되어야 핀다고 하셨다.      





설명을 잘 듣고 드디어 출발! 처음 걷는 숲은 언제나 두근거림을 준다. 그리고 이 두근거림은 어느새 탄성으로 바뀌어 나는 가는 내내 감탄을 금치 못했다. 토토로가 살 것 같은 신비로운 숲의 분위기와 기이한 나무들의 아름다움, 사람이 발길이 닿지 않아 원시의 생명력이 흐르는 숲. 나는 이 숲과 사랑에 빠져버렸다. 이번 제주 보름 살기 여행 중 가장 아름다웠던 곳을 하나만 꼽으라면 나는 주저 없이 이곳을 뽑을 테다.





나무들은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지고 있었다. 저마다 혼과 영이 깃들어 있는 듯 대지와 함께 숨 쉬고 있는 나무들의 뿌리와 잎. 그 숨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공기가 너무나 맑고 청명해 나도 모르게 깊게 깊게 숨을 들이마시게 된다. 매일매일 이곳을 걷고 싶다. 여름에도 가을에도 봄에도 또 이곳을 찾아 이 아름다움에 내 영혼을 맡기고 싶다.      




나는 이 숲을 통해 곶자왈의 매력을 제대로 느끼게 되었다. 지금까지 방문했던 곶자왈은 너무 규모가 작거나 사람의 손을 타서 인공적인 느낌이 강했다. 그러나 이곳 선흘곶 동백동산은 원시의 생명력이 아직 그대로 남아 숲의 맨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곶자왈은 제주에 있는 독특한 용암숲을 말한다. 오름의 화산활동으로 형성된 대지 위에 만들어지는데, 아무것도 없는 불모지였던 곳이 시간이 흘러 점차 나무와 덤불이 우거진 숲으로 변화한다. ‘곶’은 산 밑의 숲이 우거진 곳, ‘자왈’은 나무와 덩굴 따위가 엉클어져 수풀처럼 어수선하게 된 곳을 말한다. 선흘곶자왈은 생태적 가치와 특이한 지형의 가치를 인정받은 곳이다. 나는 지금 현재를 걷고 있는 동시에 과거를 걷고 있는 것이다. 과거에 활발했던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화산대지에 시간이 흐르고 생명력이 자라나게 되었고, 그 생명들이 살아 숨 쉬는 현재를 걷고 있는 것이다. 과거의 역사를 품고 있는 곶자왈 숲은 그래서 신비로운 것일까.    



  




원래는 한 바퀴를 돌아 입구의 습지센터로 돌아오는 코스이나 나는 중간에 마을길로 연결된 입구로 빠져나와 선흘리 마을에 위치한 책방 하나를 가기로 한다. 이름은 비건 책방. 제주도 작은 마을에 비건책방이라니. 안 가볼 수가 없었다. 나는 책을 읽고 채식을 시작하게 되었다. 사이먼북스 출판사의 <요리를 멈추다>라는 책을 시작으로 <아무튼 비건>과 자연식물식 관련 책들, 관련된 다큐멘터리 등을 보고 고기를 먹지 않게 되었다. 5년 정도 된 지금 나에게 채식은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우며 편안한 생활습관이 되었다. 더 건강해졌고, 영혼이 맑아졌으며, 평생 나는 이 습관을 가지고 살고 싶다.


 이곳 비건 책방에는 비건을 이제 막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하는 책들 뿐만 아니라 채식을 이미 실천하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독립서적, 다양한 채식 요리 레시피를 담은 책들을 판매하고 있었다. 제주보름 살기 중에도 나는 식당을 이용하지 않고 시장이나 마트에서 장을 봐 숙소에서 만들어 먹고 있다. 자연식물식의 장점은 불을 쓰거나 과도한 조리를 하기보다는 자연 그대로의 채소나 과일, 곡물 등을 먹는 요리법이라 간단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재료를 씻고 다듬는 것이 거의 대부분이라 순식간에 식사를 차릴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건강하게 제주 살기를 하고 있다. 그 에너지는 내가 먹는 것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먹는 것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깨닫고 있다. 제주 보름 살기가 끝나면 더 다양한 채식 요리들을 배워보고 싶다.     






비건책방을 나와 다음 목적지인 북촌포구를 가기로 한다. 카카오맵을 찾아보니 이곳은 버스가 자주 있는 곳이 아니라 1시간 후에나 내가 타야 하는 버스가 온다. 그래서 카카오 택시를 부르기로 한다. 택시도 거의 없는 곳이었는데 다행히 친절하신 기사님이 와주셔서 편안하게 갈 수 있었다.

북촌포구는 올레길 19코스 중 만나게 되는 한 곳이다. 예전에 올레길을 처음 걸을 때는 올레길의 처음부터 끝까지 정석대로 모두 걸었다. 지금은 주로 내가 걷고 싶은 지점을 정해 일부를 걷는 방식을 함께 하고 있다. 올레길을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걷는 것은 그것 나름의 매력이 있다. 길과 내가 하나가 되어 마지막에는 그 길이 내 몸에 새겨지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그러나 가끔은 숲도 보고 바다도 보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이렇게 숲 하나를 걷고, 바다가 있는 올레길 일부를 걷는다. 나만의 여행방식이다.      

북촌포구는 작지만 아름다운 마을이었다. 배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포구와 새파란 바다, 그리고 그 바다를 터전으로 작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포구는 언제나 마음에 아련함과 따뜻함을 주는데 이곳 북촌 포구는 그 따뜻함이 특히 아름다운 곳이었다. 아직 개발이 되지 않아 마을의 순박하고 소박한 자연스러움이 그대로 남아 있는 곳. 언젠가는 이곳에 머물며 그 따뜻함 속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북촌 9길 스낵이란 곳에서 비건 김밥을 포장해 올레 19코스를 걷는다. 원래는 올드북촌이라는 북카페에서 책을 읽을 예정이었다. 그러나 임시휴업이라는 종이만이 나를 반겼다. 제주의 1월은 이렇게 쉬는 곳이 많다. 아쉬웠지만 나는 이 또한 여행의 묘미임을 알기에 다시 길을 나섰다.      

북촌포구에서 시작해 아름다운 환해장성을 걷고, 도착한 곳은 서우봉이다. 나는 이곳에서 또 하나의 보석 같은 순간을 수집했다. 서우봉 위에서 바라보는 함덕해변의 아름다운 순간. 햇볕에 반짝이는 바다의 윤슬과 푸른 하늘을 나는 패러글라이딩, 조그만 점들이 되어 함덕해변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의 무리, 겨울임에도 초록빛으로 생명을 내뿜고 있는 풀과 식물들. 이보다 더 완벽한 순간이 있을까. 이곳에서 보는 서우낙조는 영주 10경 중 하나인 사봉 낙조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는데 낮의 풍경 또한 나에게는 너무나 아름다워 발길을 뗄 수가 없다.      










아름다운 보석 같은 순간을 또 하나 수집하고 기쁜 마음으로 함덕 해변을 걷는다. 선탠하는 돌하르방, 여기저기 아름다운 해변과 자신의 모습을 담는 관광객들, 맨발 걷기 하시는 아주머니, 해변의 쓰레기들을 줍는 아름다운 사람, 손잡고 다정하게 걷는 커플과 가족들. 아름다운 함덕 해변을 걷고 나는 즉흥적으로 갤러리 하나를 방문하기로 했다.     






바로 전이수 갤러리라는 곳이었다. 원래는 올드북촌이라는 북카페에서 책을 읽을 예정이었는데 임시휴업으로 시간이 남았다. 그래서 지도를 보고 함덕해변 근처를 살피던 중 이곳이 딱 눈에 띄었다. 마치 영혼의 소리가 나를 부르는 듯 직감적으로 이곳을 가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이곳에서 또 하나의 보석 같은 순간들을 만났다. 자유롭고 맑은 영혼이 그린 그림들과 그의 생각들. 하나하나가 너무 맑고 순수하며 귀해서 내 마음까지 정화되는 느낌이었다. 나이 많은 어른들보다도 더 성숙하고 바른 생각을 가진 그의 그림들은 그의 생각을 그대로 닮았다. 따뜻하고 착하며 사랑이 흘러넘친다. 우리에겐 서로 싸우거나 미워할 시간이 없고 오직 사랑하기에 열심이어도 시간이 부족하다는 그의 말이 가슴 깊이 박혔다. 그래, 나는 한정된 시간 동안 오직 사랑하고 친절하게 삶을 살아도 시간이 부족하지. 왜 그것을 그렇게 자주 잊고 사는지, 따뜻한 사랑을 가득 주는 그의 그림을 보며 그것을 잊고 싶지 않아서 엽서를 2장 샀다. 집으로 돌아가도라도 이 그림들을 가까이 두고 보면서 되새기자고 다짐하며.     







전이수 갤러리를 나와 오늘의 마지막 목적지인 만춘서점으로 향했다. 이름도 매력적인 만춘서점. 그곳이 어디이든 내 마음이 봄이라면 그래서 책들과 함께한다면 그곳이 천국이 아닐까. 다양한 책들이 모여있는 그곳에서 나는 또 아름다운 책들을 쓰다듬으며 보석 같은 책들을 만나기를 기대한다.     

내 삶을 보석 같은 순간들로 만들어주었던 것은 여행과 책이었다. 그리고 오늘은 그런 순간들을 두 손으로 들지 못할 정도로 한가득 수집해 나의 수집 가방이 빵빵하게 부풀었던 하루였다. 이 반짝거리는  순간들이 모여 나의 삶이 되고, 내 삶의 한 페이지가 될 것이다. 내가 쓰고 있는 이 책이 그런 보석처럼 빛나는 순간들을 노래하는 아름다운 책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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